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500년 도읍지로 흥망성쇠의 유적 간직 2013년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보존·관광사업 활기
편집자주 ...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송악산 능선에 남아 있는 발어참성(勃禦塹城)의 서쪽 성곽 모습. 발어참성은 고려가 성립되기 전인 896년에 축조된 성으로 외성 성벽을 겸하고 있는 북벽, 서벽과 동벽의 북쪽 일부 구간만이 남아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개성성(외성)의 서쪽 성곽 모습. 개성성에는 동서남북의 4대문과 중문 8개, 소문 13개가 있었고 중요한 성문에는 옹성과 치(雉)를 쌓았다. 현재 성문은 모두 없어지고 터만 일부 남아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개성성 서쪽 성곽 시작부분에 세워져 있는 세계문화유산 표식비.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내성의 서쪽 문이었던 눌리문(영추문). 발어참성과 내성, 외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내성의 정남문인 남대문 정면 모습. 현판은 조선전기의 명필인 석봉 한호(韓濩)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내성의 정남문인 남대문 뒷면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내성의 남문인 남대문에 옮겨져 걸려 있는 연복사종. 14세기에 주조된 동종(銅鐘)으로 지름 1.9m, 높이 3.12m, 두께 0.23m, 무게 약 14톤의 큰 종이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고려 왕궁터인 만월대로 올라가는 4개의 계단. 33단으로 된 4개의 계단을 오르면 기본 정전인 회경전터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만월대터 전경. 만월대는 고려왕조 개국부터 멸망에 이르는 470여 년 동안 왕궁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뉴스1
만월대터 발굴성과에 기초해 그린 고려 왕궁과 회경전 앞 태조 왕건의 행차 모습. 이 그림은 왕건릉 입구 정자각에 전시돼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고려시기에 세워진 만월대 인근의 첨성대 전경. 현재 화강석을 다듬어 만든 축대 부분만 남아 있다. 축대의 높이는 2.8m이며, 한 변의 길이는 2.6m이다. 조선시대 작품인 만월회고(1612년)에는 고려 왕궁터와 함께 곁에 있는 첨성대가 지금의 모습대로 그려져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고려 태조 왕건과 왕비의 무덤인 현릉(顯陵) 입구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고려 태조 왕건과 왕비의 합장묘인 현릉(顯陵)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1.30.ⓒ 뉴스1
편집자주 ...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