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 "'스캔들' 호불호? 혹평도 겸허히 받아들였다" [N인터뷰]
- 장아름 기자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배우 손예진이 20여 년 만에 사극에 도전한 이유부터 '스캔들'을 통해 마주한 조선시대 여성의 욕망, 작품을 둘러싼 호불호까지 솔직하게 밝혔다.
2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는 넷플릭스 새 시리즈 '스캔들'(극본 이승영 안혜송/연출 정지우) 주연 손예진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스캔들'은 조선시대 여성으로만 갇혀 살기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인 '조씨부인'(손예진 분)과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지창욱 분)이 벌이는 발칙하고도 위험한 사랑 내기, 그리고 그 내기에 얽힌 한 여인 '희연'(나나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스캔들'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를 조선시대로 옮긴 작품으로, 2003년 개봉작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역시 해당 소설이 원작이다. 이번 시리즈는 '해피 엔드'(1999) '모던 보이'(2008) '은교'(2012) '유열의 음악앨범'(2019) 등을 선보인 정지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손예진은 극 중 금기의 시대에 맞서 유혹의 내기를 제안하는 '조씨부인' 역을 맡았다. 조씨부인은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과 매력을 지녔지만, 여인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의 현실에 막혀 '조윤'이라는 이름마저 내려놓은 채 사대부 여인으로 살아가는 인물. 그는 어린 시절부터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서신을 주고받던 글친구이자 사촌 동생 조원에게 은밀한 내기를 제안한다.
이날 자리에서 손예진은 '스캔들'에 출연한 이유에 대해 "그 시대는 인간이 자기 말을 하거나 개인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시대이지 않나"라며 "다 가족 중심, 나라 중심의 공동체 사회였고 특히 여성으로서 억눌린 욕망과 펼치지 못했던 자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인물이 지금 살았다면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자아실현을 아주 멋지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여러 제약을 받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였다"며 "펼칠 수 없는 상황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삐뚤어지고 결핍을 갖게 되는지도 흥미로웠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의 사극이라는 점도 도전이었다. 손예진은 "사극을 계속 피해 왔다"며 "사극이 주는 매력도 있지만 한복을 입고 머리를 하는 게 너무 불편해서 연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런데 '스캔들'이라는 작품과 조씨부인이라는 인물이 주는 매력이 컸다, 굉장히 다층적인 인물인데 그 배경이 조선시대라는 점도 흥미로웠다"며 "20여 년 만에 사극에 다시 도전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조씨부인을 그린 과정에 대해서도 밝혔다. 손예진은 "지금 이 시대를 살면서는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며 "여성이기 때문에 제약돼 있던 것들을 제가 다 이해하기에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뛰어난 인물이 자아를 실현하지 못했을 때 그 욕망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감춰져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인물은 마음속에 다른 감정과 의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위하는 척하고, 결국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상대의 심리를 교묘하게 알아내려고 하는 방식도 솔직하다기보다는 꿍꿍이가 많은 인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조원과의 관계 역시 단순한 사랑으로 보지는 않았다고 했다. 손예진은 "감독님과도 계속 '이게 사랑이냐'는 이야기를 했다"며 "어느 순간에는 조윤이 가진 감정이 애증이자 복수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원은 조윤의 어린 시절부터 펼치지 못한 꿈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글동무이자, 조윤이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것 같다"며 "그 안에는 질투도 있고 선망도 있고 이성적인 감정도 있다, 그런 복잡다단한 감정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긴 호흡의 롱테이크 촬영 과정 역시 쉽지 않았다. 손예진은 "대사가 길고 중간중간 대놓고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한 호흡이나 표정, 눈짓이 필요한 장면이 많았다"며 "한 번에 길게 가는 것이 감정의 흐름에는 좋았지만 진이 정말 많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 번 찍고 나면 온몸에 긴장이 들어가 목뒤가 뻣뻣해질 정도였다"며 "그걸 한 번만 찍는 것도 아니고 웨이스트, 바스트, 타이트 바스트로 두세 번씩 똑같이 연기해야 해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캔들'을 둘러싼 호불호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손예진은 "애초에 이 인물들이 누구나 대중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며 "조씨부인도 온전히 공감을 형성하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처럼 호흡이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한 상황에서는 저희 작품의 느린 호흡이나 판소리 같은 요소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면서도 "그만큼 이것이 주는 새로운 재미와 흥미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손예진은 "모두가 호평을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이 일을 몇십 년 해보니까 그건 쉽지 않은 것 같다"며 "모두가 찬사를 보내는 작품을 만나는 건 정말 모든 박자가 맞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렇게 만들었으니 이렇게만 봐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각자의 몫으로 즐겨주시고 봐주시는 것이고, 그 이후의 반응은 다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향후 연기 방향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다양한 걸 계속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며 "나이가 들면서 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지고 표현할 수 있는 것들도 더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안 해봤던 것, 보여드리지 않았던 얼굴을 보여주는 재미가 배우에게도 있고 보시는 분들에게도 있을 것 같다"며 "이제는 어떤 걸 한다, 안 한다고 국한해 놓은 것은 없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20~30대에 표현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한계가 있었다면 그래도 지금은 조금 더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스캔들'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작품을 바로 하고 나서는 잘 모르겠다"며 "시간이 지나야 그 작품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돌이켜봤을 때 이 작품을 해서 여기까지 연결됐구나 생각할 때가 있다"며 "'스캔들'은 어쨌든 제가 사극으로 제대로 보여드린 첫 작품이기 때문에, 이후 또 다른 사극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하나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스캔들'은 지난 18일 8부작 전편이 공개됐다.
aluemcha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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