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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칼럼] 새 지정학 시대와 일본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2-11-07 07:02 송고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한 나라의 경제는 땅과 교역으로 기초가 정해진다. 땅의 모양과 물길, 위치와 비옥도, 땅속에 묻혀있는 자원이 출발점이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우리 인간도 땅에서 태어난다. 물리학자 미치오 카쿠는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가 열 달 후에 아기로 변하는 것이 생명의 신비라고 한 적이 있다. 또, 지구상의 땅은 조금씩 성질이 달라서 지역마다 사람과 생산물이 다르다. 그래서 우선은 이웃 마을, 나아가 다른 나라와의 교역이 필요하다.

2차대전 후 유례없는 상대적 평화의 시기에 세계 각국은 거의 아무런 장애 없이 교역을 향유했다. 미국이 질서와 안전을 담당했다. 그런데 이제 글로벌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역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천혜의 지정학 국가 미국이 돈만 많이 드는 국제질서 유지 역할을 접고 있어서다.
며칠 전 독일의 숄츠 총리가 뭇 나라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대표 기업인들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회담했다. 독일과 중국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지정학적으로 미래 전망이 가장 답답한 두 나라가 만나 상호 협력을 논의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인구 약 8천만의 독일은 비교적 좋은 위치에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다. 독일인들은 검소해서 돈도 잘 쓰지 않는다. 가공할 생산력이 만들어 내는 고급 산출물을 소비할 내수가 없다. 국제교역뿐이다. 대대손손 맞수였던 러시아와의 잠시 좋은 시절은 우크라이나를 계기로 이제 끝났다. EU는 서서히 와해되고 있고 브렉시트로 먼저 빠져나간 영국은 독일 견제를 시작한다. 영국은 지난 300년 동안 독일, 러시아와 열 번도 넘게 전쟁을 치른 나라다. 독일에 중국 같은 교역 파트너가 절실한 이유다. 자동차는 독일 경제의 20%를 차지하는데 세계 1위의 독일 자동차 수입국이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의 앞날도 별로 밝지 않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위해 경제 측면에서 상당한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현대사는 권력이 집중된 권위주의 정체가 국제교역에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변이든 코로나든 권력을 가진 소수에 변고가 생기면 전체가 무너진다. 그런 교역 상대는 믿기 어렵다. 중국은 급속한 산업화로 인구도 감소하고 있다. 산업화는 도시화가 필연인데 대도시의 협소하고 열악한 주거공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출산을 기피한다. 이는 중국의 산업생산력과 교역 능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중국은 대만 침공으로 돌파구를 찾고 싶어 하지만 역부족이다. 역사적으로 해군이 필요 없었고 따라서 해군의 힘이 없는 중국은 대만 접수는 고사하고 현재의 교역로를 보호할 능력도 없다. 중국은 매우 열악한 위치에 있는 나라여서 육지 교역로에 황무지 아니면 수많은 국경선이 있다. 해양에서는 인도, 베트남, 필리핀 같은 껄끄러운 나라들 근처를 지나가야 한다. 설사 대만 침공이 성공한다 해도 엄청난 출혈에 더해 남중국해가 막히게 되어서 중국 경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인구 약 1억3천만의 일본은 안전한 위치에 있지만 땅은 형편없는 나라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은 20% 미만이고 그나마 척박해서 항상 뿔뿔이 나누어진 채 서로 싸우고 살았다. 19세기 말 급속히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통합이 되었는데 국가주의를 요소로 하는 재벌체제가 산업화에 반드시 따르는 사회 혼란을 막아주었다. 그리고 주변국들을 침략하고 수탈했다. 그 과정에서 국제질서를 파괴했지만 운 좋게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

지정학 전문가 피터 자이한은 한국에는 전혀 달갑지 않은 진단을 내린다. 중국세의 하락에 맞춘 ‘일본의 귀환’이다. 일본은 고령화에 맞게 산업을 재정비했고 생산시설도 미국을 포함한 국외에 거의 다 이전했다. 원천기술만 국내에 남겨두었다. 원자재와 식량은 동남아 국가들과의 탄탄한 관계로 해결한다. 일본은 해적에서 출발해 한때 세계 2위의 해군력을 보유했던 나라다. 자국 원양상선단을 보호할 능력은 금방 회복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힘이 빠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부동의 GDP 3위 국가다. 4위 독일과 격차도 크고 우리의 3배가 넘는다. 국방비는 GDP의 1.1%를 쓸 뿐이지만 경제가 커서 2.8%를 쓰는 우리보다 약간 많다. 전문가의 경고가 아니더라도 가장 경계하고 주시, 연구해야 할 나라가 일본임을 우리는 잘 안다. 좋은 위치에 있지만 땅이 나빠서 항상 주위에 눈독을 들여야 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지정학 대변혁 시기를 맞아 우리 기업들도 동분서주하면서 미래를 살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삼성, 현대의 경영자들은 요즘 해외에서 살다시피 한다. 모든 글로벌 기업들이 지정학이 기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민감해졌고 지정학 리스크관리가 이사회에서 중요 안건으로 논의된다. 1970년대가 그랬던 것처럼 정부의 외교와 안보 역량이 집중적으로 보강되고 투입되어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시대다. 지구촌에 '중상주의 시즌2'가 시작된다.

※ 이 글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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