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밸류체인]⑤'韓 없인 AI 어렵게'…HBM 이을 제2 핵심고리 찾는다

반도체 공급국에서 AI컴퓨팅 생산국으로…제조업도 전략자산
AIDC·피지컬AI로 핵심고리 확대…'일방 의존'을 '상호의존'으로

편집자주 ...AI 모델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만으로 AI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뉴스1>은 미토스 사태 이후 급변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을 짚고, 한국이 AI를 빌려 쓰는 국가에서 글로벌 AI 밸류체인의 핵심 국가로 올라설 수 있을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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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생성 이미지)

(서울=뉴스1) 나연준 기자 = SK하이닉스(000660)와 삼성전자(005930)는 올해 2분기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의 83%를 차지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매출 기준 점유율은 각각 50%와 33%에 달한다. HBM은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생성형 AI 확산과 함께 수요가 급증하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경쟁력도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HBM은 어디까지나 AI 반도체를 구성하는 부품이다. 프론티어 AI 모델과 클라우드,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산업의 주요 분야는 미국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AI 밸류체인 전반을 국내 기술과 기업만으로 구축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경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연구위원은 HBM 경쟁력이 곧바로 AI 산업의 주도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연구위원은 "HBM은 분명 한국이 가진 경쟁력 있는 자산이지만 HBM 하나만 가지고 글로벌 AI 밸류체인에서 지속적으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부품 하나의 경쟁력을 넘어 시스템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여러 기술을 연결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도 지난 2월 보고서에서 AI가 반도체·컴퓨팅·데이터·모델·애플리케이션 등이 국경을 넘어 연결된 산업인 만큼 완전한 '풀스택 AI 주권'은 구조적으로 어렵다고 분석했다.

대신 전략적으로 중요한 역량을 확보하면서 외부 의존에 따른 위험을 관리하는 '관리된 상호의존'(managed interdependence)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부도 AI 반도체에 이어 AIDC와 피지컬 AI를 중점 육성 분야로 두고 관련 산업과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글로벌 AI 산업에서 한국의 최대 경쟁력은 HBM 생산 역량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주요 국내 기업들이 추진하는 AI 데이터센터(AIDC)는 HBM이 탑재된 GPU 등 AI 가속기를 국내에서 직접 가동함으로써 AI 토큰을 생산하는 '컴퓨팅 파워' 공급이 주력이다. AI 모델 학습과 추론에 필요한 연산을 국내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델만 가지고는 AI 생태계가 수익을 내고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실질적인 동력이 될 수 없다"며 "하드웨어와 서비스, AIDC로 확장되지 않으면 국민이 사용해 수익이나 효율성을 만들어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AIDC를 AI 시대의 '토큰 팩토리'로 표현했다. 그는 "AIDC가 지능을 생산해 국내 기업이나 이용자가 사용하면서 편익을 높이고, 나아가 아시아 허브로서 이를 수출할 수 있는 부분까지 포함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AIDC를 많이 짓는 것만으로 글로벌 AI 밸류체인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해외 GPU와 모델·클라우드를 가동하는 시설에 그친다면 AIDC 투자로 창출되는 부가가치가 국내 AI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AIDC를 국내 반도체·네트워크·클라우드·서비스와 연결해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부가가치를 늘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국내에서 구축 중인 AIDC들도 이 같은 방향을 택하고 있다. 네이버(035420)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세종에 AI 팩토리를 구축하고 있고, SK텔레콤(017670) 역시 최대 2GW 규모 AIDC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SK하이닉스의 HBM을 비롯한 그룹 내 반도체·에너지 인프라도 연계할 계획이다.

이경선 연구위원은 AIDC 등 컴퓨팅 인프라 투자도 실제 활용 수요와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컴퓨팅 능력도 중요하지만 생산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활용 수요까지 연결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투자는 필요하지만 활용 수요까지 이어져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본문 이미지 - SK브로드밴드 가산 IDC에 구축된 AI 데이터센터&#40;AIDC&#41; 모습. &#40;SKT 제공&#41; 2025.1.13 ⓒ 뉴스1
SK브로드밴드 가산 IDC에 구축된 AI 데이터센터(AIDC) 모습. (SKT 제공) 2025.1.13 ⓒ 뉴스1

HBM 다음으로 한국이 글로벌 AI 밸류체인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영역으로는 피지컬 AI가 꼽힌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는 피지컬 AI에서는 범용 AI보다 모델의 비중이 작아지고 하드웨어와 시스템통합(SI)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장 교수는 "피지컬 AI에 필요한 하드웨어 생태계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정도"라며 "한국에는 분명히 기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조업 강국이라는 사실이 곧바로 피지컬 AI 모델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장 교수는 "공장이 있다고 그냥 데이터를 가져오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맥락 데이터"라며 "지금부터 피지컬 AI를 위한 센서와 액추에이터, 통신장비를 설계하고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쟁력은 이미 쌓여 있는 제조 데이터보다 AI가 사용할 제조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산업 기반에 있다는 의미다.

장 교수는 이를 위해 모델이나 로봇 개발 뿐만 아니라 센서·액추에이터·통신·자동화 등 피지컬 AI를 구성하는 기반 기술과 데이터 표준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제조장비와 시스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AI가 활용하려면 데이터 구조와 장비 간 상호운용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제조 생태계를 AI와 결합하면 수출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해외 AI 모델을 제조업에 맞게 특화하고 한국의 센서·자동화 장비·로봇과 SI를 묶어 공장 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장 교수는 "고객이 센서와 로봇을 하나하나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시스템을 다 구성해 턴키(일괄)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AI 기반 무인공장인 '다크 팩토리' 자체를 수출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이성엽 교수는 미국·중국과 직접 경쟁하기보다 제3국 시장을 공략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교수는 "모델과 플랫폼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AIDC를 아시아 허브로 키우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며 "미국과 중국이 아닌 제3의 틈새시장을 우리 시장으로 가져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이 글로벌 AI 밸류체인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HBM에 집중된 강점을 다른 분야로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다. HBM에서 AIDC·컴퓨팅으로, 센서·로봇·산업 데이터·SI가 결합한 피지컬 AI로 영역을 넓히는 방식이다.

모든 AI 기술을 국산화하기 어려운 만큼 해외 기술에 대한 일방적인 의존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HBM처럼 세계 AI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높은 경쟁력을 가진 분야를 AIDC와 피지컬 AI 등으로 얼마나 늘릴 수 있느냐가 향후 과제로 남는다.

브루킹스가 제시한 '관리된 상호의존'도 모든 기술을 한 나라가 자체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에서 출발한다. 한국은 HBM을 공급하는 데서 AIDC를 통한 AI 연산으로, 제조업에서는 센서·로봇·자동화·SI를 결합한 피지컬 AI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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