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제2의 염전노예 사건 피해자'로 알려진 박영근씨가 노동청 공무원의 합의 종용으로 피해를 구제받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박씨 측은 이날 법무부를 상대로 하는 3500만원 상당의 국가배상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지적 장애를 가진 박씨는 2014년 7월부터 약 7년 동안 전남 신안군의 한 염전에 사실상 감금당한 상태로 일을 했다. 새벽 3시부터 밤 11시에 이르는 근무시간, 관리자의 동행 하에 이뤄지는 연 2회 외출 등의 노동 착취를 견디던 박씨는 2021년 5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박씨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에 진정을 제기했으나 사건을 조사한 근로감독관은 "체불임금액 4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사업주의 진술만 듣고 합의를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감독관은 이 사업주가 과거 장애인 노동착취 사건으로 처벌받은 전력을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박씨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2년 11월 해당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장애 여부를 확인하고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근로감독관의 과실을 인정한 바 있다.
박씨 측은 "7년 간의 노동착취에도 400만원만 받고 피해구제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라며 소송을 이유를 밝혔다. 해당 사업주는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사기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으나 박씨는 어떠한 사과나 배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해야할 점은 이번 국가배상소송이 행정법원에 제기됐다는 것이다. 국가배상소송은 관행적으로 민사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피해자 권리구제'를 위해 행정소송으로 변경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배상은 공무원의 고의 및 과실을 입증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사소송은 입증 책임이 모두 피해자에게 있는데, 국민이 공무원의 위법 여부를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행정소송으로 갈 경우 재판부가 직권으로 증거를 수집할 수 있어 피해자의 권리구제에 유리하다는 주장이다.
안철상 대법관은 행정법원 부장판사 시절인 2007년 한 논문에서 "국가배상사건이 공권이냐, 사권이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뉘고 있지만 국가배상사건은 그 실질이 행정처분의 위법성을 다툼의 대상으로 하고 있어 행정법원의 관할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안 대법관은 지난해 8월 선고된 긴급조치 9호 관련 국가배상소송 대법원 판결 중에서도 대법관 별개의견을 남겨 "국가배상소송 관할은 행정법원이 적절하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정연주 전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도 2018년 논문을 통해 "이론상, 소송실무상 당연히 국가배상소송은 행정소송으로 가야한다"면서 "특히 피해자인 일반 국민의 효과적인 권리구제 측면에서 요구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씨의 소송을 대리하는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 입장에선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의 차이는 매우 크다"면서 "행정법원이 소송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항고해 대법원 판단까지 받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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