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되면서 월세 매물도 빠르게 줄고 있다. 3000가구 이상 대단지에서도 월세 매물이 0건 또는 1건에 그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전세 매물 부족으로 월세 수요가 늘면서 월세 물량까지 감소하는 모습이다.
25일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노원구 월계 그랑빌(3003가구)의 월세 매물은 0건이다.
1370가구 규모의 강북구 '두산위브 트레지움'과 도봉구 '대상타운 현대'(1278가구) 역시 월세 매물이 없는 상태다.
3830가구 규모의 강북구 SK북한산시티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단지의 월세 매물은 1건으로, 전세 매물(3건)보다 적다.
통상 전세 매물이 부족할 경우 월세가 대체재 역할을 해왔지만, 최근에는 월세 물량까지 동시에 줄어드는 양상이다.
월세 물량이 급감하면서 보증금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SK북한산시티 전용 84㎡는 2월 말 보증금 1억 원(월세 120만 원)에 거래됐지만, 현재는 보증금 3억 원(월세 100만 원) 조건으로 매물이 나와 있다. 한 달 만에 보증금이 2억 원 상승한 셈이다.
월세 감소 현상은 중저가 단지가 많은 강북권에서 두드러진다. 아실 통계에 따르면 도봉구 월세 매물은 전월 동기 대비 173건에서 125건으로 약 28% 감소했다. 이어 강북구(-26.4%), 구로구(-26.4%) 순으로 나타났다.
고준석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 교수는 "주거비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부터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10·15 대책 이후 월세 매물 감소가 더욱 뚜렷해졌다고 보고 있다.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가 어려워지면서 실거주 의무가 강화됐고, 집주인의 실입주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줄었다. 이로 인해 월세 물량도 함께 감소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원구 공인중개사 B 씨는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1000가구 이상 대단지에서도 월세 물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전세 매물이 줄면서 월세 수요가 늘었고, 임대차 매물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입주 물량 부족과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증가가 맞물린 영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전월세 시장은 신규 수요가 꾸준히 유입되는 구조인데, 최근에는 기존 세입자의 거주 연장 수요가 늘면서 전세 매물이 급감했다"며 "입주 물량까지 줄어든 상황에서 전세 수요가 월세로 이동하면서 월세 시장의 수급 불균형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전세의 월세화를 심각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이에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액공제 확대 등을 추진할 방침이다.
김이탁 국토교통부 제2차관은 지난 17일 방송에서 "1인 가구 증가와 전세사기 영향으로 월세화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월세는 실수요 중심인 만큼 청년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와 업계는 세액공제 확대와 함께 주택 공급 확대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은 "세액공제 확대는 부담 완화에 의미가 있지만, 전세의 월세화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며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비아파트 공급 활성화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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