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오' 박규태 감독 "코미디는 싸구려? 고도의 지적 유희죠"(종합) [N인터뷰]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여름 시장 끝물에 등장한 복병 영화 한 편이 있다. 누구도 박스오피스 1위를 하리라 예상하지 못한 코미디 영화 '육사오'(감독 박규태)다. 지난달 24일에 개봉한 '육사오'는 박스오피스 2위로 등판했으나 5일 만에 '헌트'를 꺾고 1위를 차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육사오'의 연출자 박규태 감독은 뉴스1과 인터뷰에서 군대 배경의 작품들이 의외로 잘 된다는 얘기에 "그렇다, 보통 남자들이 하는 군대 얘기와 축구 얘기를 안 좋아한다고 하는데 의외로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분들도 좋아하더라, 우리 영화도 군대 영화이지만 군대와 관계 없는 사람들이 봐도 이해하고 재밌어 하는 영화"라고 자부했다.

'육사오'는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버린 57억원 1등 로또를 둘러싼 남북 군인들의 접선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날아라 허동구' 연출과 각본, '달마야 놀자' '박수건달' 각본 등으로 웃음을 선사했던 박규태 감독의 신작이다. 배우 고경표, 이이경, 음문석, 박세완, 곽동연, 이순원, 김민호가 출연했다.

작은 영화지만 '육사오'는 개봉 초반부터 고경표와 이이경 등 관객들의 신뢰가 높은 젊은 배우들의 신선한 기운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다. 감독은 라인업을 두고 "보석 같은 배우들"이라고 표현하며 만족감을 표했다.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코미디 영화는 연기가 중요하거든요. 정극도 연기를 잘해야 하지만 코미디 연기는 정극보다 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코미디가 가능한 젊은 배우들 중에서 미래에 톱스타가 될 수 있는 자질 있는 보석들이 누가 있을까 고민했어요.(웃음) 또 남한군과 북한군이다 보니까, 각 캐릭터에 어울려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중점으로 캐스팅 했었어요."

가장 먼저 캐스팅을 한 배우는 이이경이었다. 이어 고경표가 출연을 결정했고 음문석, 박세완, 곽동원, 이순원 등이 합류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제몫을 다 한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은 입소문에 일조했다. 특히 애초 로또를 잃어버리는 남한 병사 천우를 연기한 고경표는 세상 억울한 연기로 영화 속 웃음 지분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천우라는 역할은 말년 병장인데 로또를 잃어버렸다고 지뢰밭을 훑고 다니는 캐릭터에요. 단순하고 너무 순수해서 그렇게 되는 캐릭터죠. 누가 이런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고경표가 떠올랐어요. '감자별 2013QR3'이나 'SNL 코리아'에서 보여준 능청스러운 연기가 인상이 깊었거든요. 또 개인적으로 고경표가 가진 순수한 이미지가 천우에게 참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표씨가 연기를 정말 잘해요."

코미디 영화 '육사오'에는 흥미로운 설정들이 여러 개 등장한다.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를 떠오르게 만드는 오마주 장면들이 '공동경비구역 JSA'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웃음을 준다. 로또의 현금화를 놓고 남북 군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되는 공동급수구역 JSA라든가, 복권 사수에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변태 군바리'가 되고 마는 김만철(곽동연 분)의 사연 등이 그렇다. 또한 남한의 복권을 '육사오'라고 부른다는 설정 역시 감독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가제는 '로또'였어요. 그런데 제목을 '로또'라고 하면 뭐랄까 좋은 제목은 아닌 거 같았어요. 그래서 다른 제목이었으면 좋겠다 싶었고 '육사오'라는 제목이 생각났는데 괜찮다고 느꼈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는 느낌이 있으니까요. '로또'라고 하면 뭔 얘긴지 뻔히 알 거 같은데 '육사오'라는 무슨 얘기인지 숨길 수 있고 궁금함을 자아낼 수 있어 좋았죠."

