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가장 오래된 화약무기 '황자화통' 베일 벗었다…나주 금성산서 찾아

28자 명문에 새겨진 제작 시기·무기 이름 등 확인
고려 말~조선 초 유물…학술적·역사적 가치 높아

본문 이미지 - '황자화통' 모병에 새겨진 명문(27자). 모병은 화약무기 등의 뒤쪽에 손잡이를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속이 비어 있는 원통형 연결 부위를 뜻한다.(국가유산청 제공)
'황자화통' 모병에 새겨진 명문(27자). 모병은 화약무기 등의 뒤쪽에 손잡이를 끼워 넣을 수 있도록 속이 비어 있는 원통형 연결 부위를 뜻한다.(국가유산청 제공)

(서울=뉴스1) 정수영 기자 = 전남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고려 말~조선 초 소형 화약 무기 '황자화통'(黃字火筒)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화약 무기 중 가장 오래된 실물 유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이하 나주연구소)는 황자화통의 명문 28자를 판독해 제작 시기와 무기 명칭, 무게, 감독자의 관직과 이름 등을 확인한 연구 성과를 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한다고 밝혔다.

황자화통은 화약을 이용해 화살이나 탄알을 발사하는 무기로, 당시 주력 무기인 활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개인 휴대용 소형 화기다. 이번 유물은 출토지가 명확할 뿐만 아니라 제작 주체와 시기가 문자로 뚜렷이 남아 있어, 실물 자료가 드문 고려 말~조선 초 유물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학술적·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유물은 2023년 11월 나주 금성산 '미확인 지뢰지대'의 등산로 공사를 앞두고 진행된 지뢰 탐지 작업 중 우연히 발견됐다. 크기는 길이 23.75㎝, 구경 1.66㎝, 무게 1032g 규모다. 나주연구소는 이후 3년에 걸쳐 유물의 진위와 제작 시기, 가치 등을 밝히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본문 이미지 - 발견 당시 황자화통(국가유산청 제공)
발견 당시 황자화통(국가유산청 제공)

판독 결과, 자루를 끼우는 모병에 27자, 총부리에 1자 등 총 28자의 음각 명문이 확인됐다.

모병에 새겨진 '정사십이월일 연 황자화통 중일근십사량 감조녹사안휴보 장인석'은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량이다.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이고, 장인은 석이다"라는 뜻이다. 총부리에 새겨진 글자 '팔'은 화기 제작 번호 또는 관리 번호로 추정된다.

명문에 적힌 정사년은 관련 문헌 기록과 우리나라 화약 무기 발달사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 두 시기로 좁혀졌다. 1377년은 고려의 무신이자 무기 개발자인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차원에서 처음 화약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다. 1437년은 세종대 화약 무기 개량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시기다.

나주연구소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비교할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1377년과 1437년 중 실제 제작 연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하지만 어느 쪽이든 국내에서 발견·발굴된 화약 무기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유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나주연구소는 오는 23일부터 11월 22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발견 유물 특별전을 열어 황자화통을 국민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본문 이미지 - 황자화통 모병과 총부리의 28자 음각 명문(국가유산청 제공)
황자화통 모병과 총부리의 28자 음각 명문(국가유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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