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뉴스1) 심서현 기자 = 국제유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역대급 호조를 이어가면서 올해 우리 경제가 3%대 성장에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과 연구기관들도 잇따라 전망치를 높이고 있어 정부와 한국은행의 눈높이 조정 가능성도 거론된다.
반도체 수출 호조가 이어질 경우 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유가 부담이 완화되면서 그동안 성장률을 제약했던 대외 리스크가 해소되고,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이어지면서 성장 경로가 예상보다 개선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3%대 성장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중동 정세 재악화 여부와 미국의 AI 데이터센터 투자 지속 여부가 성장률의 방향과 속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라고 보고 있다.
최근 거시지표는 시장 예상치를 잇달아 웃돌고 있다.
지난 1일 산업통상부의 '2026년 6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1022억 5000만 달러로 월간 기준 사상 처음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도체 수출은 처음으로 400억 달러를 돌파했고, 상반기 반도체 수출은 1924억 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연간 실적(1734억 달러)을 이미 넘어섰다. 20대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18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하는 등 반도체 중심의 회복세가 전반적인 수출 증가로 확산하는 모습이다.
국제유가도 성장 여건 개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중동전쟁 당시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종전 국면에 접어들며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 실제로 국제유가는 지난달 초 배럴당 90달러 중반에서 25일 기준 브렌트유 75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72달러 수준까지 하락했다. 휘발유·경유 등 국제 석유제품 가격도 큰 폭으로 내렸다.
고유가는 그동안 기업 생산비와 물류비를 끌어올려 성장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가 부담이 완화되면서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호조가 성장에 보다 온전히 반영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출 호조와 유가 안정이 동시에 확인되면서 국내외 기관 역시 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국내외 42개 기관 가운데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3% 이상으로 전망한 곳은 11곳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올해 성장률을 4.0%로 전망했고, 국내 재보험사 코리안리는 4.1%를 제시했다. JP모건은 3.7%, 내셔널호주은행(NAB)과 호주뉴질랜드은행(ANZ), iM증권은 각각 3.6%, 씨티와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각각 3.5%,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3.1%, ING와 독일 데카방크는 각각 3.0%를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시나리오 분석도 3%대 성장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한은은 지난 5월 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기본 전망치를 2.6%로 제시하면서도, AI 데이터센터 투자 가속화와 피지컬 AI 시장 확대로 반도체 수요가 더 강해지는 '낙관' 시나리오에서는 성장률이 기본 전망보다 0.5%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올해 성장률은 3.1% 수준까지 올라간다.
여기에 중동 상황이 조기 진정돼 하반기 국제유가가 평균 80달러 수준까지 안정될 경우 성장률은 기본 전망보다 추가로 0.1%p 높아진다. 반도체 낙관 시나리오와 중동 조기 진정이 함께 나타나면 올해 성장률은 산술적으로 3.2%까지 높아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조만간 발표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과 한국은행의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가 추가 상향 조정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3%대 성장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국제유가와 반도체 경기의 지속 여부가 주요 변수라고 봤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3% 성장과 수출 1조 달러 달성은 가능하지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며 "중동 전쟁이 다시 악화하지 않아 석유 파동이나 원자재 공급 차질 우려가 재발하지 않아야 하고, 미국의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현재 추세대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적어도 내년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전망대로라면 수출과 성장률 모두 현재의 상향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미국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둔화하거나 멈춘다면 우리나라 성장률은 갑자기 떨어질 수 있다"며 "AI 거품 논란,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 데이터센터 전력비와 환경 문제에 대한 미국 내 반발 등이 변수"라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반도체 수출이 워낙 좋고, 수출 가격이 오른 영향이 있어 3% 성장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특별히 중동 사태가 악화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올해까지는 반도체 호조에 힘입은 수출 개선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선된 거시지표에 비해 체감 경기 개선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강 교수는 다만 "지금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결국 반도체고, 삼성전자 등 일부 반도체 기업과 달리 자영업자나 다른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좋지 않다"며 "국내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은 것이라기보다 반도체 중심의 K자형 흐름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성장률 숫자와 체감경기 사이의 괴리는 계속 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반도체가 잘 팔리고 가격도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수출 증가는 물량보다 가격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 호조가 워낙 강하다 보니 다른 산업의 둔화가 가려지는 착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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