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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80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몸뚱이만 겨우 빠져 나와"

3일간 500㎜ 물폭탄…폐허로 변한 전남 구례
9일 기준 피해액만 최소 568억

(구례=뉴스1) 황희규 기자 | 2020-08-10 17:35 송고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하고 있는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입은 상가 식기류를 세척하고 있다. 2020.8.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10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5일시장.

지난 7일부터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시장은 전쟁통을 방불케 했다.

상인들은 빗자루와 대걸레 등으로 매장 내부에 고인 물을 연신 빼내는가 하면 물에 젖어 사용할 수 없는 식자재와 가전제품 등을 밖으로 내놓느라 바빴다.

일부 상인들은 혹여나 쓸 수 있는 물건이 있을까 쓰레기처럼 매장 내 쌓인 물품 등을 이리저리 뒤집어 봤다.

철물점과 카페를 운영하는 고영호씨(30)는 "내 키보다 높게 들이닥친 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단 하나도 없다"며 "난생처음 겪는 물난리라 막막하기만 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한 10일 오후 전남 구례군 구례여자중학교 체육관에서 지난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대피해 뉴스를 보고 있다. 2020.8.10/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물난리로 구례여자중학교 체육관으로 대피한 수재민들도 착잡한 마음을 드러내기는 마찬가지였다.

구례 5일시장에서 약초를 판매한다는 이방자씨(79·여)는 "지난 8일 폭우가 정말 무서웠다"며 "상가 옥상으로 대피해 119 구조대에 의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급박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당시 장날을 맞아 평소같이 비가 오는 것으로 예상하고 약초들을 가게에 진열하며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 정도 비쯤이야 큰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씨였지만, 오전 8시쯤 되자 길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고 평소 같지 않음을 직감한 이씨는 진열한 약초들을 거두어 들일 틈도 없이 서둘러 딸과 함께 2층으로 몸을 피신해야 했다.

이씨는 침수 당시를 회상하며 "우리 상가는 가게 위에 집 2층에 옥상까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옆집 사람들은 1층 건물이라서 기와지붕 위로 대피했다"며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동네 전체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며 "80년 가까이 살면서 이런 침수는 처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태풍은 많이 겪어봐서 별로 무섭지도 않다"면서 "물이 정말 무섭긴 하더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제5호 태풍 ‘장미’가 북상하고 있는 10일 오전 전남 구례군 구례읍에서 상인들이 침수 피해를 입은 상가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2020.8.1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5일장 인근에 거주하는 백화자씨(78·여)는 "자고 일어나니 순식간에 물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며 "없는 살림에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다"고 토로했다.

주민 임해순씨(81·여)는 "구례에서 한평생 살았지만 유례없는 물난리가 발생했다"며 "잠옷만 걸친 채 몸뚱아리 하나 겨우 건졌다. 냉장고, 세탁기 가전 등 성한 게 단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수재민들은 긴급 대피소에서 24시간 생활하는 것과 관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리는 것 아니냐며 깊은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80대 여성 강모씨는 "긴급대피소의 규모가 좁아 텐트가 서로 붙어있고, 24시간 동안 생활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우려가 걱정되긴 한다"며 "그래도 코로나19보다는 집이 물에 잠긴 걱정이 더 앞선다"고 말했다.

지난 7∼9일 5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구례는 섬진강이 범람하고, 지류인 서시천 제방이 무너지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구례군은 이번 집중호우에 따른 피해액을 최소 568억원으로 집계했다.

이날 구례군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 기준 민가주택 1182가구, 공공시설 11개소 등이 침수피해를 입었으며, 농경지 421㏊가 물에 잠기고, 가축 3650마리가 피해를 입었다.

군은 피해신고가 이어지고 있어 피해 규모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h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