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피아] 난데없는 '멈춰·무야호' 열풍…알고리즘이 이끄는 '밈'

인터넷 '밈(MEME)',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확대·재생산
수십년 전 영상 퍼 올려 끊임없이 현실로 호출…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세계

인터넷 '밈'이 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멈춰' (유튜브 KBS 뉴스 채널 갈무리) ⓒ 뉴스1
인터넷 '밈'이 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 '멈춰' (유튜브 KBS 뉴스 채널 갈무리) ⓒ 뉴스1

편집자주 ...20세기 대중문화의 꽃은 TV다. TV의 등장은 '이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켰다. '바보상자'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TV가 주도한 대중매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사회 곳곳을 바꿔놓았다. 21세기의 새로운 아이콘은 유튜브(YouTube)다. 유튜브가 방송국이고 도서관이고 놀이터고 학교고 집이다. 수많은 '당신'(You)과 연결되는 '관'(Tube)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세상이다. '취향저격'을 위해 인공지능(AI)까지 가세했다. 개인화로 요약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인 유튜브. 유튜브가 만든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적인 '멋진 신세계'일까.

(서울=뉴스1) 이기범 기자 = "멈춰."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이 단어 하나에 사람의 유형이 나뉜다. 덩달아 '멈춰'를 외치고 싶어진다면 당신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탄 사람이다. 인터넷 '밈(MEME)'이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시대다. 나아가 밈 현상 자체를 주도한다. 학교폭력 발생 시 다 같이 '멈춰'를 외치는 폭력 예방 프로그램은 밈이 되어 본래 취지와 상관없이, 다양한 상황에 시도 때도 없이 호출된다. 11년을 거슬러 올라 신조어가 된 '무야호'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람들은 유튜브를 많이 보고, 난데없는 알고리즘에 '신나시고' 있다.

◇알고리즘이 주도한 '멈춰'·'무야호'

'멈춰'는 2010년대 초반에 학교 현장에서 시행되던 폭력 예방 프로그램이다. 학교폭력 현장을 목격한 학생이 '멈춰'를 외치면 주변 학생들도 다 함께 같은 구호를 외치는 식이다. 학교폭력 방관자를 줄이고 학생들을 방어자로 참여시킨다는 취지다. 하지만 탁상행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각종 상황에 "OO 멈춰"를 외치는 패러디들이 등장하면서 인터넷 밈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탈모인에게 "탈모 멈춰"라고 외치는 식이다. 구호 하나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냐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멈춰'를 밈으로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14년 KBS 뉴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학교 폭력 멈춰 도입 후 절반 감소' 영상이 최근 학교폭력 폭로 사건과 맞물려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되기 시작한 것이다. 약 7년 전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재발굴된 셈이다. 해당 영상에는 '멈춰'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함께 학생들의 재연 영상이 담겼다. 이 영상은 학생들의 어색한 연기와 함께 각종 밈으로 재생산됐다.

본문 이미지 - 11년을 거슬러 올라 신조어로 자리 잡은 '무야호' (유튜브 MBC엔터테인먼트 채널 갈무리) ⓒ 뉴스1
11년을 거슬러 올라 신조어로 자리 잡은 '무야호' (유튜브 MBC엔터테인먼트 채널 갈무리) ⓒ 뉴스1

'무야호'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확산된 신조어다. 신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 '무야호'는 11년 전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 처음 등장했다. 당시 교포 김상덕씨를 찾아 알래스카에 있는 한인회관을 방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무한도전'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현지 한인 최규재씨가 "저희가 많이 본다"며 '무한도전' 구호 대신 "무야호"라고 외치는 장면이 방영됐다. 방송이 나간 2010년 당시엔 '무야호'가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조제 무리뉴 감독 합성 영상 등 해당 장면을 편집한 패러디들이 등장했고 최근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무야호' 밈이 확산되면서 신조어로 자리 잡았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이끄는 '밈'의 세계

유튜브 알고리즘은 수년 전 영상들이 재발굴되고 밈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이끌고 있다. 이용자 맞춤형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이용자들의 호응도가 높은 영상을 유튜브 홈 화면과 '다음 동영상'에 노출해준다. 이용자의 시청 및 검색 기록, 구독 채널, 국가 및 시간 등을 비롯해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는지 여부가 추천 영상에 영향을 미친다. 또 설문조사, 이용자 의견을 바탕으로 추천 시스템을 보정하고 있다.

유튜브 측은 구체적인 알고리즘 작동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닐 모한 유튜브 최고 상품 담당자(CPO)는 2019년 3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유튜브 이용자 시청 기간 중 70%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이며, 알고리즘 도입으로 총 비디오 시청 시간이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본문 이미지 -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로이터=뉴스1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로이터=뉴스1

간혹 관심사와 관계없는 영상이 추천되기도 한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블랙박스' 속에 가려진 탓에 "오늘도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이 영상으로 끌고 왔다", "아무도 이 영상을 검색해서 들어오지 않았다" 등이 유행어처럼 뜬금없이 추천된 영상 댓글을 가득 채우곤 한다.

일반적인 추천 알고리즘에는 '콘텐츠 기반 필터링'(CBF, Content based filtering)과 '협업필터링'(CF, Collaborate Filtering) 기술이 사용된다. CBF는 콘텐츠 자체의 특성을 추출해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손흥민 영상을 자주 보는 이용자에게 해당 영상에서 축구라는 특성을 뽑아내 축구 관련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식이다. CF는 이용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콘텐츠 감상 패턴을 분석해 비슷한 취향의 이용자 그룹이 많이 본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유튜브도 이 같은 필터링 기술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실제 이용자 취향과 상관없는 영상들이 추천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영상 조회 수가 갈리고, '밈' 현상이 점화되면서 이용자들도 적극적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기 위해 이미 추천 영상으로 뜬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식이다. '멈춰', '무야호'가 인기를 끈 배경에도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콘텐츠 참여가 뒷받침됐다.

본문 이미지 - '무야호'와 조제 무리뉴 토트넘 감독을 합성한 패러디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무야호'와 조제 무리뉴 토트넘 감독을 합성한 패러디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 뉴스1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에 미치는 파급력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년 전 영상을 퍼 올리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현실에도 큰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무야호'는 결국 '무한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예능 '놀면 뭐하니?'에 등장했다. 최근 회차에서는 유재석의 '부캐'인 '유야호'가 나와 남성 보컬 그룹을 꾸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해 지상파, CF로까지 이어진 '깡' 열풍에는 '깡고리즘'이 있었고, 최근 브레이브 걸스의 '롤린' 역주행 등에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큰 영향을 미쳤다. 18년 전 방영된 드라마 '야인시대', 2006년 개봉한 영화 '타짜'는 끊임없이 현실로 호출되고 있다. 중견 배우 김영철, 김응수가 요즘 세대에게도 익숙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갖는 파급력에 주목한다. 그러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 것을 강조한다. '유튜브 트렌드 2021'의 저자인 김경달 네오캡 대표는 "유튜브는 알고리즘 기반으로 플랫폼 파워를 높여 왔고, 철저하게 상업적 이해관계에 복무하고 있다"며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과정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들에 가중치를 둬 황색 콘텐츠를 확산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유튜브 알고리즘이 단시간에 큰 반향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밈 확산 현상에 큰 기여를 한 건 맞지만,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미디어 행위, '밈' 놀이 문화 등과 맞물려 '롤린' 같은 역주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이용자 헤게모니가 강화되는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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