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법' 두고 정부-유엔사 또 이견…해묵은 감정 대립 반복

정부·여당 'DMZ 법' 움직임에 유엔사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 표명
'갈등 없다'지만…연이은 출입 불허에 불씨 증폭 불가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남북 연락채널 등 현지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7월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해 남북 연락채널 등 현지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7.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비무장지대(DMZ)의 관할권'을 둘러싼 정부와 유엔군사령부 간 이견이 다시 불거졌다. 최근 국회를 중심으로 비군사적 목적에 한해 DMZ 출입 권한을 한국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입법 논의가 시작되자, 유엔사가 공개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것이다.

17일 유엔사는 홈페이지에 '군사정전위원회의 권한과 절차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고 DMZ 지역에 대한 출입 통제권이 정전협정에 따라 전적으로 자신들에게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유엔사는 정전협정 1조 9항을 인용하며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도 DMZ에 출입할 수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아울러 "군사정전위원회는 DMZ 내 이동이 도발적으로 인식되거나 인원 및 방문객의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도록, 확립된 절차에 따라 출입 요청을 면밀히 검토하고 승인 또는 거부 결정을 내린다"고도 말했다.

군사정전위원회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군 장교 5명, 북한군·중국군 장교 5명으로 구성돼야 하지만, 1994년 북한과 중국이 위원회 대표단을 철수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유엔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DMZ 통제권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 이미지 -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남북초소 모습. 2025.11.1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경기도 파주 접경지역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있는 남북초소 모습. 2025.11.1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유엔사의 공개적 입장 표명은 다소 이례적이다. 이는 최근 정치권에서 추진되고 있는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법률'(DMZ법)에 대한 사실상 반대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보여 더욱 파장이 예상된다. 해당 법률은 정부·여당이 '대북 유화책' 차원에서 사실상 대통령실과의 공감하에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8월 말 더불어민주당 이재강·한정애 의원은 정부가 DMZ를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에 한해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그간 군사적으로 철저히 통제돼 왔던 DMZ에서 정부의 권한을 넓혀 남북 간 교류협력과 생태관광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DMZ 통제권을 정부가 가져오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유엔사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9일 조원철 법제처장이 유엔사 관계자와 비공개 면담을 진행했는데, 이 자리에서 유엔사 측은 최근 정부 내에서 유엔사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나온 것에 '우려'를 표하며 DMZ법의 취지에 호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DMZ를 둘러싼 정부와 유엔사 간 충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남북 간 대화를 적극 추진했던 진보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양측은 종종 마찰을 빚곤 했다.

김대중 정부 때인 지난 2002년 11월 남북은 DMZ 내 지뢰 제거 상태를 확인하고자 검증단의 상호 방문을 추진했지만 유엔사가 군사분계선(MDL) 통과를 불허해 무산됐다.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18년 8월엔 유엔사가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의 착공식을 위한 대북 물자 반입을 문제 삼아 DMZ 통과를 불허하면서 착공식이 계획보다 넉 달이나 지연된 사례가 있다. 같은 해 10월엔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취재진과 함께 DMZ 내의 대성동 마을을 방문하고자 했지만, 취재진의 출입이 불허되기도 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DMZ 방문이 유엔사의 반대로 무산되며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된 측면이 있다.

올해 7월 한국인 최초의 교황청 장관(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이 DMZ를 가고자 했으나 유엔사가 '신청 일자가 너무 임박했다'는 이유로 이를 불허한 데 이어, 얼마 전에도 김현종 국가안보실 1차장이 DMZ 내 백마고지의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으나 유엔사가 이를 불허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엔사는 지난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 따라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DMZ에서 일어나는 우발적 군사 충돌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정전협정 서문은 유엔사의 권한이 '군사적인 성질에 속하는 사항'에 적용된다고 전제하고 있어, 민간인·종교인의 출입 등 명백한 '비군사적 상황'에서도 유엔사가 관할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적 여론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한편 이와 관련 통일부 고위관계자는 "유엔사가 출입 허가 여부를 결정할 때 (정전협정이 아니라) 내부의 자체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불허 이유조차 알 수 없다"면서 "최근 유흥식 추기경과 김현종 안보실 1차장이 출입을 불허 당했을 때도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정부 측에 설명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유엔사가 표면적으로는 정전협정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자의적 판단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본문 이미지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유엔사와 정부의 갈등은 사실상 한미 갈등으로도 볼 수 있다. 유엔군사령관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겸직하며, 유엔사는 미국의 합동참모본부로부터 지휘를 받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 가동된 한미 워킹그룹에서 미국 측이 대북제재를 이유로 남한 물자의 북한 반입에 부정적일 때 전면에 나섰던 것이 유엔사이기도 하다.

다만 양측 모두 공식적으로는 최근의 여러 사안이 한미 당국 간 갈등으로 번져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장은 이 사안을 두고 '치닫는' 갈등을 연출하지는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날 유엔사 측은 홈페이지에 성명을 발표하면서도 특정 법안 등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보다는 기존의 정전협정 내용에 근거한 '원론적인 입장'을 내세웠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통일부 관계자는 "국회에 발의된 DMZ법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도 "유엔사가 DMZ에서 그동안 평화 유지를 위해 노력해 온 것에 대해 존중하며 앞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표했다.

DMZ법을 발의한 이재강 민주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와 국회, 유엔사 간 조율과 협력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그동안 DMZ에서 정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엔사의 역할을 존중한다"면서 "DMZ를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 유엔사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공동의 과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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