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도약의 발판이 된 포항제철 신화 탄생" [역사&오늘]

7월 3일, 포항종합제철 준공식

포항종합제철소 준공식. (출처: 공공누리 한국정책방송원 만료저작물, 사진(1973))
포항종합제철소 준공식. (출처: 공공누리 한국정책방송원 만료저작물, 사진(1973))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3년 7월 3일, 포항종합제철 1기 설비 종합준공식이 거행됐다. 단순한 제철소 준공식을 넘어 한국 경제 성장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착공 약 3년 만에 황량했던 영일만 모래사장에 조강연산 103만 톤에 이르는 거대 제철소가 들어섰다. 당시 세계 최초의 단일 공장 100만 톤 규모인 이 제철소는 한국의 중공업화를 이끌었다.

포항제철 건설 계획은 1965년부터 추진됐다. 당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준비 중이던 박정희 대통령은 기간 산업인 철강 산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은 기술, 자금, 전문인력, 국제적 신용 등이 모두 부족했다.

포항제철 건설의 중책은 대한중석 사장이던 박태준에게 맡겨졌다. 그는 자금 조달을 위해 국제금융기관을 접촉했으나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한국의 제철업계 진출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압도적이었다. 세계은행은 채산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그러자 믿었던 국제제철차관단(KISA)도 등을 돌렸다.

낙담한 박태준은 귀국길에 하와이에서 대일청구권 자금 1억 달러를 포항제철 건설로 돌리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이 자금은 원래 농수산 지원 용도였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반대가 극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아이디어를 밀어붙였다. 마침내 꾸준한 로비로 일본 제철업계의 기술 지원까지 확보한 후 1970년 제철소 건설이 시작됐다.

박태준은 1205억 원이 투입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마침내 1973년 6월 9일 첫 쇳물이 용광로를 타고 흘렀다. 준공식에서 박 대통령은 "포항제철소는 우리 민족의 땀과 눈물로 이룩된 위대한 성과이며, 단순한 제철소의 준공이 아닌 한국 경제 발전의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포항제철은 준공 첫해 순이익 1200만 달러(약 46억 원)를 달성했다. 가동 첫해부터 흑자를 낸 세계 유일의 포항제철은 이렇게 한국 경제 도약의 신호탄을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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