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1) 전민 기자 = 올해 민간소비가 점차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건설 부진과 여전히 진행형인 미국발 관세 리스크로 인해 성장률이 0%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포함한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소비 회복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성장률 제고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향후 경기 흐름을 좌우할 최대 변수는 건설업 침체의 장기화 가능성과 미국발 반도체 관세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과 동일한 0.8%로 유지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전망과도 같은 수준이다.
KDI는 지난 5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국책연구기관 중 처음으로 올해 0%대 성장률을 제시한 바 있다. 미국의 품목별·상호관세 부과 정책에 따른 통상 불확실성을 반영해 성장률 전망을 기존 1.6%에서 절반 수준인 0.8%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이번 수정 전망의 경우 5월 전망 당시에 비해 비교적 상방 요인이 많았다. 지난달 31일 한미 통상협약 체결 등으로 통상 불확실성이 작아졌고, 새 정부 출범 이후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편성돼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이 집행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KDI는 기존 0.8% 전망치를 유지했다. 민간소비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며 수출도 양호한 상황이지만, 예상보다 심각한 건설경기 부진이 걸림돌이 됐다.
구체적으로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은 1.3%로 전망했다. 2차 추경 편성 효과와 금리 하락세 등을 반영해 지난 5월 전망치(1.1%)보다 0.2%포인트(p) 상향 조정했다.
올해 총수출(물량) 증가율은 기존 0.3%에서 2.1%로 1.8%p 대폭 상향 조정됐다. 미국의 관세 인상 악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경기가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건설투자는 기존 전망(-4.2%)보다 3.9%p 대폭 하향 조정한 -8.1%로 역성장 폭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상반기 실적이 부진했던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정상화 지연, 대출 규제 강화 등이 회복을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꼽혔다.

정부가 추경 편성 등 확장재정을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건설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깊어지며 올해 1%대 성장률 사수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만일 올해 성장률이 KDI와 한은의 전망대로 0%대에 머무를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던 2020년(-0.7%) 이후 5년 만에 다시 1% 아래로 하락하는 상황이 된다.
KDI는 통화·재정정책 수단을 추가로 동원하더라도 올해 1% 성장률 달성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민간소비 전망이 재정정책 영향으로 상향된 만큼 금리 인하의 시급성은 지난 전망보다는 많이 축소됐다"면서 "이미 8월 중순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추경을 할 시기가 많이 남지 않아 재정정책을 추가로 해서 성장률을 올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미 간 통상협상 타결 또한 성장률 제고에 유의미한 영향은 주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지연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관세협상으로 긍정적인 점은 통상 불확실성이 축소된 것이지만, 기존 전망에도 8월 1일 관세 유예기간이 끝나기 전에 불확실성 축소는 예상했던 것"이라며 "자동차의 경우 관세율이 10%p 정도 낮아졌으나, 상호관세율과 철강·알루미늄 관세는 올라갔다. 두 부분이 서로 상쇄돼 기존 전망과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KDI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포함한 20조 원 규모의 2차 추경의 성장률 제고 효과를 0.1%p로 추산했다. 추경 규모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2556조 원)의 약 0.7% 수준이지만, 효과는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신규 소비 창출보다는 기존 소비 대체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추가로 집행된 금액이 전부 소비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추경의 규모는 GDP의 0.1%보다 훨씬 컸지만, 모두 추가로 지출을 일으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실제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소비진작 효과에 따라 1%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추경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봤을 때 성장률 제고 효과를 0.1%p 전망하는 것은 재정승수를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보수적일 수 있다"며 "미국의 높아진 관세율이 적용되는 시점도 10월 도착분부터이기 때문에 크게 마이너스 요인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 실장은 이어 "추경 등을 감안할 때 올해 1%대 성장의 가능성도 충분히 남아있다"고 내다봤다.

향후 경기 흐름을 좌우할 최대 변수는 미국의 반도체 관세와 건설업 부진의 회복 여부가 될 전망이다. 만일 미국이 반도체 관세를 높은 수준으로 부과할 경우 경기타격은 피할 수 없다.
김지연 총괄은 "미국과 주요국 간의 통상 갈등이 격화되면서 대외 수출 여건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비교적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중국, 브라질, 인도 등과의 통상 갈등이 격화되면서 글로벌경기가 크게 둔화될 가능성이 존재하며, 반도체 관세가 큰 폭으로 인상될 경우 우리 수출에도 작지 않은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건설업 부진의 지속 여부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당초 주요 기관들은 올해 하반기에서 내년 상반기 사이 건설업 경기가 바닥을 찍고 반등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반등 시점이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괄은 "상반기 건설투자가 기존 전망을 하회했는데, 이는 부동산 PF 시장 정상화 지연, 대출 규제 강화, 그리고 건설 현장의 안전사고 여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며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할 때 건설투자 회복이 기존 예상보다 지체될 것"이라고 했다.
주 실장은 "건설업이 반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주택공급에 더해 민간 경기가 전환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 거래 활성화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부동산 시장 규제 기조는 건설경기 활성화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내년에도 건설경기 반등은 쉽지 않을 수 있으며, 부진이 더 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min785@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