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떠났지만" 김정주가 남긴 것…'어린이' '창업가' 그리고 '넥슨'

김정주 넥슨 창업자 (NCX 제공) ⓒ 뉴스1
김정주 넥슨 창업자 (NCX 제공) ⓒ 뉴스1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사실 김정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94년 넥슨 창업 이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횟수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렀다.

그런데 김정주가 하늘로 떠난 후 그의 '삶'이 드러나고 있다. 바로 주변인의 추모글을 통해서다. 이 추모글들은 비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에 그치지 않는다. 고인과 함께한 순간, 심지어 그의 옷차림과 행동, 말투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SNS에 게시된 수백 개의 추모글을 모아보면, 김정주는 우리 사회에 세 가지를 남기고 떠났다. '어린이' '창업가' 그리고 '넥슨'이다.

◇ 어린이

지난 2일 닉네임 '네눈박이엄마'는 자신의 SNS에서 故 김정주를 "한국 최초의 어린이 재활 병원을 세운 인물이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 딸이 처음 재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곳엔 '재활 난민'들이 있었다"며 "병상도 없고, 장기 입원을 허락하지 않아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옮기는 환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국에 소아재활치료를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은 드물다"며 "재활은 집 근처로 다녀야 하는데 병원 자체가 없다 보니 아이들은 '결정적 치료 시기'를 놓치곤 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현실을 접한 김정주는 소아재활의 불모지 한국에서 최초의 전문병원 설립을 위해 200억원을 기부했다. 그렇게 탄생한 병원은, 일평균 500명의 환자가 이용하는 서울 마포구 '넥슨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이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고인을 회상하며 "장애 어린이를 위해 무언가 기여하고 싶다는 전화와 함께 청바지와 하얀 운동화 차림으로 찾아왔었다"며 "대화할 때마다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백 이사는 김정주 사장 부부에게 재활병원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병원 건립에 필요한 400억원중 절반을 기부해달라고 제안했고, 김정주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백 이사는 "고인은 단순 기부에서 그치지 않고 부인 유정현 NXC 감사와 함께 매주 병원을 찾아와 봉사활동을 했다"며 "적자에 허덕이는 병원을 보고 매년 운영비를 자비로 보태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가 없었다면 지금 우리나라에는 어린이재활병원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우리 사회에 소외된 장애어린이와 그 부모님의 눈물을 닦아준 기업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본문 이미지 - (왼쪽부터) 넥슨 김정주 창업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1
(왼쪽부터) 넥슨 김정주 창업주,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페이스북 캡처) ⓒ 뉴스1

◇ 창업가

후배 '창업가'들의 추모글도 줄을 잇고 있다. 박재욱 쏘카 대표는 고(故) 김정주를 "벤처 업계의 큰 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고인을 처음 뵈었을 때 '회장님'이라 부르니 '니가 그렇게 날 부르면 내가 널 편하게 자주 만날 수 있겠니? 정 어떤 호칭을 쓰고 싶으면 선배님이라고 불러'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난다"고 운을 뗐다.

이어 "김정주 선배님은 많은 것을 이루신 분이지만 후배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떠한 벽도 느껴지지 않고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해 주시는 분이었다"며 "고민되고 어려운 일이 있을때 기꺼이 시간을 내서 귀를 기울여주시는 분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주는 2005년 넥슨 대표를 1년 정도 지낸후, 글로벌 투자회사인 NXC를 설립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非게임 분야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청년들의 벤처 창업 지원에 앞장섰다.

김문수 스마투스 대표는 "스마투스를 갓 창업한 2011년, 뱅뱅사거리의 한 카페에서 면바지를 입은 김정주 회장을 만났었다"며 "아귀찜을 먹고 게임의 공략법과 노하우를 신나게 떠들다 몆 주 후 NXC로부터 1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계약서도 없이 보통주로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마투스가 큰 신세를 졌지만 한참동안 보답하지 못했다"며 "이제 뭔가 조금 보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황망하게 하늘의 별이 됐다"고 추모글을 적었다.

김민석 더핑크퐁컴퍼니 대표는 "넥슨에 입사한 지난 2000년, 가끔 점심도 사주시고, 특별히 챙겨주셔서 여러 팀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그 결과로 지금의 더핑크퐁컴퍼니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2013년엔 더핑크퐁컴퍼니의 첫 투자를 해주실 때, 투자금을 100배로 늘려드린다고 말했고, 곧 100배 약속 지켰다고 찾아가 자랑하고 싶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많은 이야기를 다 기억하고 있고, 마음에 잘 담아두겠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본문 이미지 -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향년 54세 나이로 미국 하와이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 사옥의 모습. 2022.3.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국내 1위 게임사 넥슨을 창업한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이사가 지난 27일(현지시간) 향년 54세 나이로 미국 하와이에서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넥슨 사옥의 모습. 2022.3.2/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 넥슨 vs 돈슨

물론 모든 추모글이 아름다운 내용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고인의 좋았던 점만 말하는 것이 예의이긴 하지만, 넥슨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많다"며 "세계 최초로 아이들의 용돈을 가져간 회사였기 때문이다"고 짚었다.

넥슨은 세계 최초로 '부분 유료화' 게임을 만든 회사다. 쉽게 설명하면 부분 유료화는 게임은 무료, 아이템은 유료라는 의미다. 게임 자체는 공짜로 즐길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더 재미있게 즐기고 싶으면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하라는 이야기다.

이는 한낱 '오락'에 불과했던 게임을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토대가 됐지만, 게임의 주이용층인 어린이들의 '과소비'라는 사회 문제도 함께 야기했다. '돈슨'이라는 오명도 얻었다.

김정주도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아이들을 쥐어짜지 않는 '디즈니'같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게임회사를 디즈니처럼 '사랑 받는 회사'로 만드는 김정주의 꿈은 결국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졌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게임업계가 다함께 이뤄내야 할 꿈이기도 하다.

이정헌 넥슨 대표는 "고인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아프지 않기를 바랐고, 행복한 시간과 추억을 경험하며 건강하게 성장해 나가는 것에 진심이었다"며 "저와 넥슨 경영진은 그의 뜻을 이어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더 사랑받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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