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지난 5월 포항기지 인근에서 해군 P-3CK 해상초계기 추락 사고가 발생한 이후 민·관·군 합동 사고조사위원회가 5개월간 활동했으나 사고의 원인을 선명하게 밝혀내지 못했다. 해군은 실속(失速) 대응 훈련 실시, 기체 받음각 지시계 개선 등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으나, 사고의 '결정적 원인'이 없는 재발 방지책은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3일 해군과 조사위 발표에 따르면 사고기의 엔진에서 손상이 발견됐으나, 사고 직전까지 엔진 작동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다만 해당 기체에는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와 음성기록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비행 상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조사위는 다수의 사고 지점 인근 CCTV 영상과 훈련용 시뮬레이터를 활용해 사고 상황을 재연·분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사고의 '결정적 원인'을 밝히는 데 큰 어려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해군 관계자는 "사고의 직접 원인은 이륙 상승 선회 중 저고도·저에너지, 고받음각·고경사각 상태에서 실속에 진입한 후 회복이 불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했다"라며 "사고 유발 및 악화에 영향을 준 기여 요인은 기계적, 인적, 환경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했다고 평가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고기가 실속 상태가 된 이유가 기계적 결함인지 조종사의 과실인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아울러 조종사의 실속 회복훈련과 조종불능 회복훈련 미실시도 사고 원인일 수 있다고 조사위는 판단했다. 사고기 조종사가 실속 징후를 인지하거나 회복 절차를 수행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게 조사위의 판단이다.
전반적으로 이번 사고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추정'되고, 결정적 원인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해군의 판단이다. 만일 이번 사고가 정비 불량 등 결정적인 인적 과실이나 기계 결함으로 인한 사고라면 재발 가능성이 충분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해군은 사고기와 동일 계통의 초계기 내부 장비를 일부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실속) 경보장치를 설치하고 공기의 흐름과 날개의 경사각이 이루는 각도를 표시하는 받음각 지시계 위치를 효율적으로 옮기는 것은 분명히 도움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기에 경보장치가 없고, 받음각 지시계도 조종사가 빠르게 식별하기 어려운 위치에 부착돼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군은 아울러 '훈련 강화'를 재발 방지책으로 제시했다. 이번 사고기 조종사는 물론 대부분의 해군 조종사들은 실속 회복훈련과 조종불능 회복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조사 결과 확인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기는 실속으로 인한 진동 이후 불과 6초 만에 추락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이같이 짧은 시간 동안 조종사들이 훈련에 따른 대응을 적절하게 할 수 있었겠느냐고 의구심을 제기한다. 실속훈련이 날개 떨림·속도 저하 징후를 조기에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고도에서 발생한 이번 사고처럼 반응 시간을 거의 주지 않는 환경에서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다.
2008년 7월 미 해군에서도 P-3 항공기 실속 사고가 있었다. 당시 고도 5000피트(약 1.5㎞)에서 실속이 발생했고, 항공기는 4800피트를 하강한 뒤 200피트에서야 겨우 정상 비행을 회복했다. 우리 해군의 사고는 불과 800피트(250m) 지점에서 발생했다.
아울러 받음각 지시계 위치 조정 등의 조치는 군이 이번 사고를 사실상 '조종사의 과실'로 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근본적으로 실속이 왜 발생했는지, 특이 기계 결함이나 정비 문제인지 여부는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만큼 재발 방지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사위는 사고기 1번 엔진에서 내부이물질로 인한 손상을 확인했다. 그러나 엔진은 사고 직전까지 정상 출력으로 작동해 손상이 속도 감소와 실속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특정할 수 없게 됐다.

해군은 이번 사고의 배경 요인 중 하나로 조종사 인력 부족도 언급했다. 실제로 공군의 경우 E-737 '피스아이' 공중조기경보통제기 1대당 약 3명의 조종사 인력을 보유한 데 비해, 해군은 1대당 조종사가 1.2명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은 부족한 조종사 양성에 초점을 둔 인력운영·인사관리 방안을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종사 양성에 수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인력 부족' 문제는 아무리 긴급한 대책을 세워도 향후 몇 년간은 극복할 수 없는 과제로 평가된다.
P-3CK의 운영 재개는 시험비행과 단계적 훈련비행 이후 그 시기를 정할 방침이다. 기체 정밀 검사에선 특별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 내부에선 "사고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훈련비행을 실시하는 중 뭔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건 다행인 것인지 불행인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푸념도 나오고 있다.
익명의 군 장교는 "사고기에서 왜 속도가 줄었는지, 왜 실속 상태에 진입했는지, 엔진 손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모두 불확실한 상황에서 비행 재개 판단은 무슨 근거로 내릴지 궁금하다"라며 "무엇을 기준으로 안전성을 판단할지, 그리고 조종사들이 이를 얼마나 신뢰할지 불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해군은 현재 P-3C와 P-3CK 총 15대, P-8A 6대 등 총 21대의 해상초계기를 운용 중이다. 이들 항공기는 휴전선 길이의 9.5배, 남한 면적의 3.3배에 해당하는 약 30만㎢ 작전해역을 상시 감시하고 해상교통로를 보호하는 핵심 전력이다.
현재 P-3CK 8대의 비행이 멈춘 상태가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어 나머지 13대가 사실상 모든 감시 임무를 떠안고 있다. 해군은 P-3CK 기종을 2030년까지 운용하고 이후 최신형 기종을 도입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개를 서두를 수도, 장기간 운항을 중단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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