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송화연 기자 = 지난 2021년 5월19일.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부처님 오신 날', 암호화폐 시장이 폭락장을 맞았다.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은 '부처님 오신 날에 음봉이 크게 뜨는 하락장이 나타났다'는 의미를 담아 '붓다빔'(부처빔)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올해 부처님 오신 날도 '붓다빔'을 피할 수 없었다. 경기침체 속에 물가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로 연일 미국 증시와 암호화폐 시장이 약세를 보이고 있고, 그 충격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연초 '조'(兆) 단위로 비트코인을 사겠다며 전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테라'도 빼놓을 수 없다. 불과 이달 초까지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위권 내 위치했던 테라 암호화폐 '루나'(LUNA)는 단숨에 70위로 밀려났다. 시세는 일주일새 99% 폭락했다.
테라는 무엇이고 이들이 발행한 암호화폐엔 어떤 문제가 있었던걸까.
◇테라는 뭐 하는 회사야?
테라는 소셜커머스 '티몬'을 창업한 신현성 씨와 와이파이 공유 서비스 '애니파이'를 창업한 권도형 씨가 지난 2019년 선보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접한 두 공동 창업자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고민했는데, 티몬 창업 경험이 있는 신 창업자에게 암호화폐는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의 결제 수수료를 줄일 최선의 대안이었다.
이커머스 기업은 매년 카드사, 전자결제대행(PG)사 등에 막대한 중개 수수료를 지급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암호화폐로 대체한다면 중간 개입자 없이 '이커머스와 판매자', '판매자와 구매자' 등을 연결할 수 있다. 중간 비용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두 창업자는 이러한 구상을 바탕으로 지난 2018년 스테이블코인 '테라'의 백서(사업의 동기, 목적, 운영방식 등을 담은 문서)를 공개했다. 이들의 목표는 '테라를 글로벌 지불 시스템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테라폼랩스는 이듬해 테라 메인넷(블록체인 네트워크)을 출시했다.
테라가 몸집을 불린 건 탈중앙화금융(디파이) 열풍이 불면서다. 테라는 자체 암호화폐인 '테라USD'(UST)를 중심으로 과감한 유동성 주입 전략을 채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촉발한 시장의 엄청난 유동성 공급 역시 테라 생태계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의 지지 아래 지난해 테라 기반 디파이 예치금은 이더리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테라를 둘러싼 계속된 호재에 테라의 미국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UST) 시가총액은 지난해 50배 이상 성장했다. 테라의 자매 암호화폐격인 '루나'의 시가총액은 지난해만 100배 이상 급증했다.
그런 테라가 세간의 주목을 받은 건 지난해 권도형 공동 창업자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을 시작하면서다. 지난 2021년 9월 SEC는 테라폼랩스의 미러 프로토콜이라는 서비스와 관련해 소환장을 발부했다. 미러 프로토콜은 주식이나 암호화폐 가격을 추종하는데 SEC는 이를 일종의 미등록 증권으로 해석했다.
권 공동 창업자 측은 이 소환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지 않았다며 SEC를 상대로 소송전에 돌입했다. 여기에 연초 테라가 '테라USD'의 가치 유지를 위해 조 단위로 비트코인을 매수할 것이란 계획을 공개·실행하면서 블록체인 업계에서 테라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테라에 무슨 일이야?
그러나 테라의 '성공신화'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신뢰'가 '생명'인 금융 시장에서 투자자의 신뢰가 깨져버리면서다. 테라가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을 잃어버린 게 화근이었다.
가치안정화 암호화폐를 뜻하는 스테이블코인은 시세 유지를 위해 법정화폐나 다른 암호화폐를 담보로 잡거나, 알고리즘에 의해 공급량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미국 달러'를 담보로 잡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 1코인이 1달러로 고정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미국 달러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 '테더'는 '1테더'가 '1달러'로 고정됐다. 테더는 지난 8년간 1000원~1300원 선에서만 거래됐는데 같은 기간 비트코인의 거래 가격(20만~8042만원)과 비교하면 스테이블코인의 특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테라폼랩스는 테라를 '미국 달러'와 같은 막강한 특정 국가의 법정화폐와 페깅(고정)하기보다는 여러 법정화폐에 고정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테라는 미국 달러, 유럽연합 유로, 심지어는 1SDR(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에 고정되는 방식으로 발행됐다. 연동되는 법정화폐에 따라 '테라USD'(미국 달러, UST), '테라KRW'(한국 원화, KRT), '테라SDT'(국제통화기금 SDR, SDT) 등의 이름이 붙었다.
문제는 미국 달러에 고정된 테라USD가 1달러의 페깅(가격연동)이 깨지면서 나타났다. 업계에선 거대 공매도 세력이 테라 생태계를 공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연준의 금리인상과 증시 추락이 최근 암호화폐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친 가운데, 지난 9일 테라USD의 '1달러' 페깅이 깨졌다. '1달러선 붕괴'는 투매현상을 심화시켰고, 테라USD는 일주일 새 42.53% 주저앉았다.
테라USD의 붕괴는 루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루나'는 테라폼랩스가 스테이블코인인 '테라'의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담보 성격으로 발행한 자산형 토큰이다.
테라 측은 테라USD의 가격 안정화를 위해 루나를 매입하거나 매각하는 방식으로 1달러 가격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테라와 루나가 '형제'처럼 연결되면서 두 암호화폐 모두 동시에 폭락했다. 전 세계 시가총액 8위 암호화폐까지 올랐던 루나는 12일 오후 4시30분 기준 70위까지 밀렸다. 루나 시세는 지난 일주일 새 무려 99.74%나 하락했다.
글로벌 암호화폐 리서치 플랫폼 쟁글 측은 "(루나는) 아비트리지(차익거래) 자금과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의 비트코인 준비금 투입 조치에 따라 일시적으로 회복하는 듯했으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본질적인 한계에 대한 의구심을 해결하지 못한 채 약세를 보이고 있다"며 "테라USD에 대한 신뢰회복은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분석했다.
hwayeon@news1.kr
편집자주 ...일반인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루나 생태계'가 전세계 암호화폐 시장을 흔들고 있다. 미국 달러화에 가치를 연동한 이른바 '스테이블 코인' 테라를 지키던 1달러선이 무너지면서 관련 암호화폐가 급락세다. '테라발(發) 패닉' 사태를 긴급 조명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