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고산자 김정호는 백성이 편리하게 이동하고 생업을 영위하는 데 도움이 되려고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위기 시에는 방어와 전략 수립의 기반이 되는 작전 지도였다. 그것은 곧 우리의 자부심이 됐다.
과거에도 이럴진대 21세기 지도는 의미가 더 크다. 그래서 우리는 1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해 고정밀 지도를 만들어 왔다. 차선·건물 구조·지형·고도까지 담은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를 구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도 많지 않다.
구글은 올해로 세 번째 '고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요청서'를 내밀었다. "다른 나라는 다 주는데 왜 한국만 안 주나"는 글로벌 정합성을 무기삼고, 미국 정부는 '무역 장벽'이라며 압박한다.
우리 정부는 부담을 느끼는 듯 이례적으로 심사 기간을 또다시 60일 연장해 '반출 요청'에 답변을 한미 정상회담 뒤로 미뤘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분명히 방위비 문제를 들고 나올 거다. 한국은 협상 카드가 필요한데 그게 지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은 미국보다 지킬 게 너무 많다.
우리의 고민과 달리 구글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해외 데이터센터로 '반출'을 해야만 더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단다.

구글 날씨 애플리케이션(앱)에선 여전히 독도가 다케시마,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있다. 대부분 언론사가 이 문제를 지적했지만 구글은 아무런 입장도 없다.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원하는 목적이 외국인 관광객 편의에만 있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자율주행·스마트시티·증강현실(AR) 서비스 등 인공지능(AI) 시대의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가 지도다.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구글이 고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확보한다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건 시간문제다. 국내 스타트업과 플랫폼 기업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한 번 무너진 생태계는 다시 세우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21세기의 대동여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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