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암 환자의 체중과 근육이 급격히 줄어드는 '암 악액질'을 장내 미생물을 조절해 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암 악액질은 단순히 음식을 적게 먹어 살이 빠지는 것과 다르다. 암으로 인한 염증 반응 등으로 근육이 빠르게 줄고 체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전체 암 환자의 최대 80%에서 나타나며 암 관련 사망의 약 20%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재 근본적인 치료 약물은 없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천연물유효성최적화연구센터 김명석 박사 연구팀과 이충구 박사 연구팀이 장내 미생물을 조절해 암 악액질을 개선하는 천연물 후보물질과 작용 원리를 규명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약 4000종의 천연물을 분석해 '마이켈리올라이드'(Micheliolide·MCL)라는 물질을 찾아냈다.
논문에서는 대장암(CT26)과 폐암(LLC)을 유도한 생쥐에게 MCL을 투여해 효과를 살폈다. MCL을 투여해도 종양 크기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지만 근력과 근육량은 개선됐다.
KIST는 MCL 투여 후 근육량이 34%, 근력이 31%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암세포 자체를 줄이는 대신 암 때문에 나타나는 근육 감소를 따로 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다.
연구진은 MCL이 암으로 떨어진 T세포 기능을 회복시키고 근육을 파괴하는 염증 반응을 줄이는 효과도 확인했다. 즉 종양을 직접 공격하는 것과 별개로 환자의 몸이 쇠약해지는 과정을 줄이는 치료 전략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진은 MCL의 근육 보호 효과에 장내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확인했다.
항생제로 생쥐의 장내 미생물을 크게 줄인 뒤 MCL을 투여하자 앞서 나타났던 근력과 근육량 보호 효과가 사라졌다. MCL이 효과를 내는 과정에 장내 미생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MCL을 투여한 생쥐에게서는 '포카이콜라 불가투스'(Phocaeicola vulgatus)라는 장내 공생 미생물이 늘었다. 이와 함께 염증 조절과 근육 보호에 관여하는 단쇄지방산 등 유익한 대사물질도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 균을 대장암 생쥐에게 직접 먹이는 실험에서도 근육 감소가 완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이 근육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 자체만을 표적으로 삼는 기존 치료 방식과 달리 장내 미생물과 면역계를 조절해 환자의 근육과 체력을 지키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아직 사람에게 효과가 확인된 치료법은 아니다. 주요 효과는 동물실험에서 확인됐으며 실제 암 환자에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임상시험을 통한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김명석 KIST 박사는 "이번 연구는 천연물과 장내 미생물의 상호작용을 통해 암 악액질의 개선 가능성을 규명한 연구"라며 "향후 추가 임상 연구와 기술 이전을 통해 암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혁신 신약 개발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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