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경기 성남시 판교. 28일 오전 판교역에 부착된 '응원 광고'가 시민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고마워 로스트아크, 잊지 못할 게임을 만들어줘서" "로스트아크와 함께 지금까지 쌓아 온 기억을 앞으로도 보존하겠습니다"
로스트아크는 지난 2018년 국내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출시한 PC 온라인 게임이다. 게이머들이 감사의 마음을 담아 게임 개발팀들을 위한 응원 광고를 게시한 것이다.
게이머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대형 응원 광고를 부착한 건 업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아이돌 뺨치는 'K-게임' 팬덤
게이머들의 깜짝 이벤트는 준비는 한달 전부터 시작됐다. 지난달 27일, 한 로스트아크 이용자는 국내 최대 온라인 게임 커뮤니티 인벤을 통해 '판교역 응원광고'를 제안했다.
로스트아크가 이용자에게 '낭만'을 찾아줬듯, 이번엔 이용자들이 게임사에 낭만을 선물하자는 게 이벤트 골자다. 이벤트 개시 시점은 로스트아크 총괄 디렉터 '금강선'의 생일인 1월 28일로 정했다.
게이머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자발적으로 '총대'(대표)를 선발하고, 이벤트를 기획할 총대진을 4인을 구성했다. 광고 디자인을 책임질 재능 기부자도 나타났다.
주목해야할 점은 게이머들의 '화력'. 판교역 광고 게시와 개발팀을 위한 감사 선물(간식·손목보호대·립밤·핸드크림·손소독제 등)을 구입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총 2600만원.
이 금액을 모금하는 데 걸린 시간은 반나절을 넘기지 않았다. 그간 게임 속에서 보여준 '과금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빛'이라 불리는 개발자, 금강선
로스트아크는 여느 아이돌 그룹과 맞먹는 수준의 강력한 '팬덤'을 갖추고 있는 걸로 유명하다. 그 팬덤의 중심엔 '빛강선'이라 불리는 금강선 디렉터가 있다.
게임은 글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와 달리 출시 이후에도 이용자의 피드백을 끊임없이 반영해야 하는 콘텐츠다. 하지만 한국에선 게임 개발자가 게이머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유료 아이템 판매를 지속적으로 유도해야 하는 한국 게임의 특성상, 개발자가 직접 대중 앞에 나섰다간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강선 로스트아크 디렉터는 다르다. 그는 정기적으로 이용자 간담회를 개최하고 피드백을 수렴한다. 악평을 받은 부분은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고, 반복된 실책을 범하지 않겠다고 머리를 숙이기도 한다.
게임사가 게이머와 '좋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허물없이 소통하는 것. 게임사는 수익을, 게이머는 재미를 추구하는 존재임을 이해하고 그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 금강선 로스트아크 디렉터가 '빛강선'으로 불리는 이유다.
◇게이머 "우리도 낭만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이번 판교역 응원광고를 이끈 닉네임 깔깔앵무는 이벤트 속에 '낭만'과 '자랑'을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로스트아크가 우리 모험가에게 낭만을 선물해줬듯이, 이번엔 모험가가 직접적으로 낭만을 선물해주고 싶었다"면서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이벤트가 고생하고 있는 로스트아크 개발진들에게 힘이 됐으면 한다"면서 "개발자들이 '너 무슨 게임 만드니?'라는 질문에 이제는 '나 로스트아크 만들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ukgeun@news1.kr
편집자주 ...정확히 1년 전이었다. 게임업계 취재를 시작하고 처음 방문한 경기 성남시 판교. 지하철역을 나와 마주한 건 "불통 게임사는 각성하라"는 게이머들의 트럭 시위였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찾은 판교. "깜짝 선물 많이 놀라셨나요? 로스트아크팀 사랑합니다" 역내를 가득 채운 '응원 광고'가 발길을 멈춰세웠다. 깜짝 이벤트를 위해 게이머가 모은 금액은 2600만원. 심지어 지난 크리스마스엔 무려 3억원을 모아 사회공헌재단에 기부했다. 트럭 시위 1년 후. 게임사가 소통의 노력을 보여주자, 게이머들이 '돈쭐'(돈+혼쭐)로 응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