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소망 임여익 기자 = 이재명 정부의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주적 논란'이 한창이다. 북한이 주적인지 아닌지에 대해 각 후보자들마다 다른 의견을 내면서다.
'주적'은 1995년 처음으로 정부의 공식 문서에 쓰인 표현이다. 북한이 남북 회담 과정에서 이른바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을 하면서 정부도 대북 강경 기조를 부각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정부는 더 이상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지만,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주적 논란이 발생한다. 논란은 30년째 '현재진행형'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4일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이 대한민국의 주적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느냐'는 질의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북한은 (주적이 아닌) 위협"이라고 답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도 15일 인사청문회에서 "남북이 평화 체제로 나가야 할 이 시점에 굳이 20~30년 전 용어를 다시 쓸 필요가 있을까"라고 반문하며 주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15일 인사청문회에서 "김대중 정부 이후 '북한군과 정권은 우리의 적이다'라는 건 명확히 나와 있고, 그런 일관된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동시에 "북한을 동족으로도 바라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논란은 16일에도 이어졌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야당의 질의에 "북한은 주적이 아니다"라고 답해 반발을 샀다. 관련 질의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게도 이어졌다. 그는 "주적이 북한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김 후보자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1995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처음으로 주적으로 규정했다.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제8차 남북 실무접촉에서 북측의 대표단장인 박영수가 "서울이 여기서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되고 만다"라고 발언하면서 남북이 발칵 뒤집힌 뒤에 나온 표현이다. 이때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고(1993년) 1994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거부하는 등 한반도에 첫 북핵 위기가 고조됐을 때다.
'북한은 주적'이라는 표현은 남북이 첫 정상회담을 치르는 등 '데탕트'를 맞이한 김대중 정부 때도 계속 사용됐다. 그러다 2004년 국방백서에서 '직접적 군사 위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대북 유화책을 이어갔던 노무현 정부는 2006년 국방백서에서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으로 보다 완화된 표현을 구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은 다시 갈등과 반목을 반복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으로 다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당시 국방백서엔 "북한은 대규모 재래식 군사력,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증강,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과 같은 지속적인 무력도발 등을 통해 우리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명시됐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표현이 사용됐다. 당시 백서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사이버 공격·테러 위협을 언급하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기술돼 있다.
문재인 정부 때 다시 남북이 평화적 대화를 전개하며 2018년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이 삭제됐다. 세 차례 이어진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 등으로 급속히 변하는 남북관계를 반영한 조치였다. 문재인 정부 때 국방백서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라는, 보다 포괄적 위협을 '적'으로 표기했다.
윤석열 정부 때도 주적 논란이 불거졌다. 윤석열 정부는 첫 국방백서인 2022년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라는 표현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북한과의 극한 갈등이 이어지면서 아예 '주적' 표현을 되살려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본문 이미지 -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https://image.news1.kr/system/photos/2025/6/24/7357330/high.jpg/dims/optimize)
북한의 도발과 군사적 위협이 높아질 때 '주적'이라는 개념은 국론 통합과 정권의 '메시지'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전반적으로는 '포괄적 위협'을 적으로 명시하는 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운신의 폭을 넓힌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주적이라는 개념을 고정할 필요가 없으며, 위협이라는 개념을 좀 더 유동적으로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주적이라는 단어가 국방백서에서 삭제된 배경에는 외교적 판단이 있었다. 주적이 국어사전에 '주된 적'으로 풀이가 돼 있는 만큼, 주변국으로부터 '제2의 적, 부차적인 적은 누구냐'라는 공격을 받을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으면서 주적이라는 말이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주적 개념이 통용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특정 인물의 성향을 검증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고, 실제 여론의 반향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유효한 개념인 측면이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에서 주적이라는 표현이 정쟁의 소재로 사용되는 것이 긍정적이지는 않으나, 현재의 정세에서 주적 개념을 명확하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과거 진보 정권에서 '주적'을 '위협'으로 바꾼 것은 남북 간 긴장 완화를 위한 것이었다"라며 "남북은 현재 국제법상으로도 휴전 상태고, 전쟁이 종식된 게 아니기 때문에 좀 더 명확하게 주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도 "상황에 따라 '주적'은 바뀔 수 있다"면서도 "북한이 우리를 주적으로 규정했고 이미 이와 관련한 정책을 펼치는데, 우리가 이 상황을 부정하면 적절한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 주적의 개념을 명시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 표현에 변화를 주고 있다. 과거엔 중국이 '잠재적 위협'이라고 규정한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이 확장됨에 따라 '주된 위협'이라는 표현을 구사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장관인 피트 헤그세스는 최근 국방부 내부적으로 배포한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에서 "중국은 국방부의 '유일한 위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에서 통용되는 주적과 뉘앙스는 다르지만 사실상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중국·러시아에 대한 견제 기조가 강한 일본은 미국과 외교 기조를 맞추고 있으나 군사적으로 주적 개념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 역시 미국과 패권 경쟁을 하지만 미국을 주적으로 규정하진 않고 있다.
북한도 사회주의 헌법 등에 주적 개념을 명시하진 않고 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정세 판단에 따라 한미, 한미일을 가리키는 표현에 변화를 주면서 유동적 대응을 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23년 남북이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으며, 지난해 2월 건군절 연설에서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이라고 규정하며 남한을 현재 주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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