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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문과생'이 코딩 공부하러 프랑스로 떠난 이유는

IT 교육기관 '에꼴42'…교수·교재·학비 'No' 코딩 선지식 필요 없어
교육부, 혁신적 교육·민간 차원 투자 관심…"100만 인재 양성 참고"

(파리=뉴스1) 서한샘 기자 | 2023-04-04 12:00 송고 | 2023-04-04 14:54 최종수정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 42파리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 42파리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이경은씨(34)는 한국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던 '뼛속까지' 문과생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다니던 직장도 있었다. 그러나 본인의 커리어를 획기적으로 바꿔보고 싶었던 이씨는 2019년 돌연 프랑스 소프트웨어 혁신 교육기관 '에꼴42'에 지원했다.

코딩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4주간 서바이벌 게임형태로 진행된 입학 테스트 '라 피신'(La Piscine)은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키보드와 마우스만 사용할 수 있으면' 누구든 응시할 수 있다는 이 테스트는 인지능력과 논리력 등을 평가하는 문제들로 구성된다.
피신은 프랑스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이 테스트를 통해 학생들은 'Sink'(빠지다·탈락) 혹은 'Swim'(수영하다·입학)으로 구분된다. 매년 에꼴42의 피신에는 3000명가량의 지원자가 몰리는데, 최종 선발되는 학생은 200명 수준이다.

이씨는 "테스트를 위해 새벽 3시에 집에 돌아가 다시 아침 9시에 나오는 일과가 반복됐지만 재미있는 과정이었다"면서도 "입학 이후엔 혼자 매일 울면서 공부를 할 정도로 어렵긴 했다"고 말했다.

에꼴42는 즉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실무 IT능력을 기르기 위해 2013년 파리에 설립된 교육기관이다. 이동통신 서비스 '프리모바일'의 회장 자비에르 니엘이 사재 1억 유로(약 1425억원)를 털어 만들었다.
샤를 모블랑 42파리 홍보담당자는 "전통 교육시스템이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가는 학생들을 기르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만들어진 학교"라며 "혁신적이고 디지털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에꼴42는 교수·교재·학비가 없는 3무(無) 교육을 표방한다. 완성형 개발자가 아닌 '개발자 씨앗'을 기르는 과정인 만큼 코딩 선(先)지식이 없어도 입학할 수 있다.

교수가 없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프로젝트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한다. 과제 평가도 학생들끼리 한다. 자신이 만든 코드를 두고 다른 학생과 면대면으로 평가를 주고받는다. 과제를 하다 막혔다면 인터넷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학생들은 인터넷을 '거대한 개발자 사회'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에꼴42에서는 소통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3층으로 나뉜 에꼴42 캠퍼스의 대형 실습실에는 각각 300여대의 아이맥(iMac)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는데, 학생들은 그 앞에 그룹으로 모여앉아 컴퓨터를 바라보며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전반적인 이수 과정은 게임 형식을 차용했다. 레벨 1~9는 공통핵심과정으로, 레벨 10~21은 분야별 프로젝트·협업 중심 심화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레벨 21을 달성하면 유럽연합 기준으로 석사 인정학위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수료까지는 대부분 3년이 소요되지만 학생 사정에 따라 진행 속도가 다를 수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이씨도 4년여의 씨름 끝에 3개월 전 공통과정을 모두 끝내고 현재는 레벨10을 달성한 상태다.

교수·교육과정이 없는 일종의 실험에 프랑스 사회 내에서도 과연 에꼴42가 성공할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는 평이다. 에꼴42에 따르면 수료자의 100%가 취업에 성공했으며, 이 가운데 12%는 스타트업 기업을 설립했다.

에꼴42에 다니는 또 다른 한국 학생인 이동빈씨(25)는 "프랑스에는 엘리트층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기관 그랑제콜이 있는데 에꼴42는 IT업계의 준-그랑제콜처럼 되고 있다"며 "업계에서 명성이 굉장히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 42파리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프로젝트 수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에꼴42' 42파리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프로젝트 수행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에꼴42가 프랑스의 전유물로 남아있는 건 아니다. 라이선스 공유를 통해 26개 국가에서 47개의 42캠퍼스가 운영되고 있다. 총 학생 수는 1만8000여명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2019년 12월 '42서울'이 문을 열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에꼴42와 제휴해 한국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재 양성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서울시가 함께 설립한 재단이다.

42서울에서는 2020년 1기 교육생 선발을 시작으로 2022년 11월 기준 총 2153명을 선발했다. 올해는 331억원을 투입해 600명의 비학위 2년 과정 교육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캠퍼스 간 약간의 차이도 있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 2018년 42파리에 먼저 입학했다가 잠시 42서울에서 직원으로 일했다는 이동빈씨는 "소프트웨어와 시스템이 동일해 차이가 크지는 않았지만 42파리 쪽이 좀 더 개방적·주도적이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인상이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에꼴42 운영사례를 참고삼아 디지털 100만 인재양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혁신적 교육체계 운영은 물론 민간 차원에서 디지털 인재 양성에 뛰어드는 점에도 주목했다.

대학끼리 새로운 첨단분야 교육체계를 개발·공유하는 '디지털 신기술 인재양성 혁신공유대학' 사업에도 이를 참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2021년부터 인공지능·빅데이터 등 8개 신기술 분야를 선정해 대학 간 컨소시엄을 구성했으며 올해 5개 분야를 신규 선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ae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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