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11번가' 매각설을 전면 부인한 지 1년이 채 안돼 SK텔레콤이 SK플래닛 지분 일부인 20%를 매각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쏠린다.
5일 전자상거래 및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사모펀드 운용사인 에이치앤오(H&O)코리아와 국민연금, 새마을금고 등에 SK플래닛 지분의 15~20%를 약 50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SK플래닛은 지분 98.1%을 보유한 SK텔레콤의 자회사다. 2011년 10월1일 SK텔레콤의 플랫폼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신설됐으나 고전을 면치못했다. 오픈마켓 '11번가'까지 합세했으나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SK플래닛은 지난해 9915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249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지난 3월 공시한 바 있다. 자산의 평가가치가 장부가치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 그 차액을 손실로 인식하는 회계처리인 '손상차손'까지 더하면 지난해 순손실은 5136억원에 달한다.
2016년의 1조1709억원의 매출에 3652억원의 영업손실, 310억원의 순손실이 더 악화한 셈이다. 자기자본 역시 2016년 대비 절반 정도 줄어든 6141억원을 기록했다.
따로 실적발표가 없는 '11번가'는 지난해 2016년대비 영업손실이 25.1% 줄었으나 매출 역시 4.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11번가가 지난해 1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한다.
지난해 9월 박 사장은 임원회의에서 "11번가는 미래의 커머스 플랫폼으로 진화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중요한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하며 "매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기업 대표이사가 자회사 매각설에 대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이다.
당시 업계는 박 사장이 직접 진화에 나선 배경에 대해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기술 트렌드를 흡수하는 데 커머스 사업이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 깔린 결정이라고 봤다.
박 사장은 실제로 "AI 기술과 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들이 고객들의 소비패턴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고 이는 전세계적인 트렌드"라며 "11번가를 통해 미래의 커머스를 선도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의 단호한 태도에도 11번가를 포함한 SK플래닛의 영업손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이에 지분 일부를 매각하기에 이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경영권을 내줄 만큼의 지분 매각은 고려하지 않고 있어 향후 '11번가'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뒀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월 롯데와 신세계, 현대 등에 11번가 지분 매각 의사를 타진했을 때도 경영권은 넘길 수 없다는 조건으로 성사시키지 않은 바 있다.
다시 말해 성장 가능성은 짙지만 언제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외부 투자금을 끌어들여 성장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으로 요약된다.
실제 H&O코리아 등은 SK텔레콤으로부터 어떠한 이득을 보장받지 않고, 11번가의 성장 잠재력만 보고 투자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SK플래닛은 확보한 투자금을 모두 11번가에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AI, 빅데이터, 챗봇, IoT 등 신기술 분야에 강점이 있는 만큼, 11번가에 이를 대거 적용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1번가는 지난해 3월 AI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 컨시어지 챗봇 '바로'를 선보였고 SK텔레콤의 '스마트버튼 꾹', 음성 AI기기 '누구'를 통해 간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는 통합 서비스도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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