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 해외 토큰증권 시장에서 국가와 플랫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토큰화한 미국 주식인 '주식토큰'을 개인 지갑으로 옮기고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 서비스에 담보로 맡겨 자금을 빌리는 것도 가능해졌다.
반면 한국의 토큰증권은 인가받은 국내 사업자와 원장 안에서만 발행·유통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당국이 토큰화할 수 있는 증권의 범위를 넓혔지만 해외 블록체인이나 금융서비스와 연결하기는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최대 장점인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을 살리지 못하면 기존 증권을 국내 전용 분산원장에 옮겨 적는 데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4일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3차 회의를 열고 토큰증권 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조각투자 중심이던 토큰증권의 범위를 주식·채권·펀드 등으로 넓히고 장기적으로 스테이블코인 등을 활용한 온체인 결제와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국내 토큰증권 시장이 해외 금융시장과 연결되지 못한 채 ‘국내용’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에서는 주식토큰이 여러 국가와 블록체인, 개인 지갑과 금융 플랫폼을 오가지만 한국은 발행과 유통이 인가받은 국내 인프라 안에서만 이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가상자산거래소 크라켄은 110여개국에서 미국 주식과 상장지수펀드(ETF)를 토큰화한 ‘엑스스톡스(xStocks)’를 제공하고 있다. 테슬라와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 주요 상장사의 가격을 추종하는 상품이 포함돼 있다.
투자자가 구매한 주식토큰은 솔라나와 이더리움, 톤(TON), 잉크(Ink) 등 퍼블릭 블록체인을 통해 개인 지갑으로 출금할 수 있다. 거래소 계좌 안에서만 거래되는 기존 해외주식과 달리 투자자가 토큰을 직접 보관하고 다른 블록체인 서비스로 옮길 수 있는 것이다. 크라켄도 엑스스톡스의 자유로운 외부 지갑 이전을 안내하고 있다.
일부 주식토큰은 디파이의 담보·대출 시장이나 탈중앙화거래소(DEX)의 유동성 공급에도 활용된다. 주식토큰을 담보로 맡기고 다른 디지털자산을 빌리거나 탈중화거래소의 유동성 풀에 예치해 수수료 수익을 얻는 식이다.
하나의 토큰증권이 거래와 보관에 머무르지 않고 담보와 대출, 유동성 공급 등 또 다른 금융상품의 기반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토큰화 대상도 상장주식에서 비상장기업으로 넓어지고 있다. 미국 가상자산·주식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유럽 고객을 대상으로 스페이스X와 오픈AI의 기업가치에 연동된 토큰을 선보였다.
다만 이는 해당 기업의 주식을 직접 토큰화한 상품은 아니다. 로빈후드가 지분을 보유한 특수목적법인(SPV)을 기초로 투자자에게 해당 비상장기업의 가치 변동에 간접적으로 노출될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다. 투자자가 토큰을 사더라도 스페이스X나 오픈AI의 주주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의결권도 갖지 못한다.
오픈AI도 로빈후드의 토큰이 자사 지분이 아니며 발행 과정에 관여하거나 승인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럼에도 국가와 블록체인, 개인 지갑과 금융서비스를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은 주식토큰이 기존 증권과 구별되는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한국의 토큰증권은 이와 다른 구조로 설계됐다. 한국예탁결제원의 ‘분산원장 표준요건’에 따르면 토큰증권 분산원장의 참여자는 예탁결제원과 증권사 등 계좌관리기관으로 제한된다.
누구나 거래 검증과 원장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퍼블릭 블록체인이 아니라 인가받은 기관들만 참여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 구조다.
여러 증권사나 사업자가 각각 분산원장을 구축할 수는 있지만 한 원장에서 발행된 토큰증권을 다른 원장으로 자유롭게 이전할 수도 없다. 종목별로 하나의 분산원장만 사용하도록 하고 원장 간 이전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투자자가 국내 토큰증권을 개인 지갑으로 출금하거나 해외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옮겨 디파이 서비스에서 활용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인가받은 국내 장외거래소에서 사고파는 데 그칠 가능성이 큰 셈이다.
기초자산의 범위도 제도 시행 초기에는 제한된다. 오는 2027년 2월 1단계로 토큰화되는 금융상품은 기관투자자 전용 사모 머니마켓펀드(MMF)와 사모사채, 신탁 방식을 활용한 비상장주식 등이다.
해외에서 활발히 거래되는 상장주식 토큰화는 이후 단계로 미뤄졌다. 금융당국은 장기적으로 상장주식 등 공모증권까지 토큰화 대상을 넓힌다는 방침이지만 구체적인 이행 시점은 정하지 않았다.
상장주식까지 토큰화하더라도 해외 플랫폼이나 퍼블릭 블록체인으로 옮길 수 없다면 글로벌 확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존 증권계좌에 기록된 주식을 국내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다시 기록하는 것 이상의 효용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블록체인의 핵심 경쟁력은 서로 다른 자산과 금융서비스를 연결하는 ‘상호운용성’에 있다. 그러나 국내 제도가 원장 간 이전과 외부 지갑 출금을 차단한 채 출범하면 토큰증권이 가진 활용 가능성도 발행과 국내 유통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폐쇄성 우려는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외국인의 국내 가상자산거래소 이용이 제한되고 가상자산 파생상품 시장도 열리지 않으면서 해외 시장과 동떨어진 ‘갈라파고스형 시장’이 됐다는 지적이다. 토큰증권마저 국내 이용과 거래에 맞춘 구조로 출범하면 같은 한계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블록체인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의 등장과 시장 확대가 늦어질 우려가 있다"며 “투자자를 보호하며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출시됐을 때 취급 범위를 유연하게 넓힐 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chsn12@news1.kr

편집자주 ..."혁신은 시장이 이끌고, 신뢰는 정부가 뒷받침하겠다." 금융당국이 최근 '토큰증권'을 조각투자에서 주식·채권·펀드 등 모든 증권으로 넓히며 내건 청사진이다. 하지만 내년 2월부터 열리는 시장은 기관용 사모상품과 비상장주식, 조각투자가 중심이다. 상장주식 등은 언제 토큰화할지 정해지지 않았고, 원장과 유통시장도 기존 자본시장 체계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 선언대로라면 토큰증권은 새로운 ‘디지털 자본시장’의 시작이다. 과연 그만큼의 시장이 열리는가. <뉴스1>은 10회에 걸쳐 화려한 청사진 뒤 한국형 토큰증권의 실체와 가능성, 한계를 집중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