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 있다" 살아나온 여성 절규…1시간 만에 3명 죽인 악마

차범근 감독 대표팀 월드컵 첫 경기, TV에 빠진 날[사건속 오늘]
새벽 지하 단란주점 비극…CCTV 없어 수사 난항, 2013년 공소 만료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서울=뉴스1) 신초롱 기자 = 26년 전 오늘,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단란주점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 3명이 흉기를 휘둘러 술집 주인 등 3명이 죽고 1명이 중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차범근 감독이 이끌던 한국 대표팀과 멕시코의 월드컵 첫 경기가 열리던 날이었다. 전 국민이 축구에 빠져 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잔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단란주점 입구서부터 피비린내 진동…안에서 발견된 시신 3구

모범택시 기사는 이날 오전 2시 30분쯤 단란주점이 위치한 대로변을 지나다 뜻밖의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하의가 벗겨진 채로 피범벅이 된 여성 A 씨가 쓰러진 채 도움을 요청했다. 목에 치명상을 입은 A 씨는 "저 밑에도 죽은 사람이 있다"고 힘겹게 말했다.

3분 만에 출동한 경찰은 계단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피비린내로 인해 지하로 선뜻 내려가지 못했다. 힘겹게 마주한 현장은 예상보다 더 참혹했다. 주점의 한 방에는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 3구가 눕혀져 있었다. 피해자는 여주인과 손님인 여성 B 씨와 여주인의 지인인 남성 C 씨였다.

숨진 B 씨의 몸에는 12㎝ 길이의 베인 흔적과 둔기에 맞아 찢어진 상처가 7개에 달했다. C 씨는 17㎝ 깊이로 찔린 치명상과 베인 곳이 20곳이나 됐다. 여주인도 허벅지와 등을 깊게 찔리고 입 가장자리가 흉기로 13㎝ 정도 찢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피해자들의 머리카락이 뭉텅이로 잘려진 채 버려진 상태였다.

◇옆구리·목 찔린 A 씨, 죽은 척해서 목숨 건져…추가 목격자 존재

현장 감식 결과 유류 지문 8점, 담배꽁초 24개, 족적 3점이 발견됐다. 하지만 국과수에서 증거로 인정된 건 족적 3점뿐이었다. 이마저도 일반인들이 흔히 신는 운동화 종류여서 용의자 특정에 어려움이 따랐다.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다행인 건 생존자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옆구리와 목을 찔렸지만 급소를 피해 갔고, A 씨는 숨을 쉬지 않고 몸에 힘을 빼고 있었던 덕분에 용의자들이 떠난 후 힘겹게 밖으로 기어 나와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용의자를 목격한 이는 또 있었다. 여주인의 친언니였다. 오후 10시쯤 동생을 대신해 주점을 보고 있었고 그때 용의자 3명이 들어왔다. 친언니는 오후 11시 50분쯤 퇴근했다. 친언니는 경기 전반전이 끝난 후 오전 1시 30분쯤 주점으로 전화를 걸어 별일 없음을 확인했다.

신고가 접수된 게 2시 30분쯤이었던 걸 보아 범행부터 도주까지 단 1시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A 씨와 친언니가 기억하는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를 토대로 몽타주 제작에 돌입해 10만 장을 전국에 배포했다.

◇용의자들과 합석 후 불쾌해 다시 방으로…카운터서 다투는 소리

A 씨의 증언에 따르면 이날 오후 10시 20분쯤 퇴근길에 친구 B 씨와 맥주 한잔할 겸 방문했다. 두 사람은 맥주 2병을 시켜놓고 1번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1시간 30분 후쯤 누군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2번 방에 있던 남자 1명이 고개를 내밀며 훑어보더니 문을 닫고 나갔다.

A 씨 일행은 순간 놀라면서도 화장실을 잘못 찾았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여주인으로부터 2번 방 남자들이 합석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를 전달받고 2번 방으로 향했다.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하지만 음습하고 섬뜩한 기분이 들어 원래 있던 방으로 금방 돌아왔다. A 씨는 용의자 중 험상궂게 생긴 한 명은 여주인의 치마를 툭툭 치거나 들어 올리며 불쾌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방으로 돌아온 뒤 화장실을 다녀오던 A 씨는 카운터에서 여주인과 남성 C 씨가 용의자 3명과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얼마 후 1번 방 문이 다시 벌컥 열렸다. 용의자들이 여주인과 C 씨를 발로 차며 들어왔다. 두 사람은 손이 뒤로 묶인 채 피투성이 상태였다.

