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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치킨 갑질' 가해자가 된 군인을 위한 변명

(서울=뉴스1) 이원준 기자 | 2021-01-14 07:00 송고 | 2021-01-14 09:52 최종수정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치킨 배달 문제를 둘러싼 '공군 갑질' 사건이 여전히 뜨겁습니다. 지난해 경기도 한 공군부대가 125만원어치 치킨을 먹고 전액 환불받은 데 이어 배달료 1000원 문제로 별점 테러까지 했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논란은 지난해 12월 부대 장병이 배달앱에 작성한 '별 1점' 리뷰가 온라인상에 공유되면서 일파만파 확산했습니다. 추가 배달료 1000원을 문제 삼으며 쓴 '주변에 군부대라고 호구 잡는다고 절대 시키지 말라고 전해야겠어요' '1000원 때문에 잠재고객들 다 잃었다고 생각하세요' 등 표현이 문제가 됐습니다.

배달료 분쟁이 발생하기 7개월 전인 지난해 5월엔 '125만원 환불'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대 장병이 치킨 60마리를 시켜 먹고 본사에 환불을 요청해 치킨값 전액을 되돌려줘야 했다는 게 치킨가게 점주의 입장입니다.

점주는 리뷰에 댓글을 달아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대체 누가 호구인가요' '125만원어치 닭을 드리고 10원 한장 못 받은 제가 호구인가요?'라며 말입니다.

공군은 지난 12일 '해당 부대장이 업주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여전히 논란은 진행형입니다. 어떤 후속조치를 했는지, 그래서 갑질 논란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히 언급하지 않아서입니다.

다만, 업주는 부대장을 만난 자리에서 '배달앱에 댓글만 달았는데 크게 논란이 되고 보도가 이뤄진 데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공군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논란이 확산하는 걸 점주도 원치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지난 12일 공군이 공식 SNS에 게재된 입장문. © 뉴스1

하지만 국민들의 공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군이 올린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했다'는 SNS 게시글에는 1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사실관계가 무엇인지 밝혀달라' '잘못이 있다면 사과해라'는 내용이 많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치킨을 먹튀하고 갑질한 공군부대를 처벌해달라'는 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건이 이토록 논란이 될 일이었냐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추가 배달비를 미리 안내받지 못한 소비자가 버럭하는 일도, 판매자가 별 1점에 발끈하는 일도 배달앱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어서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25만원 환불 사건을 겪었다는 것, 그리고 소비자가 '군인'이라는 사실일 겁니다.

기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건 온라인상에서 일부 네티즌의 혐오적 표현입니다. '군바리(군인을 속되게 부르며 비하하는 말) 녀석들 인성이 없다' '닭거지냐' '냄새가 그렇게 나는 치킨을 싹 다 처먹었냐' 등등. 기자가 작성한 기사에 실제로 달린 댓글입니다.

한 네티즌은 '군바리들 배달음식 못 시켜 먹게 법 좀 만들어라'며 아예 장병들이 외부음식을 반입한 일 자체를 문제 삼기도 합니다. 군부대가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면 보지 않았어도 될 표현들입니다.

군대는 국민에게 뭇매를 자주 맞는 편입니다. 그래서 논란이 있거나 잘못을 했을 때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좋게 이야기하면 저자세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몸 사리기입니다.

자신을 부대 관계자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당시 치킨에서 잡내가 나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치킨을 먹은 사람들 중 일부가 복통과 설사를 겪었다 △본사에서 납품받은 닭이 아니었다 △환불절차는 본사를 통해 진행했다며 업주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지만, 공군은 "부대 공식 입장이 아니며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라고만 했습니다.

치킨 갑질 논란은 이대로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치킨가게 점주가 피해자인지, 아니면 잘잘못을 따져봐야 할 일이 있었는지는 여백으로 남았지만 말입니다.

어쩌면 가장 큰 피해자는 갑질을 한 가해자가 되어버린, 졸지에 군바리라 욕을 먹고 있는 부대 장병들이 아닐까요.


wonjun4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