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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퇴직연령 49세·9.6%만 정년퇴직…정년보장 없는 노동시장

[정년연장이 온다] ③임금피크제 위법 판결로 정년제 위기
정년 연장 '소수 혜택' 안 되려면 정년 보장 일자리 늘어야

(서울=뉴스1) 박상휘 기자, 박혜연 기자, 이정후 기자 | 2023-02-09 06:01 송고
편집자주 정부가 정년연장이라는 사회적 이슈를 수면 위로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국민연금 개혁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고려할 때 정년연장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라는 인식에 따른 결과일 것입니다. 다만, 정년연장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산적합니다. 특히 세대 간 갈등과 임금체계 개편, 노사 간 합의 등은 이해관계가 첨예해 합의가 요원합니다. 뉴스1은 사회적 합의를 해결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전문가와 현장의 목소리를 4편의 기획물에 담았습니다.
부산의 한 자동차공장 근로자들.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부산의 한 자동차공장 근로자들. /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저출산·고령화 심화와 노인빈곤율 해소, 고령층의 노동 참여 욕구가 증대되는 현실 속에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고령자 고용촉진 효과가 나타나려면 우선 정년제 자체가 정착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60세 정년제'는 고령자 고용 촉진을 위해 2016~2017년부터 시행돼 왔지만 실제로 노동 현장에서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 효과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6일 발간한 '정년제도와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60세 정년제'는 고령자 고용을 어느 정도 증가시킨 효과가 있었지만, 인건비 부담을 느낀 기업에서 조기퇴직 등 사전 고용조정을 실시해 전체 노동시장에 미친 효과는 한정적이라고 분석했다.

정부는 정년제 실효성 확보를 위해 공공기관부터 임금피크제를 우선 도입하고 민간에 점차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대법원이 55세 이상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의 임금피크제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리면서 정년제 유지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 논의가 사회적 호응을 얻으려면 정년제를 운영하는 기업들이 더 늘어나고 정년을 보장받는 근로자 수가 충분히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정년 보장 '빨간불'…대기업 소송 잇따라

고용노동부는 '60세 정년제'가 실시된 이후 민간 노동시장 정착을 위해 정년 퇴직자를 계속 고용하거나 재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추진했다. 중소·중견 기업의 사업주가 정년에 도달한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경우 1인당 분기 90만원씩 최대 2년간 지원한다.

계속고용제도 확산을 위해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7일 계속고용장려금을 대폭 늘려 올해에만 8300명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연내에 고령자 고용 우수기업 포상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논의체를 통해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다.

다만 기업의 인건비 부담 절감을 위해 2015년부터 병행 추진했던 임금피크제가 대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리면서 정부가 난처해졌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년을 앞둔 일정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것은 '연령차별'이라는 판결 취지에 따라 비슷한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던 산업계에서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판결 직후 삼성전자 노조와 르노코리아 노조가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등 대기업 노조 차원에서 줄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대법원이 '위법'으로 판단한 것은 △60세 이상 재고용 형태인 '정년연장형'이 아니라 55세 이상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이고 △기존 업무와 직책, 성과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임금 불이익을 준 개별 사례에 한정되기 때문에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가 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2013년 법적 정년이 57세에서 60세로 개정될 때부터 인건비 부담을 느낀 사용자 측 반발에 부딪혔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번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인해 근로자의 정년을 보장하도록 하는 자율적 유인책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

2020년 9월11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체감 정년과 노후준비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평균이 49.7세로 집계됐다. 법정 정년(60세)에 비해 10년 정도 이른 것이다. © News1 DB
2020년 9월11일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체감 정년과 노후준비 현황'을 설문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 평균이 49.7세로 집계됐다. 법정 정년(60세)에 비해 10년 정도 이른 것이다. © News1 DB

◇ 정년퇴직 10% 밑도는 현실…기업 5곳 중 1곳만 정년제 운영

정년 연장에 대한 호응이 낮은 데에는 실제로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적다는 현실이 있다. 정년제 자체가 실질적으로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정년 연장 논의는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 소수 '안정된 직장' 근로자들만의 혜택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가 지난해 3월 발간한 '투자와연금리포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55~64세 연령층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평균 49.3세였고 평균 근속기간은 12.8년이었다. 최근 10년간 평균 퇴직연령은 약 49세에 머물렀다. 법적 정년인 60세에 비해 퇴직 시기가 10년 이상 빠른 셈이다.  

퇴직 사유 중 정년퇴직은 9.6%에 그친 반면 사업부진과 조업중단(16.0%) 권고사직·명예퇴직·정리해고(15.6%) 직장 휴·폐업(9.7%) 등 비자발적 조기퇴직은 41.3%였다. 많은 근로자들이 정년 이전에 퇴직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2021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64만3000여개 사업체 중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34만70000여개(21.1%)에 불과했다. 특히 근로자 수 300인 미만인 사업체에서는 정년제를 도입하지 않은 비율이 79%에 달했다.

이승호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년에 도달하는 근로자 수가 적은 상황에서 연장하게 되면 그 혜택이 일부에게만 돌아가는 셈"이라며 "정년 연장 제도가 효과적으로 고령자 고용기간 연장에 영향을 미치려면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장이 늘어나도록 유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년 맞춤형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9.6.26/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중년 맞춤형 취업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2019.6.26/뉴스1 © News1 주기철 기자

◇ 정년 지키는 일자리 만들어야…인센티브·재취업 활성화 방안 고민할 때

정년 보장을 위한 유인책으로는 정년에 도달하는 근로자 비중이 일정 기준 이상 충족하면 사용자가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정년제 운영을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정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또 다수 근로자들이 정년 전에 퇴직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노동시장에서 이탈하거나 경력단절된 근로자들이 안정된 일자리로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도 필요하다. 일례로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는 50대 이상 고령층 구직자들의 취업 상담을 돕고 중소기업체와 연계해 6개월 인턴십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상담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민자 선임(60)은 "정년까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없다. 중간에 개인 사정이나 회사와의 갈등으로 퇴직한 분들이 재취업이 너무 어려우니까 (상담하러) 오신다"며 "아직 젊은 40대 분들이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간 기업 차원에서도 정년제 유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근로자가 조기퇴직하도록 만드는 업무환경과 근로문화를 개선하지 않으면 업무 노하우가 축적될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사용자 측에도 손해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 회사원이었다가 퇴사하고 3년째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56)는 "(과거 회사는) 70세 정년이라고 말은 했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며 "직원이 낼 수 있는 성과를 기다리고 지켜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권고사직 혹은 부서 이동을 시켜서 사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새로운 사람이 빈 자리를 바로 채울 수는 없다"며 "기존 사람의 기술력으로 회사에 이윤이 창출된다면 정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취재팀(박상휘 팀장, 박혜연·이정후 기자)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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