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조원 첫 송금에도…트럼프 '알래스카 LNG' 압박에 301조 관세 촉각
美 USTR 대표 "수주 내 301조 공급과잉 조사 결과 발표"
트럼프, 연일 '일방발표'로 韓 압박…관세 '15% 사수' 우려
- 이정현 기자
(세종=뉴스1) 이정현 기자 = 한국이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한 대규모 대미 투자의 첫 자금으로 24억 달러(약 3조 2600억 원)를 송금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추가 투자 압박이 거세지면서 한국의 통상 부담이 다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인 미국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에 자금 집행을 시작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아직 검토 단계라고 밝힌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까지 참여하지 않을 경우 관세나 투자 부담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여기에 미국은 수주 내 공급과잉 관련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까지 발표할 예정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의 추가 투자 압박과 맞물린 관세 부담 확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어렵게 확보한 '15% 관세' 조건이 유지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5일 통상당국 등에 따르면 미국 통상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 2일 자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잉생산 문제에 대해 "입 다물고 수용할 생각은 없다"며 미국이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어 대표는 "향후 수주 내에 과잉생산 문제에 관한 우리들의 조사에 대해 공표하겠다"고 말했다. 다분히 중국을 겨냥한 성격이 강한 조치지만, 조사 대상에 한국도 포함돼 있는 만큼 결과에 따라 추가 관세 등 대응 조치가 한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기존 상호관세를 대체할 새로운 통상 압박 수단으로 무역법 301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미 연방대법원의 위법 판단을 받으면서 미국은 무역법 122조와 301조 등을 활용해 관세 부과 수단을 재정비하고 있다.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부당·불합리·차별적 조치가 미국 무역에 부담을 주거나 제한한다고 판단될 경우 USTR이 조사와 협의를 거쳐 관세 등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미국은 지난 3월 한국을 포함한 16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제조업 구조적 공급과잉·과잉생산에 대한 301조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대상에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해 일본, EU, 인도, 멕시코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공급과잉 조사에 앞서 강제노동 문제에 대한 301조 조사도 진행했다. 60개 경제권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한국·일본·스위스에는 12.5%의 추가 관세가 적용 중이며, 해당 조치는 7월 24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따라 한국은 이미 301조에 따른 12.5% 관세를 적용받고 있는 상황에서 공급과잉 관련 추가 관세 가능성까지 맞닥뜨리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관세를 협상 수단으로 다시 꺼내 들면서 단순한 통상 조치를 넘어 대미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대미 전략투자의 첫 자금 집행까지 마쳤다. 정부는 대미 전략투자 1호 사업으로 텍사스 라살 카운티 엔시날에 6472메가와트(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용 가스복합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 스타'를 확정했다.
원전은 한국형 APR1400 2기와 AP1000 6기 등 8기 건설을 위한 협력 틀(프레임워크)을 마련했고, 알래스카 LNG는 상업성·사업구조 등을 추가 검토하기로 했다.
대미 투자는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의 25% 상호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과정에서 핵심적으로 합의한 사안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일본·유럽연합(EU) 등 주요 경쟁국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관세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이를 위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및 에너지 구매 등이 합의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알래스카 LNG 사업을 놓고 한국에 추가 압박을 가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 발표와 관련해 "나는 성급하게 발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발표한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설에 한국 정부가 직접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고 입장을 밝힌데 따른 반박 발언이다.
이어 그는 한국이 해당 사업을 원하지 않는다면 "더 많이 부과하면 된다"고 말했고, '한국이 합의하지 않았다고 한다'는 질문에는 "곧 합의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릴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했다.
'무엇을 두 배로 올릴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으로 언급은 없었지만, 그동안 관세를 주요 협상 수단으로 활용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고려하면 추가 관세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수위가 연일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문제는 한국 정부가 알래스카 LNG 투자를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통상당국은 양국이 프로젝트의 상업성을 검토하기로 했을 뿐 투자 여부나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결정되지 않았으며,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상업성이 확보되고 국내 관련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미국 측 발표가 양국 간 협의 내용을 앞서갔다는 취지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에게 유감 표명을 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알래스카 LNG에 그치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한국과의 협상에 84억 달러 규모의 석유회수증진(EOR) 프로젝트가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 역시 한미 대미 전략투자 추진계획을 담은 공동 팩트시트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날은 한국의 알래스카 LNG 투자를 언급하며 "합의하지 않으면 두 배로 올릴 것"이라고 재차 압박했던 날로 연달아 우리 정부를 겨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산업부는 "전략투자 관련 양국 간 합의된 것은 공동설명자료(팩트시트)와 보도자료에 명시된 것만 있다"며 사실상 선을 그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에도 "한국이 미국 에너지 사업에 최대 200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이 가운데 약 540억 달러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에 투입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 투자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미국 측이 한국 정부가 합의하지 않은 사업과 투자 규모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대미 투자 확대를 압박하는 가운데, 301조 공급과잉 조사 결과까지 임박하면서 한국의 통상 불확실성은 한층 커지고 있다.
당초 한국 정부는 지난해 관세 협상에서 확보한 15% 수준의 관세 조건이 301조 등 추가 통상 조치에도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정관 산업 장관은 지난달 22일 대미 투자와 관련한 백브리핑에서 투자 합의문에 관세율을 직접 명시하지 못한 점을 설명하면서도 "미국 측이 301조를 포함한 어떤 형태의 조치가 있더라도 관세율을 15% 수준에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실제로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그리어 대표는 지난달 29일 주요 20개국(G20) 통상장관회의를 앞두고 과잉생산 조사와 관련해 다른 나라와 맺은 무역협정에서 합의한 관세 상한을 고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알래스카 LNG 투자를 압박하면서 관세 인상 가능성을 직접 거론한 만큼, 한국으로서는 301조 조사 결과뿐 아니라 미국의 대미 투자 추가 요구가 향후 관세 조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하는 불확실한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됐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 말이 틀렸다고 할 필요는 없다"며 "상업적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도록 미국이 가진 정보를 공유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건 말이 아니라 합의된 내용을 문서화한 것인데, 문서화된 내용에는 540억 달러를 알래스카 LNG에 투자한다는 얘기가 없다"고 덧붙였다.
euni1219@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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