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보고 중 한국의 독자 AI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협력 체계 구상을 밝혔다. 미·중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사이에서 중립국 역할을 하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용해 기회를 창출해야 한다는 취지다.
'미토스 수출 통제' 사태가 상징하듯 미국 정부는 AI를 국가 전략 자산화하며 폐쇄형 정책을 펴고 있다. 반면, 중국은 개방형 AI 모델을 앞세워 글로벌 협력 체계를 확대하고 있다. 양국 사이에 낀 한국은 독자적인 최상위급 AI 모델 확보에 나섬과 동시에 미·중 AI에 종속되지 않길 원하는 국가들과 연합체를 꾸리겠다는 방침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중국이 출범한 AI 협력체의 참여 여부를 놓고 "중국 측에서 한국과 AI 연대를 강력하게 희망한다"면서도 미·중과의 지정학적 관계 속에 정책적 논의를 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이날 배 부총리는 "많은 국민들이 미국 AI 서비스를 쓰고 있고, 산업계에서는 중국의 오픈 웨이트(가중치 공개) 모델을 많이 쓰고 있는 실정을 고려했을 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는 정책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 쉽게 결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사실 중국이 한국과 AI 연대를 하길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와의 여러 관계를 고려했을 때 지금 당장 답변을 명확히 드리기 어렵다"며 "우리가 최적점을 잘 찾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우리 자체적인 AI 역량을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 기조연설에서 "AI 발전은 한 국가의 독주가 아닌 국제사회가 함께 연주하는 교향곡이 돼야 한다"며 개방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AI 거버넌스(관리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 브라질 등 29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AI 협력기구인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출범을 알렸다.
해당 협력체에 한국은 창립 회원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고, 미국·유럽연합·일본 등 주요 서방 국가들도 빠졌다. 중국은 WAIC를 앞두고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 고위급 대표단 파견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여러 사정을 고려해 예년 수준의 대표단을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AI 스타트업 문샷AI가 WAIC 개막에 맞춰 공개한 최상위급 AI 모델 '키미 K3'는 중국 정부의 개방형 AI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해당 모델은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2~3개월 수준으로 좁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글로벌 IT 업계와 시장에 충격을 줬다.
키미 K3는 개방형(오픈소스) 모델로 설계됐다. 오픈AI나 앤트로픽의 폐쇄형 독점 모델과 달리 오픈소스로 공개돼 전 세계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문샷AI 측은 키미 K3가 세계 최초 3조 파라미터급 오픈소스 모델이며, 장기 작업형 코딩과 지적 작업, 추론 등에 강점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배 부총리는 "중국 AI 스타트업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건 부러운 일"이라면서도 중국이 개방형 AI 모델을 앞세워 글로벌 협력 체계를 확대하는 움직임에 대해 '장기적으로는 폐쇄형 전략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배 부총리는 "미국은 폐쇄형 AI 정책을 강화하는 반면 중국은 모델을 공개하며 진영을 확대하려 하고 있지만, 결국 미국과 비슷한 절차를 밟아갈 것으로 본다"며 "미국도 초기에는 다양한 오픈 모델이 나왔지만 지금은 폐쇄형 서비스 모델 중심으로 전환했고, 미토스 수출 통제 등 정부 규제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프런티어급 AI 모델은 핵무기처럼 국가가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중국도 일정 수준의 목적을 달성하면 오픈 웨이트 모델을 폐쇄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이 같은 미·중 AI 양강 구도에 종속될 경우 AI 공급망 통제나 가격 변동성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2027년 세계 최상위 수준의 프런티어급 AI 모델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3조 5000억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여부를 놓고 정부 내부적으로 논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정부는 독자 AI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 국가들과 협력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에서 국내 기술로 개발한 '소버린 AI'를 수출하기 위해 사전에 다른 국가들과 수평적 협력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 바 있다.
배 부총리는 "이재명 대통령은 K-AI를 중심으로 세계 여러 국가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며 "아직 구체적인 AI 연합체 구상을 마련하는 단계지만, 해외 순방 과정에서도 많은 국가가 한국과의 AI·과학기술 협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연합(EU), 중동, 아세안 등 여러 국가가 미국이나 중국에 종속되지 않는 AI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한국과 협력하기를 원하고 있다"며 "이들과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도 독자 모델에 대한 필요성과 신중한 입장 견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는 "우선 국제사회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AI보안 및 통제 거버넌스를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면서 "각국 정부가 AI를 '전략무기화'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이를 사용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거버넌스와 통제 역량을 갖췄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 AI 모델 확보에 대해선 "중장기적으로 기술 자립이 필요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자칫 감정적 대응이나 무조건적인 기술 자립론에 매몰되어 '갈라파고스'의 함정에 빠지는 것으로 흐르면 안된다"는 조언도 덧붙였다.
그는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단기간에 글로벌 빅테크와 견줄 세계 최고 수준의 독자 AI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쉽지 않고, 설령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그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핵심 인프라를 맡기는 것도 리스크가 크다"면서 "결국 글로벌 기술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된 상태에서 우리만의 특화 기술을 살린 독자 모델 개발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tiger@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