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웹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산업이에요. 가로로 보는 만화에 세로 스크롤 방식을 처음으로 적용했죠. 모바일 시대에 최적화된 콘텐츠가 바로 웹툰입니다."
우리나라는 웹툰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든 '웹툰 종주국'이다. '글로벌 만화 강국'은 아니었지만 만화에 IT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산업으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웹툰 산업 관계자들은 국내 웹툰의 글로벌 성공 요인으로 △세로 스크롤 방식 △다양한 장르와 시의성 △IP(지식재산권) 활용을 꼽는다. 3가지 핵심 포인트로 성장한 웹툰은 스토리 산업의 핵심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로 스크롤이 그렇게 대단해?
업계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웹툰의 가장 큰 특징은 '세로 스크롤' 방식이다. '그게 뭐 대단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들은 웹툰에 세로 스크롤을 도입하면서 웹툰에 '영화적 연출'이 가능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서범강 웹툰산업협회 회장은 "작가들이 세로 스크롤에 맞는 연출을 시도하면서 작품의 호흡을 조절할 수 있게 됐다"며 "컷을 배치하는 위치, 컷과 컷 사이의 간격 등이 자유로워지면서 기존 만화와는 다른 연출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했다.
출판물 만화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컷 사이 긴 공백이나 컷의 배치를 통해 독자들이 더욱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같은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하더라도 연출이 다르면 '작품의 맛'이 다르듯 세로 스크롤이 그 부분을 가능케 했다.
국내 작가들이 웹툰 산업을 먼저 접하면서 세로 스크롤 제작 방식에 익숙해졌던 게 글로벌 성공에 한몫했다는 시각도 있다.
아마추어 작가들이 자신의 만화를 커뮤니티에 공유하던 문화가 2000년대 초반 웹툰 플랫폼으로 이식되면서 작가들이 '세로 스크롤' 제작 방식에 익숙해졌고 결국 웹툰의 작품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네이버웹툰이 동남아 시장에 진출할 당시에는 현지에 웹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이 때문에 현지 작가들의 작품을 플랫폼에 선보이는 시간이 길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결국 현지 작품 부재의 공백을 국내 웹툰 작품들이 메우면서 국내 웹툰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로판' 인기는 글로벌…웹툰이 가진 '시의성'도 주목
지금의 웹툰이 글로벌에서 성공하게 된 데는 플랫폼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플랫폼 자체보다 그 안에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성패가 곧 플랫폼의 성패를 가른다.
해외에 진출한 국내 플랫폼마다 주력으로 삼는 웹툰 장르는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글로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장르는 로맨스 판타지다.
북미, 동남아, 유럽에서 웹툰 플랫폼 '코미코'를 운영하고 있는 NHN은 올해 목표를 '여성향 플랫폼 1위'로 정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우리나라 로맨스 작품의 묘사나 상황 연출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별에서 온 그대', '김비서가 왜 그럴까' 등 멜로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하면서 로맨스 장르가 더 각광을 받은 것도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웹툰이 가진 '시의성' 특징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오늘 웹툰에 등장할 만큼 시의성이 빨라 독자들에게 공감을 살 수 있다는 설명이다.
차하나 네이버웹툰 책임리더는 "웹툰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시의성과 트렌디함"이라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스토리텔링 구조가 가능하기에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OTT 작품 흥행하면 웹툰도 덩달아 성장
웹툰은 게임, 드라마, 영화 등 기존의 콘텐츠 산업들보다 늦게 시작된 시장이지만 콘텐츠의 뿌리가 되는 '이야기'를 제공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중이다.
특히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하면 원작 웹툰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가한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사업자들이 성공한 웹툰 IP로 드라마를 제작하는 추세가 이어지면서 웹소설-웹툰-드라마의 밸류체인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사내 맞선'은 글로벌 곳곳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동남아 지역을 중심으로 원작 웹툰의 조회 수와 거래액이 크게 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영화나 드라마 제작사들이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을 선호하는 추세다"라며 "성공한 웹툰은 작품성이 이미 증명됐고 팬덤도 가지고 있어 영상화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끼리 선두 다투지만…"콘텐츠 기업 모두가 경쟁 상대"
"모바일 환경이 확대될수록 이용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찾을 겁니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콘텐츠는 웹툰입니다."
서 회장은 웹툰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고무적인 것은 네이버, 카카오가 전 세계 웹툰 시장의 상위권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웹툰의 전체 만화 시장 점유율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21 만화산업백서'에 따르면 만화 산업 규모가 가장 큰 일본은 디지털만화로의 전환이 가장 빠르다. 2016년 33.6%의 점유율을 기록한 일본의 디지털만화는 2025년 80.6%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웹툰으로 대표되는 디지털만화의 점유율은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 각국에서 해마다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가 올해 본격적으로 맞붙을 프랑스는 전체 만화 시장 중 디지털만화 점유율이 1%로 매우 낮지만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증가해 성장 잠재력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이 해외 웹툰 시장에서 1·2위를 다투고 있지만 진짜 라이벌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이라며 "유튜브를 서비스하는 구글도 궁극적인 경쟁 상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leejh@news1.kr
편집자주 ...'코리안 웹툰'의 기세가 심상찮다. 어린 시절, 아이들의 또래 문화로만 치부되던 '만화'가 플랫폼 기술을 만나 전세계 콘텐츠 산업의 중심에 섰다. 'K-웹툰'은 어떻게 전세계를 사로잡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