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함께 진행하는 '상생안'이 최종 채택되지 않은 주요 이유는 담합에 대한 우려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2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브리핑을 열어 "담합을 유일한 이유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말한 순 없지만 판단에 있어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앞서 방사청은 지난 22일 제172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열어 만장일치로 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을 지명경쟁입찰로 결론 냈다고 밝혔다. 방추위는 수의계약과 지명경쟁입찰, 공동설계 등 3가지 방안을 검토했다.
이 청장은 "(공동설계의 경우) 담합의 여지가 완벽하게 사라졌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고, 사업추진 간에 추가적인 담합 요소가 발생할 여지가 충분히 더 남아있는 위험성도 있다"라며 "그 외 법적인 부분에서 추가적인 요소가 있어 그 방안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방사청은 방추위에 앞서 공정거래위원회에 공동설계 방안이 담합 소지가 있는지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이에 공정위는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면 법률상 허용될 수 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보냈다고 이 청장은 전했다. 이 청장의 설명은 공정위로부터 공동설계가 '담합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KDDX 전력화에 차질을 줄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는 취지로 보인다.
이 청장은 "KDDX 사업추진 방안 결정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적법성이었다"라며 "방사청은 사업 전 과정에서 법과 원칙에 따른 적법 절차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공정하게 처리한다는 기본방침 하에 이번 안건을 추진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각 사업 추진 방안별 적법성, 사업 수행 과정에서의 위험 요인, 전력화 일정에 미치는 영향 등 핵심 쟁점에 대해 전문적인 검토와 폭넓은 의견 수렴이 있었다"라며 "3가지 방안 모두 적법하다는 판단 하에 안건 상정이 됐고, 각 방안의 비교형량 결과를 선택한 것으로, 나머지 2개의 안이 부적합해서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방추위원들은 수의계약은 효율성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함정 사업의 경우 기본설계를 맡은 업체가 상세설계까지 수의계약을 맺어서 하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위원들은 이번 사업의 경우 효율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공정성이 있고 경쟁에 따른 예산 절감 가능성이 있는 방식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이 청장은 전했다.

아울러 이 청장은 이번 결정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영향을 받아 이뤄진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방사청은 그동안 빠른 전력화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수의계약 쪽에 무게를 실었으나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이상한 소리가 나온다"며 방사청장에 '신중한 검토'를 지시했는데, 이는 군사기밀 유출 관련 유죄 판결로 보안벌점을 받은 HD현대중공업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청장은 "대통령의 발언은 사회적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의계약만 유일한 안으로 상정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 여러 가지 방안을 논의하는 게 좋겠다는 원론적 언급으로 생각한다"라며 "다만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을 시점엔 이미 분과위원회에서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기로 상정돼 있었다"라고 말했다.
브리핑에 참석한 원종대 국방부 자원관리실장도 "타운홀 미팅 전에 분과위가 있었고, 분과위에선 사업부서의 편리성 때문에 '해왔던 방식'(수의계약)으로 하는 게 맞느냐는 의문이 있어 방추위까지 올려 결정하자는 토론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6000톤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확보하는 걸 목표로 추진됐다. 이는 해군이 운용 중인 광개토대왕급 구축함(DDH-I) 3척 등 최소 6척이 2028년~2032년쯤 퇴역 예정인 것을 고려한 시점에 맞춘 것이다. 하지만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이 2023년 12월 기본설계 완료 후 약 2년 지연됐다.
방사청은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기본 계획을 재작성해 방추위에 다시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방추위 의결이 완료되면 방사청은 제안요청서를 기반으로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에 대한 입찰 공고를 낸다. KDDX가 방산 물자기 때문에 방산업체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지정업체로서 입찰에 참여하며, 방사청은 각 사의 제안서를 평가한 뒤 최종 사업자를 결정하게 된다.
방사청은 2026년 말까지 계약을 체결해 사업자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데,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더라도 해군은 2032년은 되어야 선도함을 넘겨받게 된다. 선도함 제외 나머지 함정 건조까지 수년의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
이 청장은 "방사청은 무엇보다 해군의 전력화 일정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라며 "앞으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일정관리와 위험관리를 한층 강화하고, 관계기관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국민께 약속드린 전력화 시기를 반드시 준수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지상혁 방사청 함정사업부장직무대리는 "전력화 시기는 지연된 게 맞지만 일정 지연 요소를 계속 검토해서 최대한 만회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며 "사업추진 방안을 올리면서 (신속 전력화를) 준비해 왔고 어느 정도 완료된 상황이며, 단계를 밟아가면서 (일정을) 줄이는 방안을 계속 확인했고, 최초 기간에서 연기된 기간만큼 (전력화 시기를)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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