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손엄지 전지아 기자 = 주주 권익 강화를 위한 잇단 상법 개정이 상장사들의 경영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에 이어 내년부터 전자주주총회까지 도입되면서 기업들이 한꺼번에 여러 제도 변화에 대응해야 해서다.
특히 전자주총 시행으로 의결권 계산 오류나 전산 장애가 발생할 경우 주총 결의의 적법성을 둘러싼 소송으로 번질 수 있지만 이에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아직도 마련되지 않았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현장 주총과 온라인 주총을 병행하는 '병행형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개최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210개 상장사가 대상이다.
전자주총은 주주들이 현장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도 온라인으로 실시간 발언과 표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소액주주의 주주권 행사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지만, 기업들은 기존 현장 주총에 온라인 운영체계까지 갖춰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전자주총 도입뿐만이 아니다. 개정 상법에 따라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집중투표제를 배제할 수 없게 됐고, 감사위원 분리선임 의무 인원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확대됐다.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는 강화된 3% 의결권 제한도 적용해야 한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여러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나눠 행사하거나 특정 후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제도다. 일반투표보다 의결권 계산과 집계 절차가 복잡한 만큼 이를 전자주총에서 구현하기 위한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
감사위원 선임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최대주주가 지분 20%, 특수관계인이 10%를 보유한 기업이라도 합산 3%룰이 적용되는 감사위원 선임에서는 이들의 의결권이 합계 3%로 제한된다. 기업이 특수관계인 지분을 잘못 합산하거나 의결권 제한을 정확히 적용하지 못하면 선임 결과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택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연구팀장은 "기업들이 걱정하는 것은 집중투표제 때문에 경영권이 위태로워지는 것보다 법률상 위반 사항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집중투표제와 3%룰 적용에 대한 명확한 유권해석과 운영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자주총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전산 장애는 기업들의 부담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온라인 주주의 의결권 행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총 결의의 효력을 둘러싼 다툼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경영권 분쟁 중인 기업에서 회사 측과 행동주의 펀드 측이 이사 선임을 놓고 표 대결을 벌일 때 온라인 주주의 투표가 누락되거나 결과 집계가 중단되면, 이사 선임에 실패한 측은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결의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개정 상법에는 이러한 상황에 대비한 법적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다. 법무법인 세종에 따르면 2024년 정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 원안에는 전자통신 장애 등 기술적 사유로 결의에 하자가 발생하더라도 회사에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면 결의취소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최종 개정 상법에는 해당 조항이 반영되지 않았다.
세종은 "전자통신 장애로 인한 결의의 하자와 관련해 취소 여부를 전적으로 법원의 판단에 맡겨두고 있다"며 "통신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전자주총 결의의 효력이 불안정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세종과 율촌, 태평양 등은 전자주총 시행을 앞두고 자문 전담팀을 구성했다. 상법 개정으로 향후 법률 자문 수요와 분쟁 대응 수요를 새로운 시장으로 본 것이다.
율촌은 "연이은 상법 개정과 기관투자자·행동주의 펀드의 주주관여 확대가 맞물려 기업 실무자들이 전례 없는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전자주총에서는 온라인 주주의 발언 횟수와 시간을 어디까지 제한할지, 사전 전자투표를 마친 주주가 주총에 참석해 의결권을 다시 행사하면 어떻게 처리할지 등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주주권을 강화하는 제도는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기업이 실제 운영 과정에서 따라야 할 세부 기준은 아직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강 팀장은 "전자주총 도입만으로 개인주주의 의결권 행사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면서 "법무부가 예측 가능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신속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om@news1.kr

편집자주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세 차례 상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자본시장 개혁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주주 권익 강화 조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보호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논란과 한국형 베어허그 제도, 전자주주총회 도입 등을 계기로 국내 상장사의 경영권 방어 실태와 제도적 보완 과제를 짚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