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K-방산'의 발전 요인을 축약해 달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6·25 전쟁 때는 탱크 한 대 만들지 못했던 대한민국이 '세계 4대 방산 강국' 진입을 꿈꿀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유사시를 대비한 첨단 무기 개발과 핵심 기술의 국산화 등 노력이 동반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 축적된 기술력과 생산 역량은 현대전에서 한국 무기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기반이 됐고, 이는 방산 수출 확대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이어졌다.
다만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접목한 유무인 복합체계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세계 방산 시장 역시 이념과 국제 정세에 따라 급속히 재편되면서 'K-방산'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이 청장은 대외적으로는 산업 협력을 연계한 외교·안보 패키지 전략과 방산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추진하고, 대내적으로는 '제2의 개청' 수준의 조직 혁신을 통해 중소기업과의 상생 체계 구축, 첨단 전력의 신속한 확보를 위한 체질 개선 등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청장은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방산비리 해결을 위해 꾸려진 방위사업청의 '개청 멤버'이자 초대 방사청 차장이다. 방사청 개청 후 9개월만에 방사청을 떠난 그가 20여년 만에 다시 복귀해 한국의 방위사업을 이끄는 수장이 됐다. 변호사 출신의 이 청장이 방산업에 족적을 남기게 된 것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한다.
이 청장은 지난 21일 과천 방위사업청사에서 진행된 '뉴스1 초대석' 인터뷰에서 한국 방산의 현주소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솔직한 의견과 구상을 밝혔다. 지난해 11월에 임명된 이 청장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여년 만의 방위사업청 복귀다. 당시와 오늘날의 'K-방산'을 비교평가한다면.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우리의 비극이 역설적으로 상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우수 전력을 비축해 방산 경쟁력을 기르게 하는 토대가 됐다. 20년 전만 해도 무기 획득은 국외 구매가 원칙이었고, 기술력 역시 갓 면허 생산 단계를 벗어나는 정도였다. 방산업체들도 국내시장에 안주해 방산 비리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한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 방산은 국내 연구 개발 우선 원칙에 기반해 기술력이 크게 향상됐으며, 기획부터 운영·유지에 이르기까지 획득 절차가 잘 정착돼 성능, 비용 및 납기 측면에서 큰 신뢰를 얻고 있다.
1970년대부터 이어온 연구개발 역량이 투명하고 효율적인 행정 절차와 결합한다면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방산 수주액이 20년 만에 2억 5000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75배 가까이 비약할 줄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다. 방산이 자주국방을 위한 기반이 될 뿐만 아니라 수출 및 첨단 제조업을 견인하는 국가전략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형 전투기인 KF-21, MUAV(중고도정찰용무인항공기)은 물론 K2 전차, K9 자주포, 천궁-Ⅱ 등 우리 무기의 글로벌 경쟁력도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시장의 블록화, 안보·외교·산업을 연계한 패키지 협력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은 새로운 도전 요소다.
-우리 방산업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어디라고 보는가.
▶최근 캐나다의 차세대 잠수함 사업(CPSP)을 비롯해 폴란드, 북유럽, 루마니아 등에서 독일과의 경쟁이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우리가 방산 4강 목표를 이루려면 독일은 물론 프랑스, 영국,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보다 경쟁 우위를 가져야 한다. 더구나 최근 공격용 무기 판매 금지 정책을 변경한 일본까지 잠재적 경쟁국이 됐다.
일본의 수출용 무기체계는 대부분 우리와 경쟁 대상이고, 공격용 무기까지 추가되면 경쟁은 더 치열해질 거다. 아직은 방산 가동 능력, 가격, 납기 등에서 우리가 조금 앞서 있지만 격차가 빠르게 줄어들 것 같다. 소재부품장비 등 기초 분야에서는 우리가 뒤쳐질 가능성도 있다. 통합방공시스템, 유무인 복합체계 등 첨단전력 분야에서 새로운 격차를 만들어야 한다. 가령, 한국은 방산 수출 촉진을 위해 '도태 장비 무상 양도'를 활용하지만 일본은 운용 중인 체계뿐만 아니라 신형 체계도 무상 양도가 가능하게 하는 정부안전보장능력강화지원(OSA) 정책을 시행한다. 한국도 유사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에서 열리는 도산안창호함의 연합훈련 출항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어떤 활동을 할 계획인가.
