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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강간상황극' 희대의 엽기범죄…무죄 뒤집은 2심

여성인 척 상황극 제안에 의심하고도 애먼 여성 성폭행
1심 "속아서 저지른 것"…항소심 재판부는 "알면서 범행"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2021-01-11 06:00 송고 | 2021-01-11 08:32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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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2019년 8월 5일 늦은 밤 11시. "누구세요"라는 '암호'를 들어야만 했던 A씨(39)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 세종시의 한 원룸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결국 발길을 돌렸다.
휴대전화 앱을 통해 자신과 ‘강간상황극’을 하기로 한 B씨(29)와는 "옆집입니다"라고 한 뒤 문을 열어주면 상황극을 시작하기로 말을 맞췄지만,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자 속았다고 생각한 탓이다.

원룸을 빠져나온 A씨는 B씨에게 자신을 속였냐며 따졌다. 그러자 휴대전화 속 B씨는 "남자가 배짱이 없느냐. 검은 모자를 쓰지 않았느냐. 화장실에 있었다. 다시 올라가서 시작하세요"라고 오히려 A씨를 쏘아붙였다.

다시 B씨가 알려준 원룸 문을 두드린 A씨는 그들이 하기로 한 암호도 없이 문득 열린 문을 비집고 들어가 엉뚱한 30대 여성을 성폭행했다.

거세게 저항하는 피해자를 보고도 정말 상황극이라고 굳게 믿었던 걸까. 스스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해 멈추지 못한 것일까.
이에 대한 1심과 2심의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다.

1심을 심리한 대전지법 제11형사부는 A씨가 "교사범의 도구로 이용당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A씨에 대해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와 불안, 고통의 크기는 차마 상상할 수 없고, 피해자는 사건 충격으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피해를 입었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상황극이 아님을 알면서도 범행했다는 의심이 들지만,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아무런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단지 맞은편 건물에 사는 이웃이라는 이유로 피해자로 점찍었던 B씨는 징역 13년에 처해졌다.

B씨가 A씨의 범행 당시 직접 현장을 찾아가 몰래 훔쳐봤다는 점과, 거듭 A씨의 범행을 부추겼다는 점에서 "정말로 성폭행할 줄 몰랐다"는 B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씨가 이밖에 다른 여성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뒤 "창문 잘 닫으세요. 알몸 다 보입니다"라는 등 몰래 촬영한 사진을 보내가며 수차례 성희롱하는 등 다른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도 고려됐다.

검찰은 재판부 판단에 사실오인과 법리오해가 있다며 즉각 항소했고, B씨에 대한 양형부당도 제기했다. A씨는 침묵했고, B씨 역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검찰은 항소심 과정에서 A씨의 유죄를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특히 조사 과정에서 A씨가 B씨가 보낸 "올라가서 시작하세요"라는 메시지가 스스로도 이상했다고 진술했다는 점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A씨가 범행 당시 훔쳐보는 B씨를 발견한 뒤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빼앗아 강가에 버리고, B씨와의 대화내용과 채팅앱을 삭제했다는 점도 범행 증거를 인멸하려 한 행위로 판단했다.

결국 A씨의 혐의는 입증됐고,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2020년 12월 4일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상황극이 아니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무관한 피해자를 강간했고, 상황극에 충실했다는 변명만 늘어놓으며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서 B씨의 형량은 징역 9년으로 줄었는데,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집 주소와 현관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알아내 결국 강간하게 하는 엽기적인 범행을 저질렀다"면서도 "다만 피해자와 합의했고, 절도로 인한 벌금형을 제외한 별다른 처벌 전력이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완전히 뒤바뀐 판결에 A씨는 물론 B씨도 상고했고, 검찰 역시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guse12@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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