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개성 시내 남쪽 용수산에서 본 자남산 전경. 자남산 남쪽 입구 초록색 한옥지붕 건물이 통일관이고, 거기서 동쪽으로 500미터쯤 가면 숭양서원, 표충사, 선죽교가 나온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개성 자남산 관덕정의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개성 자남산 관덕정에서 본 민속거리의 과거(1950년대 중반)와 현재(2019년) 모습.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북한이 만든 개성관광안내도.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정몽주가 피살당한 개성 선죽교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정몽주가 피살당한 개성 선죽교 측면.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1936년 개성 선죽교를 방문한 여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선죽교의 동쪽 옆에 서 있는 비각과 비. 비각 안에는 1641년(인조 19)에 목서흠이 세운 읍비(泣碑)가 있다. 비각 앞에는 정몽주와 함께 죽은 녹사 김경조(金慶祚)의 사적(事蹟)을 담은 2개의 비가 서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표충각과 표충비. 표충각은 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며, 동쪽 담장 중심에 삼문(三門) 형식의 문이 있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표충각 안의 표충비. 사진 앞쪽의 것은 1740년(영조 16)에 세웠고, 위쪽의 것은 1872년(고종 9)에 세웠다.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숭양서원 출입문인 외삼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숭양서원 출입문인 외삼문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숭양서원 가장 뒤쪽에 자리 잡은 사당 전경.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숭양서원 사당 안에 있는 정몽주의 초상화. (미디어한국학 제공) 2021.02.06.ⓒ 뉴스1
편집자주 ...북한은 200개가 넘는 역사유적을 국보유적으로, 1700개 이상의 유적을 보존유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지역적 특성상 북측에는 고조선과 고구려, 고려시기의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난 75년간 분단이 계속되면서 북한 내 민족문화유산을 직접 접하기 어려웠다. 특히 10년 넘게 남북교류가 단절되면서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 공동 발굴과 조사, 전시 등도 완전히 중단됐다. 남북의 공동자산인 북한 내 문화유산을 누구나 직접 가 볼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하며 최근 사진을 중심으로 북한의 주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