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정윤미 기자 = 2021년 12월 오전. 인적이 드문 서울 강남구 한 도로를 질주하던 1톤 트럭이 도로 위를 걸어가는 20대 여성을 쳐서 쓰러뜨렸다. 약 16초 뒤 다른 트럭이 여성을 밟고 지나갔고 피해자는 사고 발생 약 1시간 만에 숨졌다.
1톤 트럭을 몰던 A 씨(64)는 제한 속도를 어기고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며 잘못을 인정했다. 반면 피해자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은 B 씨(41) 트럭과의 충돌 때문이라며 본인 과실과 사망의 인과관계를 부인했다.
이에 B 씨는 사고 당시 피해자가 도로에 쓰러져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고 반박했다. 사고를 피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며 자신의 잘못은 없다고 항변했다.
과속 운전해 피해자를 도로에 쓰러지게 한 A 씨와 운전 중 쓰러진 피해자를 보지 못하고 밟고 지나가 사망에 이르게 한 B 씨. A 씨와 B 씨 중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장수진 판사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와 B 씨 중 A 씨 죄책이 더 무겁다고 판단하고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B 씨에게는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법원에 제출된 증거들에 따르면 피해자는 1차 사고로 즉시 사망한 것이 아니라 2차 사고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법원은 A 씨의 과실 행위가 피해자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을 이룬다고 판단했다.
장 판사는 "A 씨로서는 후속 차량 운전자들이 조금만 전방주시를 태만히 해도 피해자를 역과(바퀴로 밟은 채 지나감)할 수 있음을 당연히 예상할 수 있다"며 "피해자를 충격해 1차로에 쓰러지게 한 A 씨 과실 행위가 피해자 사망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피해자 역시 새벽 시간에 편도 3차로 도로의 1차로를 걷고 있었던 과실이 있다"며 "A 씨가 사고 즉시 하차해 피해자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피해자 유족에게 형사합의금 4000만 원을 지급하고 합의해 유족이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B 씨에 대해서는 "감속과 전방주시 의무 등을 게을리한 과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장 판사는 "당시 도로의 제한속도인 50㎞/h로 주행했다면 정지거리는 약 25.6m로, B 씨가 선행 차량과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전방주시 의무를 다했다면 피해자를 발견한 뒤 정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었다'는 B 씨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B 씨 바로 앞에서 주행하던 트럭이 전방에 검은색 물체를 발견하고 비상등을 켜 1차로에서 2차로로 차선을 변경해 사고를 회피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장 판사는 "B 씨는 선행 차량이 비상등을 켠 상태로 차선을 변경하는 것을 인식해 사고를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거로 보인다"며 "업무상 주의의무를 다했다면 선행 차량처럼 충분히 이번 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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