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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얼 아닌 에일리언이라고? '인어공주', 흥행 보다 더 뜨거운 논쟁 [N초점]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3-06-04 08:00 송고
'인어공주' 스틸 컷
'인어공주' 스틸 컷
흥행 열기보다는 논쟁 열기가 더 뜨겁다. 최근 인종 차별과 정치적 올바름 등의 화두를 끊임없이 생성하고 있는 디즈니 실사 영화 '인어공주'(감독 롭 마샬)의 상황이 그렇다.

국내에서 지난달 24일 개봉한 '인어공주'는 3일까지 누적 53만4367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기준)을 동원 중이다. 기대작이 개봉 2주차에 거둔 성적으로 보기에는 아쉽다. 특히 전 주에 개봉한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가 같은 날 누적 167만6963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인어공주'는 우리나라 외에도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고 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 영화는 중국에서 개봉 첫 주말 263만8829달러(약 34억4894만원)의 흥행 수익을 거뒀는데 이는 올해 개봉한 디즈니 영화 중 가장 낮은 수치다.
1989년 개봉해 성공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한 이 영화는 캐스팅 단계에서 주인공 에리얼 역할을 흑인 배우인 핼리 베일리로 낙점한 뒤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돼왔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주인공의 피부 색에 대한 부분이었다. 핼리 베일리가 캐스팅 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낫마이에리얼'(NotmyAriel)이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캐스팅 반대 운동이 펼쳐졌다.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핼리 베일리의 외양이 원작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와 상반된 것에 불만을 표출했다. 디즈니가 최근 들어 지나치게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한다는 반감도 작용했다.

미국 주류 언론은 이 같은 논쟁 자체를 '인종차별적'이라고 해석하는 분위기다. 미국 CNN은 지난해 9월 ''인어공주'에 대한 모든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확실한 반박'(A definitive rebuttal to every racist ‘Little Mermaid’ argument)이라는 기사를 내고 '인어공주는 덴마크 사람이니 흑인일 수 없다' '인어공주는 바닷속에 살아서 피부가 검을 수 없다' '인어공주는 유럽의 전설 속 인물이기 때문에 애리얼은 백인이어야 한다' 등의 주장에 반박했다. 최근 배니티 페어는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다루는 기사에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반발에 대한 '인어공주' 감독의 대답: '너무 편협하게 느껴진다'"며 롭 마샬 감독의 발언을 인용한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

개봉 후 영화에 대한 논쟁은 더 심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미국과 한국을 막론하고 온라인상에서 '인어공주'를 두고 여러 갈래의 견해가 충돌하고 있다. 일단 영화 자체의 만듦새에 대해 실망감을 표하는 반응이 상당수 있다. 네이버 평점 페이지에 따르면 국내 평론가들은 '인어공주'에 대해 "때낀 수족관 닦는 기분"(박평식) "아무리 노래하고 웃고 떠들어도 135분을 채우기엔 버겁다"(이용철) 등의 평을 내렸다. 유명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이 영화에 평점 2점을 준 사실도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도 평론가들의 평은 비슷한 분위기다. 대표적인 영화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291명의 평론가들이 매긴 이 영화의 신선도 지수는 67%를 나타내고 있는데 작품성을 인정받는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70%를 웃도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 좋은 점수는 아니다. 로튼 토마토에 따르면 '신선하다'고 평한 평론가들은 196명이고, '상했다'고 평한 평론가들은 95명이었다.
대중의 평가는 더 드라마틱하게 갈린다. 논점은 여전히 핼리 베일리다. 핼리 베일리의 가창력과 표현력에 대해 칭찬하며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한 영화의 캐스팅을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못생긴 흑인 여주인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반감을 표하는 이들이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영화관에서 흑인 인어공주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미국 흑인 어린이들의 모습이 등장했는데, 국내에서는 '아이가 보고 (무서워서) 울었다'는 혹평 리뷰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뿐 아니라 몇몇 국가들에서 이 영화가 '평점 테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미국의 영화 정보사이트 IMDb는 최근 '인어공주'에 대한 비정상적인 평점 활동이 감지됐다면서 이 같은 '평점테러'를 막기 위해 대체 점수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일부 유저가 '봇'을 통해 새로운 계정을 생성하거나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정을 사용해 이 영화에 대해 낮은 평점을 부여하는 시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인어공주'의 IMDb 평점은 10점 만점에 7.2점이다. 더불어 미국 매체 데드라인은 '인어공주'가 한국, 중국,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수상한 반응"을 얻고 있다며 이 영화가 해당 국가들에서 '리뷰 폭격'(혹은 '평점 테러')를 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저 인기가 없는 영화라면 조용히 극장에서 사라지는 것이 순리지만, '인어공주'는 강력한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얻고 있으며 혹평을 내린 일부 관객층은 적극적으로 반감을 표하고 있다. 그 중에는 때때로 '평점 테러'라 불릴 만한 행동에까지 나서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재고할 부분은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비하나 조롱이다. '에리얼이 아닌 에일리언'라는 둥 외모를 조롱하는 표현은 '인어공주'가 불러 일으킨 논쟁의 수준을 떨어트리는 혐오성 발언일 뿐 이 영화의 가치를 낮게 측정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인어공주'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감을 표현하는 모든 이들을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정의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기대와 다른 결과물에 대해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할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이 영화를 둘러싼 이런 논쟁 자체가 관객들의 인식을 보다 성숙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될 수도 있다.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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