▶이미 사업 제안서가 제출된 상황이고, 캐나다 측에서 공정성 문제를 이유로 직접적으로 잠수함 사업을 논의하기 위한 만남은 피하고 있다. 사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당연한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제가 가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상당히 제한적이지만 분명 우리 잠수함에 대한 캐나다 측의 관심이 뜨겁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캐나다 빅토리아항에서 열리는 도산안창호함의 출항식은 원칙적으론 해군의 연합훈련을 위한 출항이지만, 우리 잠수함이 최초로 태평양을 횡단해 진해에서 캐나다까지 먼 거리를 항해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 (경쟁자인) 독일은 캐나다에 보여 줄 잠수함 실물이 없기 때문에 우리 잠수함의 우수성을 뽐낼 기회가 된 셈이다. 캐나다의 추가적인 관심사를 살피고, 우호적 여론 형성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캐나다 국방안보전시회(CANSEC) 행사에 참석 예정인 캐나다 국방장관과도 대화해 보려고 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 잠수함에 대한 캐나다의 평가나 반응은 어떤가.
▶캐나다 해군은 한국 잠수함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해군 지휘부 간의 교류 과정에서 보이는 태도가 상당히 호의적이다. 다만 기종 결정에 있어서 해군의 역할엔 분명 한계가 있고, 우리의 방사청인 국방조달특임부라는 부처를 비롯해 여러 부처의 의견을 골고루 모아서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 캐나다의 구조다. 총리의 의견도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CPSP 수주 가능성은 몇 %인가. 남은 쟁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은 한국과 독일이 치열한 호각세다. 초반엔 한국이 여러 여건에서 많이 밀리는 분위기였다. 잠수함 제원이나 성능, 납기 준수 가능성 등은 우리가 앞서도 독일은 캐나다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유럽연합(EU)의 무기 공동구매 대출 프로그램(SAFE) 등으로 밀접하고 오랜 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나다는 이번 사업을 통해 국가 간 포괄적인 산업 협력 체제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큰 듯하다.이런 지정학적 불리함을 극복하려면 캐나다가 중시하는 산업 협력 패키지에서 비교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에서 캐나다 자동차부품제조사협회(APMA)와 장갑차 등 기동 무기 분야에서의 협력의향서(MOU)를 체결하고 그 결과를 제안서에 포함했다. 또 현대자동차(005380)그룹과 한화오션(042660)이 컨소시엄 형태로 수소 협력 제안도 했다. 사실 지난 1월만 하더라도 캐나다는 수소 관련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생태계 회복에 도움이 되고, 경제적 파급 효과를 설명하니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산업 협력 제안이 진전되면 캐나다 지도부도 상당한 관심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 누가 캐나다의 속마음을 알겠나. 지금은 정화수를 떠 놓고 빌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다(웃음).
-CPSP 수주에 성공하면 한국 방산 역사에서 어떤 의미인가.
▶CPSP 사업은 총사업비 규모가 단일 사업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이다. 10여년 간의 후속 군수 지원을 포함하면 최소 약 60조 원 규모고 최대 100조 원 규모까지 추산하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해에 '시장 점유율' 기준으로 '방산 4강' 목표를 달성했는데, CPSP 수주에 성공하면 수주액 기준으로도 '방산 4강' 목표를 가볍게 달성하게 된다. 경제적 파급력 및 산업 협력에 따른 파생 효과가 매우 클 것이다. 더불어 'K-방산'에 대한 이미지 제고로 다른 국산 무기체계의 수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형차기구축함(KDDX)의 전력화가 지연된 상황에서 소송도 불사하는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329180)의 경쟁 방식이 과열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런 방식이 필수 불가결한 과정일까.
▶국가계약법은 복수사업자에 대한 공정한 기회 보장을 위해 경쟁 입찰이 원칙이다. 방위사업계약은 적기 전력화에 따른 방위력 확보를 우선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수의계약을 허용한다. 다만 이 역시 아무런 분쟁 없이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될 경우에 적용된다.
