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구진욱 황두현 기자 = "제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인 걸까요"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 A수학교사 지난달 수업 도중 1학년 B군에게 폭언을 들었다.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들으라"는 지시에 이성을 잃은 B군으로부터 "지시하지 마라"는 위협을 받았다. 서른명 남짓 학생들 앞에서 할 말을 잃은 교사는 황급히 B군을 달래 교실밖으로 내보냈다.
A교사는 이튿날 연차를 냈다. 생활지도로 생각했던 자신의 지시가 제자의 이성을 잃은 태도로 돌아오자 죄책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에 앉으라는 지시가 본인의 행동을 제한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며 "제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일같다"고 토로했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는 이제는 일상이 됐다. 학생 인권 신장을 위한 법 개정은 반대로 교사 인권 하락을 가져왔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현장에서는 학생보다 학부모가 더 문제라는 얘기도 많다. 학부모가 교사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아이가 연루된 학교폭력(학폭) 사건을 교사가 미온하게 대처한다고 의심한 탓이다.
서이초등학교에서 극단선택을 한 교사 역시 최근 학폭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는 학교 노조의 주장도 나온다. 이제는 교권침해로 법정에서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와 마주하는 일 역시 더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18~'23년 민·형사 교권보호 판결문 보니…형사고소 빈번
27일 <뉴스1>이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지난 2018년부터 최근 5년 동안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징계 처분 취소 소송 등 교사 인권침해 관련 민‧형사 소송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한 교사에게 되레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신고를 해 법정 싸움으로 번지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특수학급이 포함된 서울의 한 학교에 재직 중인 C씨는 지난 2019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D군이 수업을 듣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반에서 벗어나려 하자 이를 과도하게 제지했다는 이유로 D군의 부모로부터 아동복지법위반(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형사고소 당했다.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듣던 D군은 게임 벌칙을 수행하기 싫어 학교 3층에 있는 통합 학급 교실로 올라갔고, 이에 특수학급 교사의 요청을 받은 사회복무요원 E씨와 C씨가 뒤쫓아 D군을 제지했다.
D군은 이 과정에서 E씨를 주먹과 발로 때렸으며, 주먹으로 C씨의 얼굴을 폭행해 상해를 입혔다. 그 결과 D군은 학교에서 특별교육 10시간 이수 명령을 받았다.
C씨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D군의 기행을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D군의 부모는 부당한 제압행위에 대해 발버둥을 치다가 우연히 발생한 사고일뿐이라며 E씨를 아동학대 혐의, C씨를 아동학대 방조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 또 자신의 아이가 받은 징계 처분이 부당하다며 법원에 민사 소송까지 제기했다.
재판부는 "사건 발생 직후 D군이 부모에게 '조금 더 점프해서 세게 때렸으면 피가 더 철철 났을 텐데'라고 말한 사실을 비춰봤을 때 행동에 대한 고의의 인식이 있었다"며 "D군의 부모가 자신을 상대로 형사고소를 하는 등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하여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심화돼 조정신청에 이르게 됐다는 C씨의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밝히며 D군에 대한 징계 처분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어느 정도까지 훈계해야…부모 지위이용 갑질도
교사의 지위로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보다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하지만 단순 훈계를 이유로 형사고소를 당하는 사례도 빈번해 교권이 위축될 여지도 크다.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기간제 교사 F씨는 지난 2018년 6월 자신의 반 학생이던 G군을 같은반 친구들 35명이 보는 앞에서 교실 뒤로 불러 내 "왜 자신의 욕을 하고 다니냐"는 등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31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아동학대 혐의로 형사고소 당했다.
재판부는 "수사 결과 F씨는 G군을 위로하며 음료 쿠폰을 보내주고, 즉시 G군이 바로 사과하는 문자를 보냈던 점을 비춰볼 때 정서적 학대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아동학대 혐의 역시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고 판시했다.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이용한 학부모가 교사를 협박해 정당한 교육 활동을 방해하는 사례도 있다.
법률사무소의 사무장으로 근무하는 H씨는 중학교 교사인 I씨를 협박하고 명예훼손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H씨는 2020년 1월 지인의 자식이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자 해당 사안을 조사하는 I씨에게 학교폭력 사안을 은폐하지 말라며 협박했다.
H씨는 자신의 직업이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며, 학교폭력 은폐 사실을 기자들에게 유포할 것이라며 협박한 사실도 파악됐다.
또 I씨가 실제로 은폐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 기고란에 '교사가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학부모를 설득하여 학교폭력을 덮어 왔다'는 등 내용의 글을 게재해 명예를 훼손했다.
재판부는 "I씨가 학교폭력을 은폐하려고 시도하였다고 볼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오히려 사건 해결을 위해 면담을 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불이익을 없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모습만 확인된다"고 판단했다.
◇정신적 스트레스 호소에 휴직…피해회복 "스스로 증명해야"
교권침해로 시달리는 교사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교직 생활을 그만두거나 휴직을 하기도 한다. 또 직무상 재해로 인정을 받으려면 교사 스스로 증명해야 해 교원의 피해 회복은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지난해 6월 중학교 교사 J씨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상대로 낸 결정 취소 소송에서 "일반 질병 휴직이 아닌 직무상 질병 휴직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J씨는 지난 2018년부터 지속된 업무 과중과 수업 중 학생들로부터 욕설을 들어 겪은 교권침해 행위, 2020년에는 성희롱 사건 등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겪게 됐다.
그로 인해 우울증과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 받고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으로부터 2020년 6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받았다.
연금공단의 결정을 근거로 J씨는 학교에 2021년 8월까지 '직무상 요양승인 및 병 휴직'을 사유로 휴직 신청을 했다. 하지만 2번에 걸친 이사회 회의 끝에 학교는 J씨에게 일반 질병 휴직을 의결했다. J씨는 불복해 교원소청심사청구를 하였으나 이 또한 기각 결정을 받았다.
재판부는 "교사인 원고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학생으로부터 욕설을 들은 경험은 그 자체로 경험칙상 큰 정신적 고통을 주었을 것임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학생에게 성희롱을 당한 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다니기 시작한 사실 역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가 주장하는 정신적 고통 호소가 아무런 근거 없는 주관적 감정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다"며 "교원 임용경력이 약 10년이 넘었음에도 이전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없다"며 판시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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