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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문 62% '보험금 깎거나 안 줘'…한화·교보 높아

보험사가 자문의 정하고 수수료 지급…설명의무도 없어
금감원 "내년 초 자문결과 설명의무에 포함"

(서울=뉴스1) 민정혜 기자 | 2019-10-03 07:10 송고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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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를 위해 의료기관에 자문을 의뢰한 10건 중 6건 이상은 자문 결과를 근거로 청구보험금 일부 또는 전부를 주지 않은 것(부지급)으로 드러났다. 특히 대형사 중 교보생명과 한화생명은 의료자문을 한 후 보험금을 부지급한 건수 비중이 업계 평균보다 크게 높았다.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과잉진료나 보험사기 등을 걸러내 보험금을 적정하게 지급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다만 보험사가 자문의를 선정하고 수수료를 지급해 보험사의 '입김'이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일부 보험사는 의료자문 결과를 인용해 보험금을 깎거나 전액 거절한 후 보험소비자에게 설명조차 하지 않아 의료자문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험금 안 주려고 '꼼수' 지적…보험사 "꼼꼼한 심사로 보험금 누수 줄여야"

3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제출한 '보험회사별 의료자문 결과 현황'을 보면 2018년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의뢰한 2만94건 중 1만2510건(62.3%)이 그 결과를 근거로 보험금을 일부 또는 전부 부지급됐다. 생명보험사 의료자문 부지급률은 2016년 63.3%, 2017년 68.6% 등으로 최근 3년간 부지급률이 60%를 웃돌았다.

특히 대형사로 분류되는 교보생명은 2018년 총 3047건의 의료자문을 의뢰해 그 결과를 근거로 77.6%에 달하는 2363건의 보험금을 부지급했다. 한화생명 역시 의료자문 2814건 중 77.5%에 해당하는 2182건의 보험금을 청구액보다 덜 주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았다.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의료자문 7994건 중 절반이 넘는 4429건(55.4%)에 대해 부지급을 결정했다.

의료자문을 근거로 한 부지급률이 높은 생보사는 의료자문 200건 이상 기준 교보생명, 한화생명, ABL생명(76.4%), 라이나생명(71.8%), KDB(70.6%), AIA생명(66.4%) 순이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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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보험사는 총 6만7373건의 의료자문을 의뢰해 1만8871건(28.0%)에 대한 보험금을 부지급했다. 손보사의 경우 의료자문 500건 이상 기준 NH농협손해보험(66.5%), 한화손해보험(61.8%), MG손해보험(41.0%), 흥국화재(37.0%), 메리츠화재(35.6%) 순으로 부지급률이 높았다. 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1만8955건의 의료자문을 의뢰해 3905건(20.6%)을 부지급했다.

보험업계는 의료자문에 따른 보험금 부지급률이 높은 것 자체가 부적절하진 않다는 입장이다. 보험금 지급 심사가 공정하고 깐깐하게 이뤄져야 다른 가입자가 낸 보험료 누수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의료자문이 보험금 축소에 악용되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따라 건수를 줄이려는 노력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보험사는 보험소비자가 청구한 보험금을 심사할 때 조사 필요성이 있는 건을 따로 분류하고 그중 일부에 대해 의료자문을 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의료자문은 의사가 보험금 지급에 필요한 소견을 정확히 밝히지 않거나, 과다의료행위 등으로 인해 불필요한 보험금 지급의 가능성이 농후할 때 주로 의뢰한다"며 "보험금은 고객이 낸 보험료로 지급하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보험금 지급심사를 충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화생명 관계자도 "의료자문은 전체 보험금 조사 대상 중 해당 치료가 약관에서 보장하는 질병 치료 목적에 부합하는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의뢰한다"며 "부지급률이 높게 나왔지만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한화생명이 공개한 2018년 보험금 심사 조사건수(7만5057) 중 의료자문 비중은 3.7%였다.

보험소비자는 의료자문 등을 인용한 보험사의 보험금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금감원에 분쟁조정신청을 하거나 해당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 양측이 합의한 제3 의료기관에 다시 의료자문을 의뢰할 수 있다.    

◇의료자문, 보험사에 유리한 '기울어진 판'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보험금 심사 때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필요하면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 근거해 의뢰할 수 있다. 보험금 심사를 보다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진행하기 위한 단계다. 의료자문 전 보험소비자에게 동의 받는 절차도 마련돼 있다.

문제는 보험사가 자문의를 선정하고 건당 20만~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보험사 '입김'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실제 보험사가 의뢰한 의료자문은 특정 의료기관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생보사의 경우 2014~2018년 5년 동안 의료자문이 한양대병원·고려대안암병원·인제대상계백병원·서울의료원·여의도성모병원 등 5개 기관에 38.9%가 집중됐다.

오중근 금융소비자연맹 재해사고보상지원센터 본부장은 "보험사 자문의들은 자문 수수료로 부수입을 얻기 때문에 보험사가 주장하는 대로 자문 내용을 회신할 가능성이 크다"며 "의료자문 자체가 보험소비자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주장했다.

보험업계는 자문의 선정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협회를 중심으로 각 의학회와 업무협약을 맺어 자문의 풀(Pool)을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생명보험협회가 업무협약을 체결한 의학회는 몇 년째 대한직업환경의학회뿐이다. 생보협회 관계자는 "자문의 풀 구성을 위해 의학회와 협약 체결을 추진 중이지만 의료계 협조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보험사가 의료자문 결과를 보험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채 보험금을 축소하거나 안 준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의료자문이 환자와의 대면 없이 서류로만 이뤄져 보험소비자가 관련 설명을 들을 기회조차 없다. 보험과 의료 모두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가 많은 분야인데, 보험소비자는 정보 접근조차 제한되는 것이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태규의원실 제공)© 뉴스1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이태규의원실 제공)© 뉴스1


이태규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8년 12월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금을 부지급하게 될 경우 해당 의료기관이 보험소비자를 직접 면담해 심사하도록 의무를 부과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선순위에 밀려 본격적인 논의가 미뤄지고 있다.

이 의원은 "의료자문은 보험사가 약관상 보험금 지급사유 해당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 제한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며 "의료자문이 거대 보험사의 갑질의 수단으로 악용돼 보험소비자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7월19일 보험사가 의료자문 결과를 인용해 보험금을 감액 또는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자문 결과를 의무적으로 보험소비자에게 설명하도록 보험업감독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보험사가 의료자문을 받을 경우 그 이유, 자문 의뢰내용과 의료자문 기관에 제공되는 자료 내역도 보험소비자에게 알려야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의료자문은 보험사 보험금 심사 과정에 꼭 필요한 절차지만, 일부 보험사가 보험소비자에게 의료자문 이유와 결과 설명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있어 설명의무를 부과한 것"이라며 "내년 초부턴 해당 의무를 어기면 보험업법에 따라 과징금 등이 부과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m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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