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제지업계가 펄프 가격과 해상운임 하락, 지종별 판가 인상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인 인쇄용지 수요 감소와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하반기 전망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하반기, 특히 4분기는 다이어리·달력 등 인쇄 수요가 몰리는 성수기로 꼽힌다. 여기에 최근 원재료인 펄프 국제가격이 하락하고 해상운임도 낮아지면서 이익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펄프 국제가격(SBHK·미국남부산혼합활엽수 기준)의 2분기 가격은 톤당 645달러로 1년 전(895달러)보다 27.9% 하락했다.
국제 해상운임의 바로미터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도 같은 기간 평균 1701포인트로 지난해 상반기(2319포인트) 대비 27% 낮아졌다.
원가 부담 완화에 따라 한솔제지(213500), 무림페이퍼(009200) 등 주요 제지업체는 수익성 개선 효과를 일부 거둘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펄프 가격과 해상운임 안정으로 원가 부담이 줄어든 데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판매 가격을 올릴 수 있어 산업용지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쇄용지 시장의 구조적 한계는 여전하다. 전자문서와 디지털 미디어 확산으로 업황 자체가 장기적으로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제지업계 관계자는 "펄프와 운임이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최근 경기 자체가 워낙 좋지 않다"면서 "글로벌적으로도 종이 소비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전했다.

업계 전반의 체감 경기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마케팅·홍보 예산이 줄면서 인쇄물 발주가 감소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제지는 4분기가 성수기인데 요즘은 달력 생산도 예전 같지 않다"며 "이전 분기보다는 나아지겠으나 과거처럼 큰 폭의 수요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여기에 글로벌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원·달러 환율 변동은 수출 비중이 높은 제지업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관계자는 "미국 관세는 동일하게 15% 적용돼 다른 업종에 비해 큰 변수는 아니지만, 원·달러 환율 약세로 수입 원가 부담이 커 업계에는 여전히 제약 요인이 많다"고 전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단순히 펄프·운임 안정 같은 단기적 호재보다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지업계는 인쇄용지 수요가 줄어드는 추세 속에 친환경 소재나 특수지 등 고부가가치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ESG 경영 강화와 글로벌 환경 규제 흐름에 맞춰 친환경 포장재, 바이오 기반 신소재 등으로의 사업다각화가 필수 전략으로 꼽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친환경 포장재나 특수지 같은 분야는 성장 가능성이 크지만 초기 투자와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체질 개선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단기적 호재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불황이 지속되면서 제지업계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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