KDDX는 기본설계 업체 직원들의 군사 기밀 탈취 행위로 이미 전력화가 지연됐고,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다. 그렇기 때문에 방위사업추진위원회도 공정 경쟁을 위해 방산업체로 지정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지명경쟁을 하게 하는것이 더 큰 실익이라고 본 것이다. 가처분 신청 등 변수가 있었지만 순리대로라면 올해 7월 계약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HD현대)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오해를 산 것도 분명하지 않나.
▶대통령께서 발언하실 당시 저도 현장에 있었다. 그 발언은 사업 추진 방향 자체를 결정하는 말씀이 아니라, 부당한 방법으로 사업이 추진되는 건 옳지 않다는 원론적인 말씀으로 봐야 한다. 이미 그 말씀을 하실 때 방사청 내부에서 '공정하게 한다'라는 사업 추진 방식이 결정돼 있었다. 그래서 군말 없이 그 자리에서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방사청 사업관리팀은 정보 접근, 준비기일 등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을 깊이 유념하고 있으며, 공정한 절차관리에 기반한 선의의 경쟁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다. 향후 다른 사업을 추진할 때도 신속한 전력화와 공정한 기회 보장 중 어느 것이 더 국익에 부합한 지 비교해 사안에 맞게 결정할 것이다.
-KF-21 전투기 양산에 필요한 예산이 크게 늘어 전력화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KF-21은 우리 공군의 전력을 보강하고 수출 가능성을 높여주는 항공우주산업의 중심축이다.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뚫고 우리의 힘으로 초음속전투기를 만들었다는 국민적 자긍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미 비행안전의 위험으로 조기 도태가 필요해진 F-5의 대체 전력이기에 적기 전력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산상 부담이 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적기전력화의 중요성과 더불어 국민적 자긍심을 훼손하지 않도록 최우선적인 예산 배정을 위해 예산당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 KF-21의 성능을 높이고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성능개량사업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방산 4대 강국'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대외적으로는 범국가 차원에서 방산 수출 지원을 강화해 수요국의 무기 현지화 요구, 또 유럽 등에서의 시장의 블록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방사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방산 협의체 회의를 개최해 유럽 진출 기반을 다지는 등 다자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구매국이 방산 수출과 연계해 요구하는 대응구매의 법적 절차를 보완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는 등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소수의 대기업이 주도하고 중소기업은 수직적으로 종속되는 산업 구조를 동반 성장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중소기업의 방산 진입을 완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고, 방산 전문기업 지정 육성을 통해 '유니콘 기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인공지능이나 드론, 로봇 등 첨단 전력을 빠르게 획득할 수 있는 체계도 필요하다. 방사청은 이를 골자로 한 '국방첨단전력사업법'의 입법을 신속 추진할 예정이다.
-방위사업청 초대 차장이자 이재명 정부의 첫 방위사업청장이다. 어떤 방위사업청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대형 방산비리를 감찰하는 청와대 법무비서관(노무현 정부)이었던 제가 2006년 방위사업청을 개청할 수 있었던 건 정말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한 성과였다. 소신과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영관급 장교, 서기관급 공무원들의 도움이 정말 컸다. 그때는 제도의 안착까지가 제 역할이라 생각해 초대 차장직을 짧게 끝마치고 물러났다. 이후 지난 20여년 간 방위산업과 거리를 뒀기 때문에 이번에 부름을 받고도 망설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달라진 방위산업의 위상과 청에 주어진 과제를 고려하면 '제2의 개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전했다. 매일 공부하고 개혁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일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이 국가방위자원 획득 및 육성 관련 가장 투명하고 전문적인 기관이 되는데 기여한 '합리적 원칙주의자'로 평가받고 싶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
1960년 전북 순창 출생. 1978년 전주 신흥고, 1982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사법시험(31회)에 합격해 1992년 사법연수원(21기)을 수료했다. 변호사로 일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 법무비서관에 이어 국무총리 소속 국방획득제도개선단장으로 일했으며, 2005년엔 방위사업청 개청준비단 부단장을 맡아 개청 이후 2006년 방위사업청 초대 차장으로 근무했다.
법무비서관 때 반부패 관련 업무를 맡는 등 강직하고 소신 있는 법조인으로 평가받는다. 동시에 방사청 개청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청의 역할, 조직 구조를 설계하는 등 법에 기반한 원칙 있는 조직 구조를 만드는 능력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만인 2025년 11월 제14대 방위사업청장에 취임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