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한국 경제가 바닥을 딛고 완만히 반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저성장 고착화 우려를 완전히 떨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0%대 초저성장에 머문 뒤, 내년에도 잠재성장률에 턱걸이하는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재정에 의존한 경기 부양책의 지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분기 마이너스(-)0.2%를 기록했지만 2분기에는 0.7%로 반등했다. 민간소비가 탄핵정국 등 정치 불확실성 해소에 힘입어 개선됐고, 수출도 인공지능(AI) 반도체 호조에 연초 부진에서 벗어났다.
단기 지표 역시 호전됐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 7월 생산(0.3%)·소비(2.5%)·투자가 모두 전월 대비 늘어 5개월 만에 '트리플 증가'를 달성했다. 특히 소비는 2023년 2월(6.1%) 이후 2년 5개월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최규호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 국내 경기가 반등했다"며 "이는 생산이 양호한 가운데 소비와 투자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앞으로 경기는 제조업 둔화가 제한적인 가운데 소비를 중심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심리 지표도 일제히 오름세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11.4로 전월보다 0.6포인트(p) 올라 2018년 1월(111.6) 이후 7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기업심리지수(CBSI)도 91.0으로 지난해 11월(91.8)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경기 회복의 배경에는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이 있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6월 3일 출범 직후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고 신속한 예산 집행에 나서는 등 내수 부양에 국가 재정을 적극 활용했다. 특히 7월부터는 국민 1인당 15만~55만 원의 소비쿠폰 지급을 시작해 2분기 들어 본격화한 소비 회복세에 더욱 속도를 붙였다.
한국은행은 2차 추경이 올해 경제 성장률을 0.1%p, 새 정부 출범을 전후로 한 심리 개선이 0.1%p를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지난 5월만 해도 올해 성장률 전망이 0.8%에 그쳤던 점을 고려하면 정책 효과가 작지 않다. 실제로 7~8월 신용카드 사용액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상당 부분이 소비쿠폰 효과로 분석됐다.
정부 지출은 더 확대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임기 첫 본예산인 내년도 예산안을 역대 최대 규모인 728조 원으로 편성했다. 총지출 증가율은 8.1%로, 윤석열 정부가 올해 기록한 3.2%의 두 배를 웃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2년(8.9%) 이후 4년 만에 가장 큰 지출 증가세이기도 해, 정부 재정 기조가 문재인 정부 당시의 확장적 기조로 회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확장재정을 바탕으로 AI 등 첨단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성장과 재정 건전성 사이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지난 정부는 지출 증가율을 낮추며 재정 건전성을 강조했지만 잠재 성장률은 오히려 떨어졌다"며 "소극적인 재정은 세입 기반을 축소하는 악순환을 낳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성장 동력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성장률을 높이고 다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경기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올해 1분기 수출과 내수가 동반 위축된 충격을 무시할 수 없는 데다, 연말부터는 미국발(發) 관세 충격이 본격화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은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올해 성장률을 각각 0.9%, 0.8%로 제시하면서 2025~2029년 잠재성장률(1.8%)에 한참 못 미치는 눈높이를 유지했다. 올해 1% 성장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내년 성장률 또한 잠재성장률 턱걸이 수준인 1.8%(한은 기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 여건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큰 만큼 2% 성장은 힘들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중론이다. 실제로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 8곳 중 2곳만 내년 한국 성장률로 2% 초반을 제시했으며, 나머지는 전부 1%대 중후반을 예상했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두고도 우려가 제기된다. 내년 국가채무는 처음으로 1400조원을 돌파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사상 처음 50%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30 세대가 은퇴할 2060년에는 1인당 국가채무가 1억 3000만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산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확장재정이 일시적 경기 부양에 그칠 경우 단기 침체를 모면하는 '진통제'가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산업과 사회 전반을 개혁하는 구조조정을 병행하지 않으면 미래 성장 동력은 확충될 수 없고, 이 경우 다음 세대에 부담만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내년도 예산안을 내놓으며 역대 최대 규모인 27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또 성과 중심의 연구개발(R&D) 정책 전환을 위해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소규모 과제를 경쟁 수주하던 제도를 없애고, 관련 재원을 국가 대형 과제 100개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국채 발행 증가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에만 232조 원 상당의 국채를 찍어낼 예정이다. 이 같은 대규모 발행은 시장금리 상승과 국채 시장 변동성을 자극하고 국가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위험성이 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확장적 지출 기조와 관련해 금융 시장에서는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한다"며 "확장재정이 효과를 낸다면 내년 1% 중후반 성장률을 뒷받침할 것으로 보이지만, 지출 확대로 성장이 뚜렷하게 회복되지 않으면 오히려 시장과 국제 금융기관의 신뢰를 흔드는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재명 정부 100일의 성과는 △확장재정에 기반한 단기 경기 방어 △AI 등 미래 성장동력 집중투자 △성장과 재정 건전성 사이 선순환 모색 등으로 요약된다. 한편으로는 저성장 고착 위기를 본질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민간 활력 회복과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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