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몽땅 처분한 '삼화페인트 대주주'가 얻은 것[강은성의 감]

10년간 사 모은 자사주, 취득목적은 모두 '주주가치 제고'
소각 대신 처분하면서 오너일가 지배력만 대폭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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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강은성 기자 = 삼화페인트(000390)가 239만 여주의 자사주를 전량 처분한다고 최근 공시했습니다. 전체 발행주식의 8.8% 정도 되는 양입니다. '소각'이 아니라 '처분'입니다.

보유 자사주 중 100만 8642주는 교환사채(EB)로 발행합니다. 처분 예정 금액은 약 69억 원으로 주당 처분 가격은 6857원입니다. 처분 목적은 '시설자금 투자'라고 회사측은 밝혔습니다. 내년 스마트 팩토리 구축에 투자하겠다는 설명입니다.

나머지 138만 주의 자사주는 이미 지난 1일 장 개장 전에 츄고쿠마린페인트에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습니다. 처분 금액은 약 80억 원으로 주당 처분 가격은 5790원입니다.

츄고쿠마린페인트는 삼화페인트 지분 4% 안팎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협력사로 우호 지분으로 분류됩니다. 올해 9월 기준 삼화페인트는 양사의 합작법인인 츄고쿠삼화페인트의 지분 14.9%를 경영 참여 목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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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주는 회삿돈으로 사들인 그 회사의 주식을 말하죠. 일반적으로 자사주 매입은 이익잉여금(배당가능이익) 내에서만 가능하며, 자본잉여금(주식발행초과금 등)이 충분할 경우 이를 활용해 매입할 수 있습니다.

즉 자사주를 산 회삿돈은 주주에게 '배당'을 했어야 하는 돈이라는 뜻도 됩니다. 배당을 하지 않고 자사주를 샀다면, 이 자사주를 태워 없애야 '주주환원'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삼화페인트가 최근 10년간 자사주를 취득한 경위와 목적을 모조리 살펴봤습니다. 지난해 11월까지 총 361만 2799주, 지분율 13.82%의 자사주를 모으면서 취득 목적을 모두 '주가안정'이나 '주주가치 제고'를 위함이라고 공시했군요.

그런데 삼화페인트가 보유한 자사주를 처분하는 과정에선 '주주가치'가 고려된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선 삼화페인트는 지난해 12월, 협력업체 피앤씨의 자회사 에스피앤씨를 인수하면서 자사주 122만 4157주(주당 6480원)를 넘겼습니다. 넘긴 주식 가치는 약 79억 원입니다. 회사가 인수합병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것이, 큰 범위에서는 회사의 가치를 높이고 이 것이 주주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남은 자사주 238만 8642 주는 이번에 교환사채와 관계사 매각으로 전량 처분하겠다고 공시합니다. 이번 교환사채 발행과 관계사 매각이 주주에게는 어떤 이득으로 돌아오는 걸까요?

만약 삼화페인트가 자사주를 전량 소각한다면 소액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 수량이 동일함에도 지분 가치는 상승하는 효과를 갖게 됩니다. 이는 삼화페인트 최대주주인 김장연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장연 회장은 9월 30일 기준 619만 2318주를 보유해 22.7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자녀들과 회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 지분을 모두 합하면 27.39% 수준입니다.

자사주 8.8%를 전량 소각한다면 김장연 회장과 특수관계인, 즉 지배주주의 지분은 30%정도 될 것입니다.

자사주 소각이 소액주주 뿐만 아니라 대주주의 지분가치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에 진정한 '주주가치 제고'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김장연 회장은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교환사채로 바꾸고 관계사에 매각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업지배구조 전문가인 김형균 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차파트너스 본부장)은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삼화페인트 오너 일가의 지분은 30% 수준에 그치지만, 이번처럼 관계사에 넘기면 의결권이 부활하기 때문에 오너일가의 실질적인 지분 행사력이 36% 수준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 등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지분은 34%인데, 이를 넘어서는 수준이 되는 것"이라면서 "(삼화페인트의 경우)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서, 회장 개인의 지배력을 확대하는데 쓰인 아주 나쁜 경우라고 볼 수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본문 이미지 - 김장연 삼화페인트 회장(삼화페인트 제공) 2024.3.26/뉴스1 ⓒ
김장연 삼화페인트 회장(삼화페인트 제공) 2024.3.26/뉴스1 ⓒ

회사 자금으로 산 자사주를 이렇게 팔아버림으로써 소액주주는 뒤통수를 맞고 '회장님'만 공고한 지배력을 얻게 되셨네요.

이에 더해 100만 주 블록딜로 얻은 현금도 시설투자라는 명분보다는 '자사주를 팔아서 현금을 챙겼다'는 사실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삼화페인트의 이번 처분 결정은 '자사주 의무 소각'을 골자로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가 확실시 되는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법 개정 전에 이런 행태를 보이는 기업들 중 일부는 금융감독원의 눈칫밥을 먹고 교환사채 발행 계획 등을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알아서 눈치를 보는 이런 기업들은 대체로 시가총액이 크고 매출이 큰 '대기업'이라는 특징이 있죠.

삼화페인트는 매출액 6000억 원 수준의 중견기업으로 시장에서 관심이 큰 기업은 아닙니다. 그래서 법 개정전에 이렇게 배짱있는 행동을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소형차'를 몬다고 음주운전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니듯,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주주를 등한시 하는 기업은 시장의 비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한편 이번 일과 관련해 삼화페인트 관계자는 "전략적 제휴와 스마트팩토리 구축은 업계 전반적인 침체 상황에서 중장기적 성장 모멘텀을 확보하기 위한 부득이한 판단"이라면서 "내년에는 그간 준비해 온 신규 사업의 결실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 주주에게 보답할 수 있도로고 노력하겠다"고 뉴스1에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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