의외로 '육사오'는 고증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취재의 과정이 많이 필요했던 작품이었다. 박 감독은 코미디에서는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동시에 현실감 있는 연출을 위해 GP 등의 부대에 대해 조사했고 GP에서 근무했던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북한 군대 묘사를 위해 실제 북한에서 GP에 해당하는 부대에서 근무한 탈북민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북한말은 백경윤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탈북한 분인데 우리나라의 웬만한 북한 영화에서 모두 북한 방언 연기 지도를 하세요.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도 그분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코미디적인 부분에서는 동화적인 상상이 많았죠. '함부르크' 장면도 제가 군대에서 경험한 일화였어요. 제가 군대 다닐 때 대대장님이 사병 식당에 와서 와서 '밥은 맛있나?' 하고 물었는데 그 병사가 관등성명을 안 해서 결국 대대장이 떠나고 나서 기합을 받은 기억이 있었는데 그걸 영화에 썼죠."

박규태 감독은 '육사오' 이전에 따뜻한 휴먼 코미디 영화 '날아라 허동구'(2007)로 연출 데뷔를 했다. 그는 연출 뿐 아니라 '북경반점'(1999) '달마야 놀자'(2001) '박수건달'(2013) 등 작품의 각본을 쓰며 코미디 장르에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코미디에 천착해온 만큼 장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터다.

"코미디보다는 유머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저는 영화에서 유머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장미의 이름'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그 속에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유머에 대한 정의를 보여주는 구절이 있어요. '유머란 인간이 발명해 낸 많은 것들 중에 굉장히 고도의 지적 유희다. 누군가를 웃음 짓게 하는 것은 어렵지만 가치있는 일이다'라는 내용을 읽으니 좋았어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예술이라면, 웃음 짓게 하는 것도 예술인데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가 싶어요. 항상 재밌는 영화를 생각하고 그런 쪽으로 어떻게 하면 재밌을 수 있을까 하다보니 유머를 좋아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날아라 허동구' 이후 차기작을 내놓는 데만 무려 15년이 걸렸다. 박규태 감독은 소회를 묻는 질문에 "감격스럽다, 대단하다"고 가감없이 기쁨을 표했다.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영화는 한 작품을 준비하면 2~3년이 후딱 가버려요. 메이드가 안 되면 엎어져요. 세 개 엎어지면 10년이 가죠. 다른 일은 하지 않았고 '박수건달'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을 하면서 제 작품을 준비했어요. 일이 그렇더라고요. 될듯 될듯 하다가도 안 되고 그래서 몇 번의 기회가 잘 안 됐어요.(웃음) 4년 전부터 '육사오'를 하게 된 거니까요. 좋은 기운들이 모여서 15년 만에 개봉하게 됐죠."

신작을 내놓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코미디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가 적은 점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코미디 영화는 2010년대 들어 다소 인기가 사그러들었지만 근래에 '극한직업'(2019)이나 '범죄도시2'(2022) 등 코미디 장르나, 코미디를 가미한 작품들이 크게 흥행,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박 감독은 "세상 모든 일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7~8년 전쯤만 해도 코미디 영화는 인기 있는 장르도 아니었고, 배우들이 하고 싶어하는 장르도 아니었어요. 배우들은 근사하고 멋진 걸 하고 싶어하지 않겠어요? 코미디 장르 자체가 좀 싸구려라는 느낌? 그런 인식이 있어요. 근사한 영화들이 많은데 코미디는 근사한 영화 장르는 아니니까요. 그래서 별로 인기도 없고 제작도 많이 안 됐던 시기들이 있었죠.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우리에게 미친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인간 관계나 생활 패턴이 바뀔 정도로요. 그 기간 덕에 사람들이 좀 웃고싶어진 것 같아요. 답답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런 갈망이 있는 시기에 '육사오'가 나온 것 같아요."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 /씨나몬㈜홈초이스, 싸이더스 제공

박규태 감독은 코미디 영화는 '함께' 보는 것이 더 재밌게 볼 수 있는 것이라며 '육사오'를 재밌게 볼 수 있는 팁을 귀띔하기도 했다. 손익분기점이 160만명인 이 영화는 벌써 123만명(9월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기준)을 넘겼다.

"우리는 영화의 힘만 믿고 가고 있어요. 냉정하게 한발짝 떨어져 생각해보면 '육사오'는 앞서 개봉한 영화들이 비해 천만 배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작비가 몇백억짜리 영화도 아니에요. 50억원짜리 영화인데, 그것도 우리에게는 큰 돈이었죠. 큰 배급사 영화가 아니지만, 영화의 힘, 관객들의 지지로 갈 수밖에 없는 작품이죠.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어요. 더 되면 감사하시만요.(웃음)"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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