살려달라는 호소에도 용의자들은 무차별적으로 구타했다. 그때 용의자 중 한 명은 B 씨 손목에 채워져 있던 팔찌를 빼앗으려 했고 팔을 감추자 더 흥분하기 시작하더니 흉기를 휘둘렀다. 용의자들은 피해자들의 머리를 흔들어 생사까지 확인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용의자들은 범행 직후 현장을 급히 떠나지 않고 증거인멸을 위해 애썼다. 세면대 배수구를 막고 물을 틀어놓고 양주병과 유리잔, 접시를 마구 깨뜨려 어지럽혔다. 현장에서는 신문지로 지문을 닦았던 정황도 발견됐다.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다"며 끝내 살해…우발적 범행 가능성

당시 A 씨는 용의자들에게 "남편이 뇌수술 중이어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겨우 먹고 살고 있다.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때 용의자 중 한 명은 "우리도 퇴직을 당해 같은 처지다. 우리도 이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용의자들은 금품을 요구하기도 했다.

금품 갈취가 범행 목적이라고 보기도 애매했다. 용의자들이 가져간 건 귀금속 몇 점과 카드, 현금 6만 6000원이 전부였다. 없어진 귀금속보다 현장에 남겨진 귀금속이 더 많았다. 그들은 범행 후 카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귀금속을 현금화한 흔적도 없었다.

일각에서는 조폭들 간의 지분 다툼 때문에 벌어진 범죄라는 추측과 청부 살인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주점이 위치한 곳이 이권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살인을 의뢰할 만한 인물이 딱히 없었던 점에서 이 같은 이유로 벌어진 범죄일 가능성은 적다고 판단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SBS '그것이 알고싶다' 갈무리)

경찰은 3인조의 범행 수법이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 아니라 우발적인 범행에 가깝다고 분석했다. 다만 용의자들이 범행 도구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은 특이한 점이었다.

용의자들은 두 가지 종류의 흉기를 사용했다. 길이가 길고 매우 얇은 칼끝은 뾰족한 톱니 모양이었다. 다이버들이 그물을 자르는 용도로 쓰는 것이었다. 피해자 부검 결과 목 부분에 흉기와 일치하는 상흔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당시 20~30대 초반이었을 용의자들이 가까운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용의자 중에는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 경험이 있는 이와 미경험자가 함께 있었을 것이라 분석했다.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KBS 2TV '스모킹건' 갈무리)

실제 피해자의 목 부위에는 망설임 없이 공격한 칼날의 흔적이 있었다. C 씨도 20곳이 넘는 부위를 찔렸는데 어디가 치명상인지 알고 찌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A 씨가 손목에 채워져 있던 케이블 타이를 스스로 풀고 탈출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범죄에 익숙하지 않은 용의자의 실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검거 못 한 채로 공소시효 만료…현장에 찍힌 쪽지문 폐기

사건이 발생한 지 2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범인은 잡히지 않고 있다. 당시는 방범용 CCTV가 막 보급되기 시작했던 상황이어서 현장을 비추는 카메라가 전무했다. 월드컵 경기로 인해 길거리는 텅 비어있었던 탓에 추가 목격자도 없었다.

용의자를 추적할 수 없었던 요인은 또 있었다. 현장에서 쪽지문이 발견됐지만 지문 감식 기술이 부족했던 시기여서 쪽지문은 효력을 얻지 못했고, 결국 폐기 처리됐다.

더 안타까운 건 사건의 공소시효가 2013년 6월 14일자로 만료되면서 용의자를 검거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수사에 참여했던 전직 경찰과 피해자의 유족은 여전히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길 바라고 있다.

rong@news1.kr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 이영섭

|

편집국장 : 채원배

|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 47 (공평동,SC빌딩17층)

|

사업자등록번호 : 101-86-62870

|

고충처리인 : 김성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병길

|

통신판매업신고 : 서울종로 0676호

|

등록일 : 2011. 05. 26

|

제호 : 뉴스1코리아(읽기: 뉴스원코리아)

|

대표 전화 : 02-397-7000

|

대표 이메일 : webmaster@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사용 및 재배포, AI학습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