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민재 기자 = 지난 17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복도에는 수사 기록 운반용 수레 9대가 늘어서 있었다. 수레 곳곳에 적힌 '바퀴가 작아 불편함', '여기 무너졌음' 등의 글씨는 매일 법정을 오가는 기록의 무게를 짐작게 했다.
권예리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검사(사법연수원 47기)의 책상 위에는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기록이 쌓여 있었다.
법정으로 향할 채비를 하는 권 검사의 옆에 있던 또 다른 검사는 "재판이 있는 날은 차라리 낫다"며 "재판이 없는 날은 밀린 기록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더 바쁘다"고 했다.
오전 9시 56분. 법복을 입고 법정 왼쪽 검사석에 앉은 권 검사는 형형색색의 메모지가 붙은 기록을 넘기며 '릴레이 재판'에 돌입했다.
그는 법정에서 새롭게 제기된 피고인 측 주장을 반박할 증거를 제출하기 위해 종이에 메모를 남겼다. 오전 재판들은 11시 30분쯤 마무리됐다.
권 검사는 법정을 나서며 "(피고인이 많은) 유사 수신이나 사기 사건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계속 메모하며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 식사를 구내식당에서 10분 만에 해결하고 오후 재판 준비를 시작했다. 오후 2시쯤 열린 재판에서 권 검사는 몸이 불편한 증인에 맞춰 질문을 구성하고 신문을 진행했다.
재판은 오후 6시를 조금 넘겨 끝났다. 권 검사는 불이 꺼진 법원 청사를 나오며 "저녁은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내일 재판 기록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했다.

오후 7시 30분쯤 검사실에서 기자와 다시 만난 권 검사는 산더미 같은 기록 속에서 수많은 사건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는 공판 검사의 일상을 '하루살이'에 비유했다.
권 검사는 "주 4일 재판이면 온전히 기록을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라며 "하루하루 급급하게 대응하다 보니 저희끼리는 '하루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공판 검사들은 재판이 없는 날이나 점심, 저녁 시간을 틈타 재판을 준비하고 상소 여부 및 무죄 사건 검토, 양형 분석, 항소이유서 작성 등을 수행한다.
권 검사는 "재판 다녀오면 결재판들이 쌓여 있다"며 "자투리 시간에도 재판 절차에 필요한 업무들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판 검사들이 주 3~4회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퇴근 시간을 조금이라도 앞당기려고 끼니는 간단히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현직 검사인 남편과의 일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말부부인 이들은 평일 내내 이어지는 야근 탓에 출퇴근길이나 저녁 식사 시간을 쪼개 짧은 통화로 안부를 묻는다.
권 검사는 "바쁘게 일하다 흐름이 끊길까 봐 주로 이동하는 시간에 맞춰 짬짬이 통화한다"며 "같이 살 때도 둘 다 늦도록 야근을 해 아침에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곧바로 자야 해 짧게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나오는 "수사를 안 하니 공소청 검사 정원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실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도 했다.
권 검사는 "직접 수사 개시 사건이 중수청으로 넘어가더라도, 이는 전체 검찰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 일선 검사들의 업무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권 검사는 "여러 합수본, 특검 등이 장기화하면서 직접 수사 및 공소 유지를 위해 검사들이 많이 파견된 상태였다"며 "사직 등 여러 사유로 미제가 누적된 상태여서 검사들의 피로도도 높아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들 열심히 일하는데도 사건 적체가 해소되지 않아 답답하고 벼랑 끝에 몰린 듯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올해 8월 기준 전국 검찰청의 미제사건은 16만 4822건이다.
권 검사는 "경찰 송치 기록만으로 공소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선 법정에 와서야 조서에 없던 주장이 나와 공판에 투입해야 하는 노력이 커질 것"이라며 "지금의 인원만으로 충분히 감당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1만 쪽이 넘어가는 합의부 사건 기록은 읽는 데에만 며칠이 걸린다"며 "다들 책임감이 강해 더 잘하고 싶어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 않은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중압감이 크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전국 공판 검사는 총 295명이다. 이는 전국 형사재판부 수(543개)의 절반 수준이다. 공판 검사 1명이 담당하는 재판부는 1.84개다.
살인적인 업무 강도 속에서도 버티는 이유는 검사로서의 사명감과 사건 관계자들을 향한 책임감이다.
권 검사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사나 푸념할 때도 있다"면서도 "자기 사건이 대충 처리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지 않나. 수만 쪽의 기록은 결국 누군가의 인생"이라고 짚었다.
이어 "증인 신문 도중 피해자들이 저를 의지하는 눈빛이 느껴지거나 억울함을 풀어줘 고맙다는 편지를 받을 때면 다시 일할 에너지가 충전된다"며 "그럴 때면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가도 뭉클하고 벅찬 감정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기록 더미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도 새벽에 들어갔는데, 오늘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되네요." 권 검사는 다시 책상에 앉아 골무를 끼고 서류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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