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국경 없는데…韓은 '예탁원 울타리' 안[토큰증권 대해부]③

종목당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거래…다른 원장으로 이전도 금지
해외는 거래소·지갑·디파이 넘나드는데…국내는 예탁원 중심 폐쇄형 구조

편집자주 ..."혁신은 시장이 이끌고, 신뢰는 정부가 뒷받침하겠다." 금융당국이 최근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 등 모든 증권으로 넓히며 내건 청사진이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 열리는 시장은 기관용 사모상품과 비상장주식, 조각투자가 중심이다. 상장주식 등은 언제 토큰화할지 정해지지 않았고, 원장과 유통시장도 기존 자본시장 체계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선언대로라면 토큰증권은 새로운 ‘디지털 자본시장’의 시작이다. 과연 그만큼의 시장이 열리는가. <뉴스1>은 10회에 걸쳐 화려한 청사진 뒤 한국형 토큰증권의 실체와 가능성, 한계를 집중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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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일러스트.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토큰증권의 경쟁력은 자산을 단순히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플랫폼에서 발행된 토큰증권을 다른 거래소나 지갑으로 옮겨 거래하거나 금융서비스의 담보로 활용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산이 이동할 수 있는 시장과 서비스가 많아질수록 투자자와 자금이 모이고 유동성도 커질 수 있다.

하지만 내년 2월 출범하는 국내 토큰증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상호운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종목은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관리해야 하고 다른 원장으로 이전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여러 블록체인과 거래소·지갑을 넘나드는 해외 토큰화 자산과 달리 국내 토큰증권은 예탁결제원이 참여하는 폐쇄형 원장 안에서 첫발을 떼는 셈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 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토큰증권 분산원장 표준요건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동일한 종목의 토큰증권은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관리해야 한다. 해당 토큰증권을 다른 분산원장으로 이전하는 것도 제한된다. 블록체인 간 자산을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상호운용'을 허용하지 않는 구조다.

상호운용성이란 서로 다른 블록체인과 플랫폼이 연결돼 자산과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능을 말한다. 예컨대 한 플랫폼에서 매입한 토큰증권을 개인 지갑으로 옮긴 뒤 다른 플랫폼에서 거래하거나, 이를 지원하는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서비스에서 담보로 활용하는 식이다.

상호운용성이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자산에 여러 시장의 투자자와 자금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소나 플랫폼의 경계를 넘어 자산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만큼 거래 상대방이 늘어나고 새로운 금융서비스와 결합할 가능성도 커진다. 토큰증권이 기존 전자증권과 차별화되는 지점 중 하나다.

반면 하나의 종목을 특정 원장 안에 묶어두면 활용할 수 있는 시장과 서비스도 제한된다. 증권의 발행·거래 기록을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더라도 토큰 자체가 다른 네트워크로 이동하지 못한다면 기존 금융 인프라를 분산원장으로 바꾸는 수준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 토큰증권에 활용되는 분산원장의 참여자 역시 제한된다. 누구나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거래 기록을 검증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니라 예탁결제원과 증권사 등 계좌관리기관처럼 허가받은 기관이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방식이다.

특히 예탁결제원은 토큰증권이 발행되는 모든 분산원장에 직접 참여한다.

예탁결제원은 해당 분산원장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는지 심사하고 실제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시험한다. 토큰증권의 발행량과 유통량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스마트계약을 변경할 때도 사전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거래 기록 자체는 증권사 등 참여기관과 공동으로 관리한다. 다만 모든 원장에 예탁결제원이 참여하고 원장 심사부터 발행 총량 관리까지 담당하는 만큼 기존 전자증권 체계에서 예탁결제원이 담당했던 중앙관리 기능은 상당 부분 유지되는 셈이다.

해외 토큰화 시장의 모습은 다르다.

미국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의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MF) '벤지(BENJI)'는 이더리움과 솔라나 등 복수의 퍼블릭 블록체인을 활용하고 있다. 하나의 금융상품을 특정 블록체인에만 가두지 않고 여러 네트워크로 확장하는 방식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크라켄에서 거래되는 주식 토큰 '엑스스톡스(xStocks)' 역시 거래소 밖으로 이동할 수 있다. 투자자는 테슬라·엔비디아 등 미국 주식을 기초로 발행된 토큰을 개인 지갑으로 출금한 뒤 이를 지원하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활용할 수 있다. 단순 매매를 넘어 다른 금융서비스와 결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한국이 이와 달리 폐쇄형 구조를 택한 데는 시스템 안정성과 투자자 보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증권 거래 기록은 주식이나 채권 등의 권리자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법적 장부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 사이에서 토큰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중복 발행이나 기록 불일치, 해킹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투자자의 재산권과 직결될 수 있다. 초기 시장인 만큼 발행 총량과 권리관계를 통제할 수 있는 구조를 우선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안정성을 얻는 대신 토큰증권의 확장성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분산원장에서 여러 기관이 거래 기록을 공동 관리하면 기관 간 대사와 확인 절차를 줄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토큰이 해당 원장 밖의 거래소나 지갑, 금융서비스로 이동하지 못하면 새로운 투자자와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생긴다.

특히 내년 출범 초기 시장의 주요 대상인 비상장주식과 비금전신탁 수익증권 등은 상장주식보다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자산이다. 토큰화를 통해 거래와 투자 저변을 넓혀야 하지만 정작 자산을 하나의 원장 안에 묶어두면서 토큰화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결국 국내 토큰증권 시장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면서도 기존 전자증권 체계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출발하게 됐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성을 위해 초기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시장이 안착한 뒤에는 블록체인 간 상호운용성을 단계적으로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다른 분산원장끼리 거래를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초기에는 총량 관리 등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필요할 수 있지만 향후 글로벌 생태계와 연결하려는 경우 상호운용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프라이빗 블록체인 중심 구조와 스마트계약 변경 사전 협의 등도 폐쇄성이 강하다"며 "시장 확장성을 고려해 장기적으로는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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