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 세수로 잠재성장 반등 모색…"적절" vs "과도한 확장재정"

[2027 예산안] 총지출 12.8%↑ 역대 최고·미래대응기금 162.3조 신설
"양극화 대응 명분은 공감…미래기금, 국회 견제는 필요"

본문 이미지 -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도 예산안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9.1 ⓒ 뉴스1 김기남 기자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이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7년도 예산안 상세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9.1 ⓒ 뉴스1 김기남 기자

(세종=뉴스1) 전민 임용우 이강 심서현 기자 =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확보한 세수를 발판 삼아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을 편성했다. 3대 메가프로젝트와 인공지능(AI), 청년, 지방 등에 집중 투자해 추락하는 잠재성장률을 반등시키고, K자형 양극화에도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반도체 호황에 기댄 세수를 발판으로 확장재정을 편 시점과 방식을 두고 우려가 제기됐지만, 양극화 대응과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1일 정부가 발표한 2027년도 예산안을 보면 내년 예산 총지출은 820조 9000억 원으로, 올해 본예산 대비 93조 원(12.8%) 증가했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에 힘입어 역대 최고 증가율을 나타냈다.

정부는 이 재원을 3대 메가프로젝트와 AI, 미래 성장엔진, 청년, K자형 양극화 대응, 안전 등 5대 분야에 집중 투입한다.

대규모 세수를 전략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162조 3000억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처음 신설했다. 이 중 45조 4000억 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4대 분야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국채 발행 축소와 재정 여력 비축에 쓴다.

역대급 확장재정에도 재정건전성 지표는 개선됐다.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0.1%로 전년보다 3.8%포인트 줄었고, 국가채무비율도 3.3%포인트 하락한 48.3%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를 두고 "성장과 건전성 두 토끼를 잡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슈퍼 예산안'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가장 많이 제기된 쟁점은 시점이다. 통상 확장재정은 경기가 침체됐을 때 수요를 일으키기 위해 쓰는 수단인데,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호황기에 편성됐다.

이에 경기와 재정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성장률의 진폭 자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지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건 코로나19 시기였는데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수 기반의 지속가능성도 도마에 올랐다. 총지출 증가액 93조 원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기업의 법인세 호황에서 나온 만큼, 사이클이 꺾이면 한 번 늘어난 지출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우려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히 복지 지출은 한 번 늘리면 줄이기가 어렵다"고 짚었다.

반면 정부가 내세운 K자형 양극화 대응 논리에는 상당수가 동의했다.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다른 산업이나 계층으로 퍼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청년·지방 등을 겨냥한 선별적 재정 투입 자체는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이윤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K자 양극화 문제 때문에 미시적인 재정정책을 쓰지 않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총수요를 자극해 물가·금리가 오르면 정작 도우려던 취약계층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지출 총량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량지출 38조 6000억 원 절감 등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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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1 윤주희 디자이너

미래대응기금을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국회 심의 없이 정부가 재량으로 변경할 수 있는 범위(20~30%)다.

국채까지 100조 원 가까이 발행해 조성한 재원을 정부가 사실상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쌈짓돈' 논란이 나왔다.

김우철 교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거의 제로인데도 국채를 100조 원 발행했다"며 "그 돈이 결국 미래대응기금 여유자금으로 들어가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반면 세수와 경기 변동성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재정을 유연하게 운용할 장치 자체는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세수가 늘었다고 곧바로 새 지출 항목을 만들면 경기가 꺾였을 때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여유 재원을 기금으로 묶어뒀다가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쓰는 게 낫다는 논리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역대 최대로 지출을 늘리고도 세수를 다 쓰지 못하는 이례적 상황에서, 당장 이것보다 더 나은 방안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긍정적으로 평가한 쪽에서도 통제 장치 보강은 필요하다고 봤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금 규모가 워낙 큰 만큼 국회 보고 주기를 지금보다 잦게 하는 등 견제·감시 장치를 확실히 마련해야 한다"고 조건을 달았다.

정부는 확장재정과 재정건전성 개선을 동시에 달성했다고 설명하지만, 지속 가능 여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호황이 오래가지 못할 것으로 보는 쪽은 2023년 반도체 업황이 2년 만에 꺾였던 전례를 근거로 든다. 김우철 교수는 "중기재정운용계획상 2030년 적자가 100조 원으로 전망되는데, 전제가 조금만 어긋나도 이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당분간은 세수 기반이 견조할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우석진 교수는 "반도체 물량 계약이 2028년까지 이미 끝난 상태"라며 "향후 5년간 세수 측면에서 나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

이윤수 교수는 "내년 세입 전망은 어느 정도 맞을 것"이라면서도 "3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는 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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