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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폭력은 흔한 일…'노인 50분 폭행' 당시 좀 더 시끄러웠을 뿐"

고시원서 무연고자 50분 무차별 폭행…7시간 방치 끝 사망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사건 당시 '침묵' 지킨 슬픈 사연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2023-03-18 15:59 송고 | 2023-03-18 18:54 최종수정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서 만난 고시원 입주자가 방을 소개해 주고 있다. 2023.2.18 /© 뉴스1 유민주 기자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에서 만난 고시원 입주자가 방을 소개해 주고 있다. 2023.2.18 /© 뉴스1 유민주 기자

"여기서 싸움은 워낙 흔한 일이야, 여긴 24시간 술병을 달고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아요."
성인 한 명이 서면 꽉차는 폭 1.5m가량의 고시원 복도. 18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이 고시원 복도에서 만난 입주자 A씨는 지난 주말 60대 입주자 B씨가 무차별 폭행을 당해 숨진 사건 현장 모퉁이를 가리키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고시원은 가까이 붙어 살아도 누가 해코지할까 봐 서로 신경 안 쓴다. 한번 말을 걸면 나중에 술 먹고 아는 체하면서 찾아와서 시비 붙고 싸움나는 걸 많이 봤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전 1시쯤 이 고시원 입주자 2명은 복도에서 약 50분간 B씨를 폭행했다. '폭 1.5m 가량의 복도'를 지나가던 자신들과 부딪혔다는 이유에서다.

B씨는 왕래하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그의 이웃 대부분도 이곳 고시원 외엔 터를 잡기 어려운 저소득층이었다. 
비슷한 처지의 이들이 모인 이곳에선 폭력과 시비, 소음은 일상이었고 사건 당일은 평소보다 조금 더 시끄러운 새벽일 뿐이었다.  

'50분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 고시원 방안에 있던 다른 입주자 중 누구도 제지하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 신고 할까 말까 '고민'…"나도 당할까 두려워"

피해자는 결국 폭행 시작 약 7시간이 지난 오전 8시 방을 보러 온 C씨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 그러나 B씨는 외상성 뇌출혈 등으로 끝내 숨졌다.

신고자 C씨는 찜찜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는 "사실 고시원 옮기려고 알아보다가 지인 소개받고 왔는데 신고를 할까봐 잠깐 망설였다"며 "이제 갈 곳도 없는데 혹시 이 일로 엮겨 또 다른 곳으로 가야할까봐 겁이 났다"고 말했다.

이어 "고시원을 많이 다녀봐서 알지만 옆방에 살아도 요즘 세상에 말 거는 사람이 없다"며 "여기 사람들도 괜히 보복당하거나 해코지 당할까 봐 그때 신고를 안 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고시원에 1년 정도 장기 투숙 중인 60대 D씨는 "잡혀간 사람들은 술 먹으면 인사불성 되는 걸로 소문난 사람들"이라며 "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그 사람들을 언뜻 본 적 있는데 피가 흥건한 손을 씻고 있어서 또 어디서 술먹고 넘어져서 다친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곳 고시원 방 가격은 월 25만~30만원이다. 복도마다 1평 남짓한 방이 10개 정도 다닥다닥 붙어 있고 복도는 여러갈래로 나눠져 있다.

D씨는 오래 전 설계된 고시원이라 방음이 사실상 안 돼 소음 피해가 심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주사(酒邪)로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그는 "밤에 술 먹은 사람들 옆방에 들어오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고 신경이 하루종일 예민해진다"고 털어놨다.

이어 "게다가 여기 벽은 다 나무라서 옆방 코고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너무 잘 들린다"고 말했다.  

D씨는 "고시원 어딜가나 술 먹고 싸우고 시비거는 일이 흔하기 때문에 이번일로 여길 떠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며 "아마 다시 그날 밤으로 돌아가도 다들 절대 신고 안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시원에는 적막함이 감돌고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 복도. 
서울 동대문구의 한 고시원 복도. 

◇"'사회와 연결' 복지 시스템 마련돼야"

고시원 옥상에서 만난 이곳 사람들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입주자를 받아선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입주자의 주거 안전은 최소한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신고자 C씨는 "전에 있던 고시원은 아예 사람을 받을 때 술을 많이 먹는지 물어보고 받았고 절대 건물 안에는 술을 못 마시게 했다"며 "고시원도 전과자나 알콜 중독자는 걸러서 받아야 사는 사람도 안전하고 이런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각지대에 내몰린 이들이 주거공간으로 고시원을 선택하고 있다며 사회 지원과 연결된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재정적인 지원만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처한 분들이 처한 고독사, 치안 불안 등 문제를 온전히 해결할 수 없다"며 "알코올 중독 등 신경정신과적 질환 치료와 지원에 대한 투자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고시원은 개인이 철저히 분리돼 있으면서도 타인이 가할 수 있는 위험에 여실히 노출된 공간"이라며 "고립된 1인가구 분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돌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가 사실상 가장 취약하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주거복지 관련 시스템"이라며 "노인복지주택 등 주거가 취약하거나 치안에 위협을 느끼는 노인들을 위한 제도의 개념은 전부터 만들어지고 있지만 충분치가 않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1인 노인 가구는 늘어나는 반면 노인 주거 복지시설이었던 양로원은 없어지는 추세라 그분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사실상 거의 없다"며 "노인이 아파야만 들어갈 수 있는 요양시설이 아니더라도 주거 공간이 보장되고 복지 제도도 누릴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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