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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도피→신체훼손→정신질환…진화하는 '병역비리' 처벌 강화 답일까

[국민역린 병역 비리]②일반인까지 손길 뻗은 검은 유혹
"상대적 박탈감 느껴…군 복무 보상 적절한지 의문"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2023-01-29 06:00 송고
편집자주 대한민국이 또다시 병역비리 의혹으로 들끓고 있다. 군대 문제는 당사자인 20대 청년들은 물론 아들을 둔 부모들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군대 관련 특혜나 비리 사건이 터지면 전 국민이 분노한다. 군대는 대학입시와 함께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는 전국민의 '역린'인 셈이다. 병역비리 실태와 그 수법들을 심층 분석해 봤다.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븐 유) 2013.3.7/뉴스1
가수 유승준(미국명 스티븐 유) 2013.3.7/뉴스1

병역의무를 피하기 위한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병역비리에 손을 대는 입영 대상자도 더 이상 고위 공직자 자녀와 유명인뿐만이 아니다.

군 복무 환경이 개선되고 있지만 이른바 '신의아들'을 향한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하다. 성실한 군 복무자들은 병역의무 이행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처벌에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백기' 피하려다…병역 비리 '단골' 연예인·스포츠 선수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병역기피 논란으로 국내 입국이 금지된 가수 유승준은 2002년 입대를 앞두고 해외 콘서트를 목적으로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 거센 비난을 받았다.

1997년 데뷔 이후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씨에게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 부담감을 옹호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광고모델은 물론 홍보대사 계약이 줄줄이 해지됐으며 유씨는 결국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입국 금지 대상이 됐다.

유씨의 병역 면제 의혹으로 인한 논란은 20년 넘게 진행 중이다. 재외동포 비자 신청이 거부되자 유씨는 주 로스앤젤레스(LA) 한국 총영사를 상대로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에 걸쳐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다. 두 번째 소송의 항소심 결과는 다음 달 내려진다.
병무청이 고의로 청력을 마비시킨 뒤 장애 진단서를 받아 병역을 회피한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를 적발했다. 이들은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아 장애인으로 등록한 뒤 병역을 면제받는 수법을 썼다. 사진은 병역기피자들이 일시적인 청각 마비에 사용한 도구들. (병무청 제공) 2019.3.19/뉴스1
병무청이 고의로 청력을 마비시킨 뒤 장애 진단서를 받아 병역을 회피한 전직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를 적발했다. 이들은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아 장애인으로 등록한 뒤 병역을 면제받는 수법을 썼다. 사진은 병역기피자들이 일시적인 청각 마비에 사용한 도구들. (병무청 제공) 2019.3.19/뉴스1

2004년 KBO리그는 전무후무한 대규모 병역 비리 사태로 홍역을 치렀다. 소속 팀을 가리지 않고 연루된 현역 프로야구 선수만 50명이 넘었다. 구속된 24명은 대부분 실형을 선고받았다.

병역면탈을 시도한 선수들의 경기 출전 정지 처분에 따라 포스트시즌 진출이 유력했던 상위권 팀들의 막판 순위가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송승헌, 장혁을 포함한 유명 연예인까지 연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당시 병역 비리 브로커를 통해 병역을 면제받은 선수들과 배우는 병원 진료 시 소변에 약물을 섞어 신장질환(사구체신염)이 나타나게 하는 수법을 동원했다. 이후 송승헌과 장혁은 재검을 받은 뒤 현역으로 입대했다.

◇'정신질환' 수법 더 교묘하게…의사·헬스트레이너까지

2000년대 초 병역면탈 수법은 신체를 고의로 훼손하거나 기능 장애를 유발하는 방법이 만연했다. 신체검사 등급을 낮춰 보충역이나 병역 면제 판정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2008년엔 프로축구 선수 100여명이 일부러 어깨뼈를 어긋나게 한 뒤 수술을 받는 방법으로 현역 복무를 피하려다 무더기 형사처벌받기도 했다.

이들은 축구에 큰 지장이 없는 왼쪽 어깨를 아령 등으로 늘어뜨려 탈구한 뒤 정형외과 의사로부터수술을 받고  진단서를 발급받는 수법을 쓰다 덜미를 잡혔다.

최근 대규모 병역기피 논란이 불거진 '뇌전증 진단' 수법은 과거 방식에서 한 차원 더 진화했다. 이른바 간질로 알려진 뇌전증은 불시에 짧은 시간 발생하는 증상이 특징이다.

이들은 뇌파 이상 발견과 별개로 뇌전증 환자 연기를 하면 전담 의사조차 쉽게 구별할 수 없다는 허점을 노렸다. 병역판정검사에서는 임상적으로 뇌전증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는 사람이 뇌파검사, 방사선 검사, 핵의학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면 5급(전시근로역)으로 분류된다.

병역 기피가 일반에 깊숙이 스며든 점도 과거와 달라진 양상이다. 과거 병역비리를 시도하는 입영대상자는 주로 공직자 자제, 연예인, 프로선수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지난달부터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이 합동수사 중인 대규모 병역비리 수사 대상에는 헬스트레이너, 프로게이머, 전문 직종인 의사(공중보건의), 병역 면탈자의 부모까지 포함됐다. 이들이 병역면탈 정보를 얻은 경로도 인터넷 블로그나 병역 상담 카페와 같이 간단한 검색만으로 접근이 가능했다.

대전·충남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2017.1.23/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대전·충남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2017.1.23/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이해는 되지만…'상대적 박탈감' 보상 강화돼야"

이른바 '군백기'(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로 인한 경력 단절은 연예인과 스포츠 선수들이 병역면탈을 시도하는 주된 사유다. 수명이 짧은 직업 특수성을 고려할 때 2년에 가까운 공백은 커리어 중단으로도 이어질 수 있어서다.

육군 현역 복무를 마친 김모씨(29)는 "군대에서 제식훈련, 작업을 하면서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며 "연예인이나 선수들이 병역 면제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이 이해는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를 고려해 만들어진 예체능계 병역특혜 제도는 오히려 일반인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기도 한다.

대학생 박영찬씨(27)는 "방탄소년단이나 손흥민 선수가 개인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만 수십, 수백억원대 아니겠느냐"며 "얼마인지 제대로 환산할 수도 없는 국위선양이라는 가치만 가지고 병역까지 면제해준다고 생각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드는 동시에 과도한 특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휴전국인 한국에서 군 전투력을 유지하고 국방력을 증진하기 위한 병역 의무는 회피하기 어려운 문제다. 휴대전화 사용이나 병사 월급 인상 등 군 사기 증진을 위한 복지가 확대됐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직장인 강영준씨(34)는 "단순히 처벌만 강화한다면 앞으로 더 고도로 진화할 병역면탈 수법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며 "젊은 시기 2년 가까운 시간을 군 복무에 할애한 희생에 따른 보상과 사회적 합의가 적절한지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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