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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플렉스'는 옛말…사람 덜 만나고 쇼핑도 최소화[지갑닫는 MZ]

물가 치솟자 지난해 대비 식비 20%, 술값은 30% 줄여
식비 아끼려 회사 주변 식당서 한 달 치 식권 구매…"우울하다"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홍유진 기자 | 2024-04-21 07:30 송고 | 2024-04-21 10:14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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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미국 여행을 계획했다가 포기했어요. 지금도 불어난 생활비에 허덕이는데, 여행은 도저히 안 될 거 같아요"

직장인 이지현 씨(여·33·가명)는 여행에 죽고 못 사는 '여행광'이다. 일상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해외여행으로 푸는 편이다. 유독 업무 스트레스가 심했던 지난해에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스위스까지 다녀왔다.
그런 이 씨가 올해는 '여행 중단'을 선언하고 긴축에 돌입했다. 치솟은 물가에 친구들과의 저녁 약속조차 부담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나날이 치솟는 생활 물가에 2030 청년 세대가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최근까지 명품 쇼핑에 값비싼 오마카세 식당에서 식사를 즐겼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급기야 지인 모임도 최소화한다는 이들도 생겨났다. 일부 청년들 사이에선 "다 먹고살자고 줄여보는 건데, 삶이 피폐해졌다"는 말도 나온다.

◇ 먹고 마시고 '즐기는 비용' 줄였다…의욕도 떨어져
이 씨는 "작년과 비교해 체감상 생활비 지출이 20% 이상 늘어난 거 같다"며 "이전 같았으면 적극적으로 약속을 잡았겠지만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안 잡는다"고 말했다.

여행을 포기하면서 의욕도 떨어졌다는 이 씨. 그는 "올해 기억나는 지출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셔츠 몇장 산 게 전부"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그간 누렸던 것을 포기한 건데 결과적으로 더 피폐해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21일 자산관리 플랫폼 뱅크샐러드가 이용자 100만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분석한 월별 소비 데이터에 따르면 20대 이용자의 식비 항목 지출액은 2023년 2월 말 1690억 원에서 올 2월 말 1321억 원으로 21.8% 감소했다.

술·유흥 항목은 226억 원에서 158억 원으로 30% 줄었다. 패션·쇼핑 항목은 583억 원에서 498억 원으로 14.5% 감소했다.

30대도 비슷했다. 식비는 1475억 원에서 1118억 원으로 24.2% 감소했고 술·유흥은 198억 원에서 134억 원으로 32.3%, 패션·쇼핑은 509억 원에서 422억 원으로 17% 줄었다.

◇ 물가 상승에 '쓸 돈' 줄어든 MZ, 과시적 소비 줄여

연초부터 농산물을 시작으로 생활물가가 연쇄적으로 오르면서 꼭 필요한 지출 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 모습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농·축·수산물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1월 113.65에서 지난 3월 126.54로 올랐다. 외식 등 식품 물가지수는 같은 기간 115.11에서 122.47로 뛰었다. 특히 사과 1개의 가격이 5000원으로 뛰며 '애플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30대 직장인 강 모 씨(남)도 식비부터 줄이기 위해 최근 사무실 근처 식당에서 한 달 치 식권을 구입했다. 강 씨는 "물가가 오르다 보니 요즘은 서울 시내에서 1만 원 이하로는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워졌다"며 "식권을 다량으로 샀더니 결과적으로 지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정기적으로 고급 오마카세를 즐겼던 20대 직장인 정 모 씨(여)도 최근 자신의 소비 습관에 큰 회의를 느끼고 가계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물가가 오르다 보니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지출이 더 늘어난 기분"이라며 "기분 전환 겸 고급 식당을 즐겼지만, 요즘에는 최대한 자중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최근까지만 해도 '명품' '오마카세'는 MZ세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였다. 유통업계에선 MZ를 큰손으로 여기고 이들을 타깃으로 한 플랫폼까지 출시할 정도였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는 SNS상에 명품 사진을 게시하는 등 다른 세대와 비교해 인정 욕구가 강하다"며 "그런데도 물가 상승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다 보니 기존의 과시적 소비를 줄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이 이란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이 생기면서 물가는 당분간 오름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 경우 시장금리는 더 오를 수 있어, 대출을 받은 청년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맬 수밖에 없다.

일부 청년들 사이에선 긴축에 들어서면서 "삶이 많이 피폐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30대 직장인 김 모 씨(여)는 "밥값뿐 아니라 술값도 비싸져 사람을 잘 안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강 씨도 "맛있는 음식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곤 했었는데, 그럴 일이 줄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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