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보다 뒤가 더 진한 '한강, 서울의 맥'…실로 그려낸 韓 정통 산수화

한국 섬유예술 개척자 이신자 선생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
인상적인 '실' 고유의 촉감…국립현대미술관 과천서 24년 2월18일까지

이신자 선생의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이신자 선생의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이신자 선생이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이신자 선생이 자신의 작품 앞에 서 있는 모습.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전시장 입구에 마련된 '실'을 손끝으로 어루만지자 작품을 보는 내내 따스함과 포근함이 도망가지 않는다. 분명히 앞이 있는 '그림'이지만, 어떤 경우는 뒷모습이 더 '작품'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패셔너블한 스타킹에 또각 소리가 나는 구두를 신고 "오늘도 나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93세의 작가 이신자 선생의 대규모 회고전이 2024년 2월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다.

이신자 선생은 1970년대 섬유예술이라는 어휘조차 없던 시절 '태피스트리'(tapestry)를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하며 한국 섬유예술의 영역을 구축하고 확장한 주역이다.

초기 작업에서는 전통적인 섬유 소재 대신 밀포대와 방충망, 벽지, 종이와 같이 일상의 재료와 한국적 정서가 담긴 평범한 소재가 주를 이뤘다. 1972년 국전에 출품한 '벽걸이'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 태피스트리 작품으로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독특한 재질감과 입체적인 표현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신자 선생의 작품에 대한 열정은 정평이 나 있다. 실을 짜는 기계가 없던 시절, 못을 밖아놓고 일일이 씨실과 날실로 작품을 만든 그는 잘 때도 수첩을 머리맡에 두고 아이디어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는 그는 지난 21일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당시 '손으로 했는지 발로 했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 자수는 이신자가 다 망쳤다' 등 항간의 비판이 많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작품은 자유롭다"고 말했다.

전시는 이신자 선생의 작품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눠 조망한다.

'새로운 표현과 재료'라는 주제로 열리는 1부에서는 실로 짜고, 감고, 뽑고, 엮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면화된 자연의 정서와 정경들을 대담하게 단순화해 짜임새 있는 구도를 갖춘 작품들을 선보인다. '장생도'(1958년), '도시의 이미지'(1961년), '노이로제'(1961년) 등 크레파스나 안료를 칠하고 천을 덧대는 아플리케(appliqué) 기법으로 한국 섬유미술의 폭과 깊이를 확장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작품임에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힘이 있다.

'한강, 서울의 맥'.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한강, 서울의 맥'.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한강, 서울의 맥' 뒷면.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한강, 서울의 맥' 뒷면.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태피스트리의 등장'이라는 2부에서는 197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태피스트리를 최초로 국내에 소개한 시기(1970년부터 1983년까지)의 작품을 다룬다. 이신자 선생은 어릴 적 할머니의 베틀에서 익힌 직조의 과정을 토대로, 틀에 실을 묶어 짜는 최초의 태피스트리 작업을 완성했다. '숲'(1972년), '원의 대화 I'(1970년대), '어울림'(1981년) 등은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올 풀기로 독특한 표현 질감을 유발하면서 이미 짜인 실을 밖으로 돌출시키는 부조적 표현으로 입체적인 질감을 형성했다.

'날실과 씨실의 율동'의 3부에서는 이신자 선생의 역작 '한강, 서울의 맥'을 볼 수 있다. 1990년에 시작해 1993년에 완성한 이 작품은 길이 19m의 화폭에 서울의 전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시장 중앙의 원형 기둥을 둘러싼 작품은 멀리서 보면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기분이다. 작품의 뒷면은 부분적으로 감상할 수 있으나 앞에 보다 진하고 강한 한국적 산수의 느낌을 안긴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3부는 '한국 섬유미술의 개화기'라 일컬을 만큼 국내 섬유 미술계가 새 국면을 맞이한 시기이다. 1980년대 초 배우자 사별로 인한 상실과 절망, 생명에 대한 외경, 부활의 의지를 담아낸 작품이 주를 이룬다.

'부드러운 섬유-단단한 금속' 4부에서는 자연을 관조할 수 있는 하나의 창으로 금속 프레임을 배치해 3차원 세계를 구성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보여준다. '산의 정기'시리즈(1990년대)에서는 "어린 시절 울진 앞바다에서 본 바다 풍경과 아버지 손을 잡고 오르던 산의 정기엔 파도 소리, 빛, 추억, 사랑, 이별, 이 모든 것이 스며있다"라는 선생의 말처럼, 평생을 지배해 온 주제인 자연의 영원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전시의 마지막에서는 작가의 밑그림과 드로잉 등 아카이브와 인터뷰 영상, 대내외적인 활동사진을 통해 작가의 작업세계에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신자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기자들 앞에 선 김성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공예계를 이끌어 나갔던 이신자만의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삶과 예술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고, 삶과 예술이 지닌 동시대적 의미를 재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성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김성희 신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2023.9.21/뉴스1 ⓒ 뉴스1 김일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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