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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한달여 앞둔 김명수 대법원장 평가 "기대 컸던 만큼 실망도 커"

"실종된 사법개혁 떨어진 재판 신뢰 사라진 리더십"…법조계 냉정한 평가
재판 퀄리티도 하락…초유의 '대법원장의 거짓말'로 퇴임 후 수사받을듯

(서울=뉴스1) 이장호 기자, 박승주 기자 | 2023-08-15 08:00 송고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 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2023.7.17/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전원 합의체 선고를 위해 자리에 앉고 있다. 2023.7.17/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퇴임이 한 달 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법조계에서는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15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김 대법원장 임명은 여러 측면에서 파격적인 인사였지만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는 게 법원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김 대법원장은 48년 만에 대법관을 역임하지 않은 첫 대법원장이었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중심에 섰던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법원행정처의 비법관화, 법원장 추천제 등 도입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서 드러난 법관의 사법관료화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는 성과는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이 김 대법원장에게 기대했던 사법개혁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오히려 재판 지연 및 질 하락, 비상식적인 인사,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직 관련 거짓 해명 논란 등 여러 면에서 아마추어적인 모습만 드러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 지연되고 퀄리티 떨어진 재판…1년 넘게 '재판중' 급증
김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좋은 재판 실현'이 무색하게 재판에서 여러 문제를 드러냈다.

우선 재판 지연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법원행정처가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년 넘도록 선고가 되지 않은 민사 1심 사건이 2017년 3만339건에서 2022년 5만3084건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민사 2심 사건의 경우는 2017년 3667건에서 2022년 9225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형사 사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1년 초과 1심 형사 사건은 2017년 7836건이었으나 2022년 1만5563건으로 두 배로 뛰었다.

재판의 질도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월 이형근 특허법원 판사가 법률신문에 기고한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글에 따르면 1심 합의사건 처리기간은 2017년 294일에서 2021년 369일로 약 25% 늘었지만, 항소율은 오히려 2017년 40.5%에서 2021년 44.1%로 소폭 올랐다. 한 사건에 투자한 시간은 늘었지만 당사자들의 만족도는 더 낮아진 것이다.

이 판사는 사건이 접수된 지 2년이 넘는 악성 미제 사건도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며 사법행정권자들이 이같이 악화하는 재판 관련 통계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수립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이 신뢰받지 못하는 현상도 더욱 심화됐다. 2020년 7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전원합의체의 무죄 판결이 대표적이다. 이 판결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의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터졌다. 김씨가 당시 이 대표 사건에서 다수의견에 선 권순일 대법관에게 접촉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권 대법관은 퇴임 후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월 1500만원의 고문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수미 전 성남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도 검찰의 항소이유서 기재 실무관행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파기하면서 '은수미 구하기 판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허위 인턴증명서 발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을 1년 넘게 끌다 최근 전원합의체로 넘겨 논란이 되기도 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 2020.5.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권순일 전 대법관 2020.5.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특정사건 재판부 비상식적 유임…"아마추어 사법행정"

김 대법원장 취임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드러난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것을 기대한 국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양 대법원장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사를 좌지우지 하는 모습을 보였다.

판사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특정 사건을 맡은 재판부 소속 판사를 장기간 유임시키는 방식으로 인사에 개입했다는 점이다.

지난 2021년 초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 등 사건을 맡았던 김미리 부장판사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들을 담당했던 윤종섭 부장판사가 각각 4년째, 6년째 서울중앙지법에 유임됐었다. 통산 2~3년 주기로 순환근무하는 법원 인사 원칙에서 벗어난 비상식적인 인사였다.

김 부장판사는 웅동학원 채용비리 혐의를 받았던 주범 조 전 장관 동생을 공범들보다 형을 낮게 선고해 '봐주기 판결'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윤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때 김 대법원장과 일선 판사들과의 면담 과정에서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김 부장판사는 결국 병가를 내 주요 재판에서 빠졌다. 윤 부장판사는 정기인사에서 다른 법원으로 전출됐다.

김 대법장과 같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인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이례적으로 3년간 유임시킨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2018.6.1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법원행정처 근무 법관 축소 및 법원장 후보 추천제 도입,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 사법관료화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이 시행된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 같은 개혁 조치들이 판사들의 일할 동기 저하, 인기투표로 전락한 추천제, 법원행정처의 법관 지원 역량 약화 등 부작용이 생겼는데도 마땅한 대책 없이 방치됐다는 비판도 동시에 나온다. 

재판 지연 및 질 저하도 이 같은 조치들의 부작용이란 해석도 뒤따른다. 재판 관련 통계가 악화되는 등 재판의 질이 떨어지는 신호가 발견되면 사법행정권자가 대책들을 마련해야 하는데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평가다.

이밖에도 청와대와의 헌법재판관 인사 거래 의혹, 해외연수 법관 선발 특혜 논란, 초유의 전산시스템 먹통으로 인한 재판 마비 등 지난 6년 동안 여러 사건 사고들이 계속 터져나왔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 2021.8.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임성근 전 부장판사 2021.8.1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상 초유의 대법원장 거짓말…양승태 이어 '대법원장 2호 기소'?

여러 사건들 중 가장 큰 사건은 단연 '거짓 해명' 논란이다. 김 대법원장은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고도 국회에 거짓 해명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2020년 5월 임 전 부장판사의 요청으로 진행된 면담 자리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는데 내가 사표를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해 논란이 됐다. 당시 국회에선 사법농단 연루 의혹으로 임 전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이 추진 중이었다.

논란이 불거지자 김 대법원장은 "면담을 한 적은 있으나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임 전 부장판사 측이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김 대법원장은 "기억이 희미했다"며 탄핵 발언을 한 적이 있다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후 국민의힘과 시민단체 등은 김 대법원장을 고발했다.

김 대법원장 퇴임 이후 관련 수사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달 거짓말 논란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김인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 대법원장은 퇴임 이후에 검찰 조사를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농단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이어 '대법원장 2호 기소'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재직 시절 '공관 만찬 논란'에도 휩싸였었다. 한진 법무팀 사내변호사인 김 대법원장의 며느리가 2018년 초 법무팀 동료들과 대법원장 공관에서 저녁식사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만찬 시점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직후라 논란은 증폭됐다. 김 대법원장은 뇌물 수수 등 혐의로 고발됐으나, 검찰은 김 대법원장이 대가를 받고 판결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ho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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